갓 구운 호피아를 사서 먹고자 한다면 마닐라 어디로 가야 할까?

중국 푸젠성에서 온 이민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호피아(Hopia)는 필리핀 사람들이 즐겨 먹는 간식이다. 슈퍼 빵 코너에서도 볼 수 있는 대중적인 간식이라서 마닐라 곳곳에는 엥비틴(Eng Bee Tin)를 비롯하여 호피아로 유명한 빵집이 꽤 많다. 하지만 그래도 뜨거운 철판을 가져다 놓고 바로 구운 호피아를 살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그리고 디비소리아나 차이나타운에서 로컬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호피아 빵집을 가고자 한다면 베이커스 페어(Bakers Fair) 빵집을 빼놓기 어렵다. 렉토역 사거리에 있는 이 빵집은 1965년도부터 호피아를 구워 팔았다는 곳으로, 오픈 당시만 해도 매우 작은 가게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호피아와 판데살 빵으로 유명세를 얻어 디비소리아와 비논도, 쿠바오 등으로 분점을 내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필리핀 곳곳에 서른 개 정도 되는 매장을 가지고 있다. 호피아 외에도 '피아노노'라는 이름의 작은 크림 롤케이크나 바게트까지 다양한 종류의 빵을 잔뜩 파는데 가격에 비해 맛이 괜찮은 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렉토 사거리에 도착하자마자 빗방울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비라서 금세 멈출 것 같았지만, 덕분에 갑자기 후덥지근 더워졌다. 하지만 아무리 더워져도 베이커스 페어 빵집에서 일하는 꾸야는 호피아 굽는 손을 쉴 수 없었다. 가끔 보기에만 쉬워 보일 뿐 실제 해보려면 무척 어려운 일이 있는데, 호피아 굽는 일도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닐까 싶다. 반죽을 가져다가 뜨거운 철판 위에 올려둔 틀에 넣고 호피아를 굽는 일은 간단해 보였지만, 적당히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시점을 안다거나, 한 줄로 쭉 세워 한꺼번에 들어다가 매대에 옮기는 일이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잠깐 구경을 하다가, 꾸냐에 게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묻고 호피아 굽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은 뒤 가게 안에 들어가 피나노노 빵 한 상자와 호피아 4개를 샀다. 호피아 특유의 단맛은 내 취향이 아니었으니 하나만 맛을 보고, 3개는 왕완딩 씨에게 메리엔다(타갈로그어로 '간식'이라는 뜻)으로 가져다줄 생각이었다. 치노이(중국계 필리피노)인 왕완딩 씨가 호피아를 좋아할 것은 분명했으니 혼자 먹기는 아쉬운 일이다. 갓 구워서 뜨거운 호피아를 바로 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왕완딩 씨는 늘 내 간식 선물은 모두 환영이라는 태도를 보이니 차가워져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디비소리아 시장에서 이것저것 사고, 그 짐과 함께 LRT 지상철을 타고 리베르타드역 왕완딩 씨네 가게에 도착하고 나니 호피아가 잔뜩 뭉개져 있었다. 가방 속에 두었더니 짐에 완전히 눌린 모양이었다. 둥근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호피아를 꺼내려니 허탈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런 나를 보고 왕완딩씨가 한 말은 짐도 무거운데 이 빵을 주려고 여기까지 왔느냐였다. 그러면서 시크하게 하는 말이 바로 옆에 퓨어골드 쇼핑몰에 있는 엥비틴(Eng Bee Tin) 빵집에서도 호피아를 잔뜩 판다나. 나는 이 호피아는 오늘 방금 구운 것이라서 퓨어골드에서 파는 호피아와 질적으로 다름을 강력히 주장하고, 현재 한 개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원래 3개였음을 알 수 있다고 꼼꼼하게 일러주었다. 그리고 3개나 되는 호피아를 주었음을 핑계로 내 무거운 짐을 왕완딩 씨네 가게에 잠깐 맡기겠다고 청했다. 지프니를 한 번 더 타야 하는데, 갑자기 피곤함이 손끝까지 몰려오는 기분이라 짐을 들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일보다 더 기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왕완딩 씨가 "호피아가 맛있긴 하네!"라고 말해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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