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 사장 중흥그룹 인수 후 1년, 단점은 아직 없다
1989년 31세 권충원(61)은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이라는 직책을 버리고 새 도전을 한다. ‘경제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같은 해 2월 ‘헤럴드경제 기자’로 입사했다.
입사 31년이 지났다. 2017년 헤럴드 대표이사에 선임된 후 2019년 중흥그룹을 최대 주주로 맞이했다. 권 대표는 지난 3월 재선임됐다.
그는 헤럴드만의 콘텐츠로 채워진 종합미디어사로 발돋움하기 위해 특파원직 원복, 연간 20명 넘는 인재 채용, 인센티브제 도입 등 공격적 투자 계획을 밝혔다.
미디어오늘은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 3월 재취임한 권 대표는 코로나19로 위축된 상황을 기회로 삼아 ‘헤럴드만의 콘텐츠를 선보이는 미디어 기업’이 될 거라고 밝혔다.
- 헤럴드경제 기자, 편집국장, 헤럴드 전략사업총괄담당 이사 등을 역임했다. 한 조직에서 기자로 시작해 대표까지 됐다.
“‘경제 칼럼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다. 연구원을 하다가 경력기자로 입사했다. 입사 당시 나보다 못하는 기자가 한 명도 없었다. 다들 나보다 글 잘 쓰고 빨리 쓰더라. 경제학은 내가 더 많이 아는 것 같은데 그걸 독자에게 가장 쉬운 용어로 머리에 팍팍 들어가게 기사로 쓰는 게 잘 안 됐다. 선배나 부장이 연구원으로 돌아가라고 할 정도였다. 딱 3년 걸렸다. 3년이 지나고 나니 내가 쓰고 싶은 방향의 글을 쓰게 됐다. 그 기간이 고난이었다.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부장이 됐고, 문화부장, 국제부장을 빼고는 정치·사회·증권·사업·부동산·경제부장 등을 다 지냈다. 그러다 보니 편집국장 되는 게 유리했다. 헤럴드동아TV 대표이사도 하고, 경영에 발을 디뎠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로 임하다 보니 기자부터 대표까지 맡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목표했던 건 아니고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했다.(웃음)”
- 지난해 7월 중흥그룹이 헤럴드를 인수했다. 1년이 지났다. 중흥그룹은 큰 자본력을 갖고 있는데 인수 전후 달라진 게 있다면?
“단점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어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려면, 과감하게 결정해 시행할 수 있는 든든한 지원자가 있어야 하는데 든든한 지원자(중흥그룹)가 생겼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언론사들이 긴축경영을 하고 있다. 헤럴드는 오히려 위기를 기회라고 생각해 중흥그룹에 인재 채용, 스튜디오 건립 등을 건의했다. 중흥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줬다. 만일 헤럴드가 좀 더 업그레이드된 언론사가 됐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면 그건 전적으로 중흥그룹의 헤럴드 인수를 활용했다고 봐야 한다. 든든한 대주주가 있으니까 투자해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 앞으로 상당 기간 헤럴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믿고 있다.”
- 중흥건설의 헤럴드 인수에 언론계는 주목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건설자본이 언론사를 인수한다는 것에 대한 원론적 우려와 함께 실제 중흥건설 기사가 주요하게 다뤄지며 기자들의 문제 제기도 있었다. 보도 공정성 확보 방안이 있는가?
“대주주(중흥그룹)가 약속했다. 편집권은 확실하게 보장하겠다고 했다. 제가 편집국장을 하는 동안 국장이 중심이 돼 신문을 만들었다. 지금도 편집국장을 중심으로 신문을 만들고 있다. 편집국장과 기자 의견을 존중한다. 팩트가 틀리지 않는다면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요즘 기사를 쓰면 무척 소송을 많이 당한다. 팩트에 기반해서 쓴 기사가 소송을 당하고 해석의 차이가 있는 기사라 해도 기자 편에 서서 온몸으로 막을 것이다. 약속할 수 있다. 외부 압력을 회사 차원에서 막아줄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도 편집에 관해 부끄러웠던 적이 없다. 올해 2월부터는 사내에 상주 변호사도 두고 있다.”
- 헤럴드를 어떤 언론사라고 소개하고 싶나?
“‘헤럴드만의 콘텐츠를 선보이는 미디어사’라고 소개하고 싶다. ‘헤럴드’ 하면 독자들은 ‘코리아헤럴드’를 많이 떠올린다. 헤럴드경제는 10년 전부터 모바일 퍼스트, 7년 전엔 모바일 온리를 표방했다. 2030이 보는 기사로써, 경제 기사보다는 대중문화와 스포츠, 정치 등을 많이 신경 썼다. 그랬더니 많이들 보긴 하는데, 헤럴드만의 특색이 약하다. 똑같은 콘텐츠를 갖고는 승부를 내긴 어렵다. 딱딱한 경제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정치 기사의 경우 종합지들이 여야 인물의 말을 받는 식으로 쓴다면, 헤럴드는 한발 더 나아가 정책 등이 잘 되고 있는지 고민하는 기사를 써야 한다. 우리만의 색깔을 넣어야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써줘야 한다. 그런 콘텐츠를 쓸 수 있는 기자들이 있어야 한다.”
- 인재 투자를 최소 20명씩 3년간 60명 이상 채용한다고 했는데, 코로나19 이후에도 이 비전에는 변화가 없나? 기존 구성원을 헤럴드에 계속 다닐 수 있게 만드는 대안(특파원 제도 부활, 인센티브 등) 같은 것이 있다면?
“코로나19 국면이지만, 헤럴드는 앞으로 인력을 더 많이 뽑을 것이다. 후퇴는 없다. 올해 신입기자와 경력기자를 이미 채용했다. 하반기에 신입기자를 한 번 더 뽑을 것이다. 하반기 채용까지 끝내면 올해만 20명 넘게 채용하게 된다. 올해 다른 언론사들이 경영상 이유로 채용에 소극적일 텐데 헤럴드는 적극적으로 뽑을 것이다. 특파원 제도를 부활했다. 지난달 31일 뉴욕 특파원 공고를 냈다. 좋은 기사를 쓰면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는 벌써 시작했다. 헤럴드는 정년 보장의 장점이 있다. 다른 신문사는 임금피크제가 시작되면 첫해부터 기존 임금의 30~50% 삭감한다. 하지만 헤럴드는 첫해 10%만 삭감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필요성이 줄었다고 하더라도 퇴사를 종용하지 않는다. ”
- 7월 ‘헤럴드 종합 스튜디오’를 새롭게 설립했다. (헤럴드는 40평 규모의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스튜디오는 메인스튜디오와 소규모 스튜디오 2개로 구성됐다.) 영상에 대한 큰 혁신 계획이 있는 것 같다.
“헤럴드는 PD뿐 아니라 편집국 기자들도 간단한 동영상을 만들 수 있게 할 것이다. 계획은 10년 전부터 갖고 있었다. 우리는 영상을 제작하는 PD도 4~5년 전부터 있었다. 마음은 굴뚝 같았는데 회사 경영상 투자를 늘리지 못했다. 중흥이 대주주가 되면서 필요하면 무조건 할 수 있게 됐다.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방향이 맞는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큰 방향에서 편집국 기자들도 간단한 것부터 동영상을 만들게 할 것이다. 기자들이 교육을 받아 동영상 퀄리티가 높아지면 PD와 함께 작업하게 할 것이다. 앞으로 모든 기사는 신문 기사나 글 기사로만 나가면 안 된다. 동영상이나 최소한 그래픽 정도가 들어가야 한다. 글이 동영상과 그래픽 등과 같이 어우러지는 시대는 반드시 올 것이다. 뒤처지는 회사는 어려워지게 될 거다.”
- 신방겸영 문제가 있지만, 헤럴드가 YTN 지분 인수에 뛰어들 생각은 없는지? 보도전문채널을 해볼 생각은 없나? 10년 전 헤럴드미디어(HTV)가 보도전문채널사업자에 도전하지 않았나?
“2010년 당시 제가 편집국장이었다. 계열사 중에 케이블 채널 ‘헤럴드동아TV’가 있었다. 이후에 팔았다. 보도전문채널을 하고 싶으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방송 쪽은 거대자본이 들어가는 전략 사업이다. 여기에 어설프게 뛰어들면 안 된다. 지금은 헤럴드가 모바일사로 가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YTN 지분 이런 거에 눈길을 줄 때가 아니다.”
- 헤럴드 구성원들이 노사협의회 같은 소통 채널이 필요하다고 많이 요구해왔다. 소통 채널은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지?
“소통해야 한다. 화합도 해야 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고, 기본적인 것들을 강화해 나가겠다. (직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회사 발전을 위해 받아들일 건 있는지,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필요한 건 바로바로 정책에 반영하고, 시간이 필요한 정책은 중장기적으로 고민할 것이다. 안에서 앉아서만 하는 건 문제가 있다. 하지만 사측과 소통하는 대상도 같은 의미의 ‘공통분모’가 있어야 한다. 지속 가능한 회사가 되도록 노사가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 3년 후에 헤럴드가 70주년을 맞는다. 100년까지 갈 수 있는 회사가 되기 위해서 회사가 노력해야 할 부분을 받아들일 것이다. 솔선수범할 것이다. 그런 노력은 회사 측이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다. 또 복수노조라는 점도 고려해야 하는데 소통을 끊임없이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헤럴드 안에서 구성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다. 다른 언론사도 구성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다. 대표이사로서 이 같은 내부 반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두 가지 생각이 든다. 먼저 내가 반성할 대목이 있는지 고민한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브레이크가 걸리거나 잘 안 풀리면 나를 먼저 돌아보는 습관이 있다. 내게 문제가 있는지 살핀다. 두 번째 내부에서 외치는 요구의 목소리가 다 맞는 건 아닐 수도 있다. 회사 발전과 조직을 위해 받아들일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회사 발전과 조직을 위해 수용할 부분이 뭐가 있는지, 이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목소리 내는 게 예전과는 다른 것 같다. 이런 행동에도 트렌드가 있다.”
-어떤 점에서 다른가?
“예전에는 선배들이 걸어온 길을 일단 받아들였다. ‘라떼는 말이야’라고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 때는 당연히 선배의 길을 먼저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 내가 흡수할 건 뭐가 있는지, 아닌 건 뭐가 있는지 구분한 후 아니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지금은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뀐다. 젊은 친구들이 내는 의견 중 회사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빨리 수용할 것이다. 분명한 건 내가 대표일 때 우리 회사 발전이 후퇴하거나 위협받는 일은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