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 WTO로 확전하나…트럼프 '개도국 우대' 정조준
트럼프 "부유한 나라" 거론…'개도국 지위' 韓에 압박 커질수도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발도상국 우대' 체계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경제적으로 비교적 발전된 국가들이 스스로 개도국으로 규정하고 혜택을 누린다는 불만이다. WTO 체제에서 개도국 지위(special and differential treatment)를 인정받으면 협약 이행에 더 많은 시간이 허용되고 농업보조금 규제도 느슨하게 적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들이 WTO 개도국 지위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했다고 미 언론들이 전했다.
구매력 평가 기준 국내총생산에 있어 10위권에 드는 브루나이와 홍콩, 쿠웨이트, 마카오, 카타르,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를 거론했다.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이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 한국과 멕시코, 터키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국가를 나열하면서 'WTO 새판짜기'를 요구했지만, 핵심 타깃은 다분히 중국이라고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중국이 '세계 최대 개도국'으로서 WTO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고, 이는 미국의 피해로 연결된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시문서에서 중국을 가장 좋은 예로 거론하며 경제성장 내역을 상세히 거론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글로벌 패권에 도전하는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이 정작 무역 규범에서는 개도국 혜택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에도 트위터를 통해 "엄청난 경제 대국인 중국은 WTO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여겨진다"면서 "따라서 중국은 굉장한 특전과 이점을 받고 있고, 특히 미국에 비해 그렇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전 흐름을 띄는 상황을 고려하면 WTO 체제로 '전선'을 넓히는 모양새로도 읽힌다.
일각에서 미국과 중국의 고위급 무역협상을 목전에 앞두고 있는 타이밍에 주목하는 이유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이끄는 미국 측 무역대표단은 오는 30~31일 중국 상하이에서 무역 협상을 벌인다. 중국 무역대표단 좌장은 류허 부총리다.
2개월여만에 무역협상이 재개되는 것이지만, 전격적인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은 그리 많지 않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CNBC 방송에 "구조적인 이슈가 남아있다"면서 "어떤 큰 합의(grand deal)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6개월 안팎의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 무역갈등의 역학 관계와는 별개로, 현재 WTO에서 개도국 지위에 있는 우리나라에도 적잖은 압박이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OECD 회원국이거나 가입 절차를 밟고 있는 국가 ▲현행 G20 회원국 ▲세계은행 분류 고소득국가(2017년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 최소 1만2천56달러) ▲세계 무역량에서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등 4가지 기준을 제시하면서 개도국 체제 개선을 요구해왔다.
우리나라는 미국이 제시한 4가지 기준에 모두 포함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별도의 트윗을 통해 "WTO는 망가졌다. 세계의 가장 부유한 나라들이 개도국을 자청해 WTO의 규정을 피하고 우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가 WTO개도국 중에서는 소득수준 상위권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자 나라를 언급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동맹에 방위비 분담 압박을 한 것을 고려할 때 통상 분야에서도 한국에 대한 압박이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만장일치로 안건을 처리하는 WTO 특성상, 중국이나 인도 등이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전격 수용하면서 개도국 체계가 개편될 것이라는 예상은 많지 않다.
다만 글로벌 무역의 중심축인 미국의 'WTO 불신론'이 갈수록 증폭한다는 것 자체가 WTO 체제를 둘러싼 혼란과 위기감을 더욱 키울 것으로 보인다.
WTO를 무대로,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국제여론전을 본격화한 우리나라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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