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프리랜서, 미국법으로 보면 얄짤없는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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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프리랜서, 미국법으로 보면 얄짤없는 노동자

방송스태프 A씨는 ㄱ제작사에서 프로그램 제작을 마쳤지만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촬영 때 재정 상황을 이유로 지급을 미루던 제작사는 작업이 끝나자 말을 바꿨다. 제작사는 A씨와 제작사 관계가 ‘위탁계약’이라 밀린 돈을 줄 의무가 없다고 했다. 제작사는 앞서 A씨에게 ‘지원받은 제작비를 근로계약에 쓸 수 없도록 돼 있다’며 업무위탁계약서를 내밀었다. A씨는 제작사가 임금체불 핑계로 프리랜서 계약을 댄다며 억울해했다. 

한 헤어살롱에서 일하던 헤어디자이너 B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매달 급여를 미루던 원장은 B씨가 그만둔 뒤에도 밀린 임금을 주지 않고 있다. B씨는 고용노동부에 진정했지만 “프리랜서라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들었다. B씨는 “직원들 급여 떼어먹고 뻔뻔하게 사과 한번 안 하고 잘 먹고 잘 사는 원장이 너무 분하다”고 했다. 민사소송도 알아봤지만 원장이 돈을 숨겨놓은 탓에 방도가 없었다.

IT 개발자인 C씨는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했다. 그는 ㄴ회사가 정한 곳에 출근해 정규직과 같은 일을 했다. 하루 8시간 정시 근무하고 월차도 썼다. 보안서약서와 이메일, 메신저는 ㄴ회사 이름으로 등록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가 “더 이상 할 게 없다”며 그만두라고 했다. C씨가 해고에 문제를 제기하고 노동청을 찾아 체불임금 진정도 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계약서만 보고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프리랜서로 여겨졌던 우버·리프트 기사를 노동자라 규정하는 판례가 최근 각국에서 잇달아 나오면서 국내에 폭넓게 퍼진 ‘위장 프리랜서’ 관행에도 지적 목소리가 커진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는 “위장 프리랜서가 특정 업종에 국한되지 않고 전 산업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며 “업무 실질을 보고 이들이 자영자인지 노동자인지 판단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묻지마 판정’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A~C씨는 각국 법원이 내놓은 기준은 물론 국내 노동법에 따라 업무의 실질만 따져도 노동자로 인정해야 할 사례다. 

▲미국 abc10 유튜브 화면 갈무리.▲미국 abc10 유튜브 화면 갈무리.

캘리포니아법원은 지난 10일 차량호출서비스업 1·2위를 다투는 우버(Uber)·리프트(Lyft) 플랫폼 운전기사를 프리랜서가 아니라 노동자로 분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캘리포니아의회는 앞서 지난해 ‘AB5’ 법을 제정해 노동자가 △회사의 지휘·통제에서 자유롭고 △그 회사의 통상 업무가 아닌 일을 해야 하며 △스스로 독자적 사업을 겸직으로 운영한다는 조건 등을 모두 충족해야만 이들을 프리랜서로 볼 수 있다고 정했다. 법원은 이들 기업이 기사들을 독립계약자로 ‘위장’해 최저임금, 유급병가, 고용보험 등 의무를 피해왔다고 판단했다.

영국과 프랑스 대법원, 호주 공정노동위원회에서도 각각 우버 기사와 긱 이코노미 노동자, 음식배달 플랫폼노동자를 고용된 노동자로 판정하는 사례가 나왔다.

국내 산업 전반에도 ‘위장프리랜서’가 광범하게 퍼져 있다. 직장갑질119는 “학원강사, IT개발자, 트레이너, 미용사, 방송제작 등 수많은 업종 노동자들이 회사의 지휘통제 아래 회사의 통상 업무를 수행하고, 겸업을 절대 할 수 없는데도 프리랜서로 취급받으며 최저임금, 각종 수당, 연차휴가, 퇴직금 등 가장 기본적 노동자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했다. 일반 사무직도 프리랜서 계약 아래 3.3% 소득세를 떼이며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은 현행 노동법만 따져도 사용자 지휘감독과 업무 종속성 등에 미뤄 노동자로 인정받는다. 문제는 정부와 법원의 ‘묻지마 판정’이다.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은 근로관계를 업무 실질에 따라 판단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노동자에 입증 책임을 지우고 판단 기준도 엄격하는 탓에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거나 외근했다는 이유 등으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직장갑질119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며 “방송작가, 방송 스태프 노동자들이 (노동부에) 찾아가면 ‘방송계는 프리랜서’라고 재단하는 식”이라고 했다.

직장갑질119는 이 같은 사각지대를 없애려면 AB5법과 같이 사용자에 입증 책임을 묻고 일괄 적용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업이 변화하면서 고용 형태가 다양해지는 한편, 사업주는 얼마든지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고용관계를 맺고 고용관계 회피에 유리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만큼 노동자성 판단 기준도 시대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변호사(법무법인 공감)는 “AB5법의 ABC 요건과 같은 현실에 부합하는 근로자성 판단 기준은 당장 법률을 바꾸지 않고도 정립할 수 있다”며 “고용노동부가 근로자성 판단 지침만 새롭게 만들어 사용자에게 입증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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