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정 원피스 논란은 언론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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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 원피스 논란은 언론이 만들었다

“언론은 오늘도 ‘원피스’를 묻는다. 마음은 더 착잡해졌다.” 8월7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수해복구 활동을 마치고 오는 길에서조차 원피스를 묻는 기자의 전화를 받았다며 페이스북에 쓴 글입니다. 8월4일 국회 본회의에 원피스를 입고 등원했다는 이유만으로 논란의 주인공이 된 류 의원이 아직도 원피스에 매달리는 언론에 답답한 마음을 표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요.

언론은 류 의원이 원피스 복장으로 등원하자마자 해당 모습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논쟁을 불러일으켰죠. 특히 ‘원피스 매진’ 등의 기사를 띄우며 화제성 소재로 키웠고, 비판 여론을 부각하는 과정에서 여성혐오적 의견이나 댓글을 선정적으로 인용하는 등 논란 만들기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 8월6일 ‘한국경제신문’은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본회의 당시 입은 원피스 품절 소식은 물론 가격, 브랜드에 대해 상세히 소개했다.▲ 8월6일 ‘한국경제신문’은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본회의 당시 입은 원피스 품절 소식은 물론 가격, 브랜드에 대해 상세히 소개했다.

원피스 ‘완판’, ‘매진’에 호들갑

먼저 언론은 류 의원이 입은 원피스에 크게 집착했습니다. 판매 사이트를 찾아내고, 가격을 알려주고, ‘매진’ ‘완판’ 등이 들어간 제목으로 류 의원 의상에 대한 관심을 ‘원피스 논란’으로 키우는 데 일조했습니다.

<한국경제>는 <없어서 못파는 ‘류호정 원피스’>(8월7일 민지혜 기자)에서 원피스 가격과 브랜드명뿐 아니라 어떤 업체가 언제 만들었고, 어떤 백화점에 입점했는지 구체적으로 적었으며, 온라인몰 판매 상황까지 언급했습니다. 서울경제 <류호정도 원피스 완판녀로… ‘정치판 역대 패피’ 살펴보니>(8월7일 박형윤 기자), 국민일보 <‘류호정 원피스’ 뭐길래? 8만원대 국내브랜드 “완판”>(8월6일 최민우 기자), 뉴시스 <류호정 원피스 어디 거?… 최저가 10만원 미만 국내브랜드>(8월6일 이예슬 기자), 조이뉴스24 <논란의 ‘류호정 원피스’ 완판… “쥬시쥬디 홍보대사급”>(8월6일 정은지 기자) 등 비슷한 보도가 쏟아지면서 한때 ‘류호정 원피스’가 포털사이트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선정적 댓글 부각한 황색저널리즘의 전형

성희롱적 발언을 그대로 옮기고, 비난 댓글을 부각한 기사도 논란 만들기의 대표적 예입니다. 조선일보 <‘빽바지’ 17년만에 ‘분홍 원피스’ 논란>(8월6일 원선우 기자)은 류 의원에 대해 성희롱성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며 문제적 발언을 자세하게 소개했는데요. 일부 커뮤니티에 떠도는 성희롱성 발언을 중간제목으로 쓰고, 두 문단을 할애해 문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었습니다.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 중 <조선일보>를 포함해 <경향신문>, <동아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가 성희롱성 댓글을 ‘따옴표’로 옮겼습니다. 문제적 댓글을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작성된 기사라고 할지라도, 굳이 성희롱성 발언을 옮기는 것은 독자 관심을 끌기 위해 선정적 내용을 부각하며 논란을 키우는 황색 저널리즘의 전형일 뿐입니다.

반면 <한겨레>와 <한국일보>의 보도태도는 달랐습니다. <한겨레>는 ‘성적으로 비하하는 게시글 잇따랐다’, ‘성폭력적 비난이 이어졌다’ 등 표현으로 문제 발언을 여과하여 전달했고, <한국일보> 역시 ‘무차별적 공격이 가해졌다’고 적으며 성희롱성 발언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국회법에도 없는 ‘복장 지적’

몇몇 언론은 류 의원 복장을 문제 삼으며 젊은 여성 정치인이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훈계를 하기도 했는데요. 조선일보 <분홍 원피스는 죄가 없지만>(8월7일 정시행 기자)은 미국의 한 여성 하원의원이 워싱턴DC 의사당에서 연설할 때 입은 “새빨간 더블 재킷에 검정 바지”를 언급했는데요. 이를 두고 “여성 정치인들이 즐겨 입는 파워 슈트의 전형”이었다고 평가하며 류 의원 원피스를 두고선 “서민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지, 상임위원회에서 말 빙빙 돌리는 장관을 몰아붙일 때 허점을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옷”인지 생각해보라고 주문했습니다.

미국 여성의원도 슈트만 입진 않습니다. 2017년 미국 여성 하원의원들은 여성 복장에 유독 엄격한 미국 의회에 반발해 ‘금요일엔 민소매 없는 옷 입기(#SleevelessFriday)’ 캠페인을 벌이며 여성 의원이 더 자유로운 복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류 의원이 젊은 여성 의원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복장에 대한 훈계를 들었을 지도 의문이지만, 미국 의회든 한국 국회든 그 누가 원피스를 입고 나왔더라도 문제될 일은 아닙니다. 한국 국회법에는 국회의원 복장을 규정하고 있는 조항도 없습니다.

▲ 2017년 미국 여성 하원 일부는 여성에게 엄격한 복장규정을 두고 있는 미국 의회에 반발해 ‘금요일엔 소매 없는 옷 입기(#SleevelessFriday)’ 캠페인을 벌였다. 사진=재키 스페이어 미국 하원의원 트위터 갈무리▲ 2017년 미국 여성 하원 일부는 여성에게 엄격한 복장규정을 두고 있는 미국 의회에 반발해 ‘금요일엔 소매 없는 옷 입기(#SleevelessFriday)’ 캠페인을 벌였다. 사진=재키 스페이어 미국 하원의원 트위터 갈무리

동아일보 <‘분홍 원피스’ 류호정>(8월7일 송평인 논설위원)은 원피스를 문제 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여성 혐오적 표현을 덧붙였습니다. 송 논설위원은 류 의원의 원피스 등원을 두고 “도회에서 온 젊은 아가씨가 차려입고 시골장터를 지나갈 때 그곳 사람들의 시선을 100% 의식하며 씩씩하게 걸어가면서 시골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유쾌한 도발과 비슷한 면”이 있다며, “20대 여성 의원의 희소성에 힘입어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낸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기 위해 옷차림보다는 법안으로 진짜 유쾌한 도발을 했으면 한다”고 적었습니다. 류 의원은 자신의 복장이 “일하기 편한 복장을 입었을 뿐”이라면서도 “검은색 어두운 색 정장과 넥타이로 상징되는 관행을 깨보고 싶었다”며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는데요. 송 논설위원은 젊은 여성 의원의 정치적 행보를 ‘젊은 아가씨’의 ‘시골장터 나들이’로 폄훼한 것입니다.

한국 언론은 여성 정치인을 어떻게 소비하나

앞선 두 칼럼은, 류 의원에게 ‘실력으로 승부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조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될 것 없는 원피스 등원을 두고 나온 이러한 발언 근간에는 ‘실력이 없으니 복장으로 도발한다’는 젊은 정치인에 대한 은근한 무시도 깔려 있는데요. 이 부분에서도 의아한 지점이 있습니다.

원피스로 논란이 시작된 8월5일, 류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사용후핵연료(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발표한 공론조사에 대해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며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경북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증설을 위한 지역 공론조사 과정에서 재검토위원회가 반대 의견 주민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시민참여단을 꾸렸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인데요. 공론조사 조작이 사실이라면 민주주의에 큰 위해를 가하는 행위이고 정부의 원전 축소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입니다.

하지만 원피스 논란이 발생한 당일 해당 기자회견을 전한 언론은 대구KBS, 오마이뉴스뿐이었습니다. 국회의원으로서 중요한 의정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언론의 관심은 원피스에만 있었던 것입니다. 언론이 젊은 여성 정치인을 소비하는 방식, ‘류호정 원피스’ 그뿐이었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년 8월4~11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서울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와 네이버에서 ‘류호정’을 검색하여 나온 온라인 기사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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