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했다.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지만 그걸 핑계로 갈등을 회피하고 방치했다.”(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
5기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발을 앞둔 가운데 4기 방통위가 “정치·자본 권력의 후견주의 규제기구 오명을 벗는데 소극적이었다”는 지적과 함께 5기 방통위는 “수신료 인상·방발기금 확충·미디어혁신기구 설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의 권한 재조정 필요성도 재차 등장했다.
한국언론정보학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11일 공동 주최한 ‘방송통신위원회 4기 평가와 5기 과제’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2019년 정부업무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기관 평가에서 방통위 종합평가 결과는 C등급으로 23개 장관급 기관들에서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와 함께 가장 낮은 등급”이라며 “방통위의 미래 비전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경종”이라고 지적했다.
방통위는 2019년 자체 과제 평가에서 △재난방송 관리체계 강화 △종편·보도채널 공적 책무 강화 등을 매우 우수~우수로 평가했으나 △지역방송 및 중소방송 활성화 △방송의 독립성·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정보통신서비스 이용자의 개인정보보호 강화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의 불공정행위 개선 등은 부진~다소 미흡으로 분류했다.
4기 방통위는 언론자유지수가 급상승했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및 편성·제작 자율성 여건이 개선되었고 재난방송 체계 역시 고도화되었고 외주제작시장 불공정 관행 근절 제도가 마련되고 있으며 해외 사업자에 대한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화, 장애인 방송접근권, 시청자미디어센터 지원 강화, 개인정보보호 등이 개선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채영길 교수는 “의미 있고 틀리지 않은 평가일 수 있지만 4기 방통위는 정치적 병행성을 극복하고 정치와 자본 권력의 후견주의 규제기구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적절한 제도적 장치와 조건을 만드는 데 다소 소극적이었다”고 지적했다. 현재 5기 방통위는 상임위원 5명 중 3명이 국회의원 출신이 되기 직전이다. 채 교수는 “학계에서는 방통위와 과기정통부와의 권한 재조정과 방통위원 선출 과정 문제 등이 4기 방통위에서 개선되길 기대했으나 실질적 조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방통위 조직과 권한의 개혁은 국정 주요 과제에 포함되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4기 방통위를 가리켜 “방통위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했다. 갈등조정의 기능이 구조적 한계 안고 있었지만 그걸 핑계로 갈등을 회피하고 방치했다”고 비판하며 “SBS는 2017년 방송사상 최초로 사장임명동의제 이뤄냈다. 합의 내용을 재허가 조건에 반영해달라고 노사가 공동으로 냈지만, 승인조건이 아닌 권고조건으로 밀려났다. 방송 적폐 청산의 소극성이 확인됐다”고 비판했다. 여전히 KBS·MBC의 지배구조는 여당에게 유리한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그대로다.
이날 또 다른 발제자였던 김동원 언론노조 전문위원은 “해마다 지상파 매출의 하락세 기울기가 IPTV 상승세만큼 가파르다”며 “진흥이 필요한 오래된 콘텐츠 사업자와 쇠퇴하고 있는 지상파 플랫폼에는 방통위가 규제업무를, 적정한 규제와 균등한 성장이 필요한 유료방송통신 플랫폼에는 과기부가 규제완화와 진흥을 맡는 기이한 업무 분장이 이뤄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위원은 “(방통위는) 과기부가 추진하는 규제 완화와 육성 정책에 따른 사후 문제의 조정을 떠맡게 되는 형태가 지속될 것”이라 우려한 뒤 “과기부를 견제하고 한계를 지적할 기관은 방통위밖에 없다”고 강조하며 과기부와의 권한 재조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동원 전문위원은 5기 방통위에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그는 “방통위의 재허가/승인 대상 사업자는 의무편성(전송)이거나 제외되기 어려운 방송사다. 보지는 않아도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공공재 성격을 갖고 있다”며 “이 방송사 특징은 전문편성PP, IPTV,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사적 재화와 다르다. 방통위는 시청자/시민이 이들 방송사에 가질 신뢰의 조건을 제도화해야 한다”며 신뢰 회복을 위해 공적 재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원 전문위원은 “5기 방통위는 수신료 인상과 방송통신발전기금을 확충해야 한다. 진입비용이 인상되면 시청자/시민이 공적 영역의 방송에 자신이 미치는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다. 공영방송 임원 선임 시 국민 참여를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형태로 제도화한다면 수신료 인상을 위한 시민/시청자의 영향력 강화 근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어 “방발기금의 경우 방통위와 과기부로 이원화된 기금을 통합 운용해 성장하고 있는 IPTV 및 유료통신서비스사업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지상파 방송의 공적 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지원 기금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OTT와 포털서비스 지배사업자로부터 방발기금을 징수해 매체간 교차 보조를 할 수 있는 미디어다양성기금으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0년 방통위 방발기금 규모는 2000억원대, 과기부 방발기금 규모는 9000억원대다.
김동원 전문위원은 “더불어민주당에서 21대 총선공약으로 미디어혁신기구 설치 운영을 명시한 바 있다. 민주당-언론노조 정책협약서에서도 미디어공공성 강화, 미디어콘텐츠 진흥을 위한 전담 부처 설치 및 법제 일원화를 추진하기로 했다”며 “시민사회에서 시작한 사회적 논의기구의 조속한 설치에 5기 방통위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