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백색도발'에 직접 나선 이재용…'신중모드' 접고 현장행보
수출규제 후 2번째 사장단 회의 긴급소집…'새로운 기회 창출' 강조
전국 사업장 순회로 대내외에 '위기 대응' 메시지 전파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5일 전자계열사 사장단을 소집해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긴급 대책 회의를 가진 것은 그만큼 최근 상황이 간단치 않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가뜩이나 양대 주력 사업인 반도체와 스마트폰 부문이 '동반 부진'을 겪는 상황에서 일본의 '도발'이 사실상 한국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하는 삼성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오면서 위기감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은 당분간 '현장 경영'의 보폭을 넓히는 동시에 필요할 경우 정부의 대응 방안 마련에도 참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부회장이 자신에 대한 대법원 판결 등을 감안해 '신중 모드'를 취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직접 나선 것으로 보인다"면서 "'삼성 총수'로서 위기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 발표 이후 이 부회장이 직접 주재한 사장단 회의는 공개된 것만 2차례다.
지난달 초 3개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 이후 5박6일 일정으로 일본 현지를 방문한 그는 귀국 이튿날인 같은달 13일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및 디스플레이 사업 부문 최고경영진을 불러모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마련을 지시하면서 일본이 수입 통제를 확대할 경우 반도체 부품은 물론 휴대전화와 TV 등 모든 제품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도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이어 두번째로 소집한 이날 회의는 참석자 범위를 사실상 모든 전자계열사의 최고경영진으로 확대했다.
DS 부문장인 김기남 부회장과 반도체 사업 담당 사장단은 물론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이윤태 삼성전기 사장, 전영현 삼성SDI 사장 등도 자리를 함께해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함에 따라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다른 전자 계열사들도 '직접 영향권'에 들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특히 오는 6일부터는 전자 계열사의 전국 사업장을 직접 찾아 현장 경영 행보에 나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규제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사업의 밸류체인 전 과정을 둘러보기 위한 목적으로, 대응 방안 논의라는 취지와 함께 고객사의 우려를 염두에 둔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전세계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가진 삼성의 생산 차질에 대한 우려가 글로벌 업계로 확산하는 상황에서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행보라는 것이다.
아울러 이날 회의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 한단계 더 도약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밝힌 것은 위기 극복에 그치지 않고 이를 도약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당부로 받아들여졌다.
전자계열사 사장단이 여름 휴가를 모두 연기하고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도 대책 마련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필요한 만큼 업계의 의견을 들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그럴 경우 자연스럽게 이 부회장도 협조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이 부회장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도 진행 중이어서 보폭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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