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성 잃은 의사 파업 부추기는 언론
의사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해 파업했다. 대한의사협회가 코로나19 재확산 시기에 파업 정당성을 설득하지 못하는데도 파업 수위를 높이겠다고 밝혀 비판 여론이 지배적인 가운데, 일부 보수언론은 의협 논리를 측면 지원하는 보도를 했다.
종합병원에서 수련하는 전공의들이 21일부터 집단휴진에 들어갔고 26일부터는 전임의(펠로)와 개업의까지 가세해 전면화했다. 지난 7일 전공의 집단휴진과 14일 의협 1차 총파업에 이어 3번째다. 의협은 24일 정세균 국무총리·보건복지부와 각각 만났지만 정책 전면 철회 요구를 고수하면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정부는 2022년부터 10년 간 의대 정원을 4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의사 부족 문제와 지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다. 한국은 인구 대비 의사 수가 OECD 평균 대비 65.7%, 의대생 수는 58%에 그쳐, OECD 평균에 닿으려면 현재로선 5만명 정도가 더 필요하다. 의협은 이에 한국의 의료 접근성이 높아 확충할 필요가 없고, 확충해도 비수도권 지역 의무복무가 끝나면 수도권 집중이 더 심해져 소용 없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의협이 전국의사파업을 한 14일 1면에 ‘수술대 오른 의료체계’ 문패로 기획보도를 했다. 이틀에 걸쳐 1면 일부와 사회면 한 면을 털었다. 요약하면 의사를 증원한다고 해서 필수 의료분야나 비수도권 지역 기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정원확대 능사 아니라며 의협 ‘의료수가 인상’ 요구 전달
조선일보는 1‧10면 “내‧외‧산‧소 기피 심각한데…의료수가 조정 3년째 스톱”에서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한 필수 의료 분야에 기피가 지속된 현상을 지적한 뒤 “의사가 늘어도 필수 의료 인력은 안 늘 것”이라고 했다. 신문은 “필수 의료 분야 의사가 부족한 배경엔 위험하고 힘든 의료 행위를 하는 의사에게 충분한 보상을 주지 않는 의료수가 왜곡이 자리 잡고 있다”며 “의료수가가 정상화돼야 인력 불균형이 개선”된다고 했다.
의사 쏠림 현상은 해당 과목 의료수가가 낮아서일까. 기피 분야 의사들도 수익은 높고 병원은 흑자다. 지난 4월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18년 외과의사의 평균 연봉은 1억2307만원으로 진료과목 중 가장 높다. 내과의 경우 1억1007만원이고 산부인과가 9370만원, 소아청소년과 8080만원이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필수 의료 분야 기피는 피부과‧안과‧성형외과 등 비급여‧상업적 의료행위를 통제하지 않는 시스템 탓에 의사들이 이들 과에 몰리며 일어난 측면이 크다”고 했다. 의사 쏠림이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할 근거로 맞지 않다는 얘기다.
조선일보는 15일 보도에선 비수도권 의사부족 실태를 전하며 의사 증원으로 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신문은 인천 강화군의 한 종합병원이 1년에 아기가 1명밖에 태어나지 않아 산부인과센터를 신경외과로 바꾼 사진을 배치했다. “지역 병원에 의료진이 왜 부족한지 고민해보지 않고 10년간 의무 복무하는 의사 수를 늘려놓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발상은 1차원적”이라는 반발을 전했다. “환자들이 서울 대형병원의 유명 교수에게 진료받으려 하는 욕망은 강남의 값비싸고 쾌적한 집에 살고싶은 욕망과 다를게 없는데 정부가 억누르려고만 한다”고도 했다. 둘다 특정인이 아닌 “의료계”의 주장으로 직접인용했다.
“의사 늘려도 지역격차 해결 못한다?” 시장실패 반증
비수도권 지역에 의사 씨가 마르는 현상은 거꾸로 의료체계의 ‘시장실패’가 드러난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지역 불균형을 누그러뜨리려면 오히려 국가가 적극 의사 증원과 더불어 공공병원을 짓고 공공의사제도를 확대해 의무복무율을 높여야 한단 지적이다. 의사단체들은 이번 파업에서 공공병원‧공공의대 설립도 반대하고 있다.
반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정부 쪽 정원 확대 정책도 ‘빛 좋은 개살구’라 평한다. 정부안은 사립의대와 민간병원 중심으로 의사를 늘리는 데다 해마다 증원될 400명엔 산업체 종사자(의과학자)도 포함하는 등 공공의사 양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인의협은 대도시 의사집중 현상을 막으려면 정부가 공공의료‧국공립대학 증원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러나 의협 요구를 중심에 놓는 보도가 주를 이루면서, 정부안을 의료공공성 관점에서 공론화할 계기는 뒷전인 모양새다.
조선일보 보도는 의사단체가 밝힌 논리와도 겹친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파업 홍보물을 통해 “우리나라는 전국이 1일 생활권에 들어와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지방 의료기관에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하더라도 환자들의 수도권 선호도는 줄지 않고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도 14일 사설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중앙일보는 “한시적으로나마 의대 정원을 늘려 지역 의사로 양성하고, 공공병원이나 감염내과‧소아외과‧역학조사 등 특수 분야에 투입하겠다는 정부 대책에 무작정 반대하는 것은 명분이 약해보인다”면서도 “힘들고 외져서 꺼리는 분야와 지역에 대한 수가를 조정하는 것이 먼저라는 의사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감염병 위기가 악화하고 여론이 갈수록 싸늘해지자 조선일보도 24일 “정부는 의료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의사단체는 파업을 중단하라”고 사설을 냈다. 조선일보는 “가장 필요한 것이 의료계 협조다. 복지부는 도리어 의료계 반발을 부를 것이 너무 뻔한 정책을 들고 나와 평지풍파를 일으켰다”고 했다. 한편 해당 기획기사를 쓴 한 기자는 10일 기자수첩 칼럼에선 의사들의 지역‧필수과목 기피 경향을 두고 “해군이 배를 안 타겠다고 하고 공군이 비행기를 몰지 않겠다고 하는 격”이이라며 “국내 의사들의 이번 파업이 불가피한 극약 처방이었는지 의문”이라고 썼다.
수차례 사설내 파업 비판한 일간지들
다수 언론은 의협이 7일 첫 파업에 들어간 이래 수차례 사설을 내 거듭 집단휴진 중단을 요구했다. 경향신문이 5건, 한겨레가 4건, 국민일보와 한국일보가 3건, 서울신문과 중앙일보가 2건의 사설을 내고 의협의 파업을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의협이 14일 총파업한 당일 ‘의료계의 총파업 강행이 부당한 3가지 이유’란 제목의 사설을 내 “의협의 집단행동은 명분에도 맞지 않고,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하며 의도마저 의심된다”고 밝혔다. 한겨레도 “의사 확충을 통해 공공의료를 확대하고 지역 격차를 완화해야 한다는 국민 공감대는 이미 충분하다”며 “이해 관철을 위해 코로나 위기를 볼모로 삼는 게 아니냐”고 했다.
의료 정책을 정면으로 다루기보다 의협 주장을 단순 전달하는 보도도 상당수였다. 동아일보는 “보건 의료 위기 상황에 집단행동을 하려는 의료계도 실망스럽지만 정부도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다 반발을 부른 책임이 있다”고 했다. “다만 의사들의 행동을 집단이기주의라고 비판하기에 앞서 정부가 일하는 방식의 문제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세계일보는 두 차례 낸 사설에서 파업 중단을 요구하기 앞서 정부와 의료계가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한 명분 축적용으로 대화에 나선다면 안 만나느니만 못하다”며 ‘공익적 관점에서의 상호 양보’를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