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비친 샘 오취리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의정부고 졸업생들의 관짝소년단 ‘밈’에 인종차별적 요소를 지적한 방송인 샘 오취리가 비판에 직면했다.
기발한 패러디로 매년 주목을 받는 의정부고 학생들의 졸업식 사진. 이번에는 최근 인기를 끄는 가나의 장례 모습 영상을 패러디했다. 이들은 검은 색으로 얼굴을 칠했다.
샘 오취리는 6일 자신의 SNS를 통해 “흑인들 입장에서 매우 불쾌한 행동”이라며 “제발 하지 말라, 문화를 따라하는 것 알겠는데 굳이 얼굴 색칠까지 해야 해요?”라고 지적했다.
그랬던 샘 오취리가 7일 사과했다. 그는 “학생들을 비하하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라며 “의견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선을 넘었고 학생들의 허락 없이 사진을 올려서 죄송하다”고 했다.
이 사이에는 강력한 ‘반발’이 있었다. 흑인을 따라 분장한 걸 차별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에 샘 오취리가 영문으로 남긴 글이 한국에 비판적이라는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과거 샘 오취리가 방송에 출연해 얼굴을 찌푸리는 대회에 대한 토크를 나누며 눈을 찢은 게 동양인 비하라는 주장, 샘 오취리가 학생들의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언론이 주도적으로 이슈를 확대 재생산했다. 포털 네이버에서 지난 6일부터 9일 오후 5시40분까지 ‘샘 오취리’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는 448건에 달한다. 다수 언론은 일반적인 연예인 구설과 같은 방식으로 발언 그 자체와 ‘논란’ ‘vs’ 등을 한 제목의 공방으로 소비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샘 오취리에 비판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스포츠동아는 샘오취리의 사과문을 가리켜 “전형적인 자기 합리화. 그의 선 넘은 지적은 무지했으며, 역풍을 자초했다”고 평가했다. 일부 언론은 동양인 비하 논란도 적극적으로 보도하며 이를 역풍이라고 했다. 스포츠조선 “[단독] 인종차별 비난 샘 오취리, 과거 눈찢기 방송 논란→SNS 댓글 차단” 기사가 대표적이다. “‘동양인 비하’ ‘케이팝’까지 건든 샘 오취리…‘당신나라로 돌아가달라’ 역풍”(뉴스1)처럼 샘 오취리를 비난하는 표현을 제목에 쓴 경우도 많았다.
언론의 시선은 ‘차별이 아니다’라는 데 쏠리기도 했다. 국민일보는 “학생들은 외려 역차별 고민했다, 흑인 비하의도 없었다” 기사를 통해 ‘의도가 없었다’는 학교측 해명을 부각하며 ‘의도가 없으니 차별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밈의 당사자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패러디를 유쾌하게 받아들인 점도 샘 오취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스포츠동아는 “(당사자가) 유쾌하게 패러디를 수용, 인종 차별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했다.
‘클릭수’에 과하게 주목한 기사도 보인다. 위키트리는 “‘진짜 이랬다고...?’ 과거 샘 오취리가 여자 연예인에게 보인 충격적인 행동” 기사를 내고 그의 2014년 TV 출연 당시 문제적 언행을 꺼내들었다. 스포츠경향도 대동소이한 기사를 냈다. 아무 상관 없는 이슈를 끌어다 흥밋거리로 소비하는 전형적인 ‘재조명’ 어뷰징 기사다. 인사이트는 “‘대한민국을 기만했다’…샘 오취리를 '추방'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기사를 통해 크게 주목 받지도 않는 청원을 언급한 기사를 만들었다.
이 같은 보도는 본질을 벗어나 있다. 학생들의 의도가 없었고 당사자가 유쾌하게 받아들였다고 해서 ‘블랙페이스’가 인종 차별 소지가 없다고 규정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유튜브 영알남 채널에서는 흑인의 입장에서 콘셉트가 좋았고 취지는 이해하겠지만 블랙페이스를 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지적을 전했다. 샘 오취리의 우스꽝스러운 표정모사의 동양인 비하 소지는 그것대로 비판할 문제이지 샘 오취리가 지적한 인종차별 문제 자체를 상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화두가 있으면 언론은 심층적인 논의로 이끌어야 한다. 그런데 언론은 공방 중계와 공격성 보도로 정당한 문제제기까지 묻어버렸고 본질과 거리가 먼 근거를 가져와 차별이 아니라고 단정한 것이다.
샘 오취리가 던진 메시지는 한국 사회에 시사점이 있다. ‘블랙페이스’ 문제에 한국 사회가 무디게 반응하는 건 사실이다. 샘 해밍턴도 비슷한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다. 외려 무디기 때문에 의도가 없었다며 문제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인종차별 문제는 물론 전반적인 혐오차별 표현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작지만 다른 목소리도 있었다. 노컷뉴스는“‘몰랐다’거나 ‘그럴 의도가 없는 패러디였다’는 해명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인종차별을 비롯한 인권 감수성에 안일하고 둔감한지를 방증한다”며 “내로남불을 지적하기 전에 의정부고 ‘블랙페이스’ 문제를 계기로 우리 안에 똬리 튼 모순을 용기있게 직면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프레시안은 “‘동양인의 눈이 작은 건 팩트인데 어디 우리나라의 교육을 지적질 하느냐’라고 비난이 (외국에서) 쏟아진다면?”이라며 반대 상황을 가정하며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을 지적했다.
“흑형이라는 말은 우리가 듣기에 억양이나 어감이 기분 나쁜데 그걸 모르고 쓰는 분이 많다.” 한현민의 지적이다. 콩고 출신 라비는 “백인들에게는 보통 ‘어디서 공부하세요?’라고 물어보는데 흑인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는 ‘어디서 일하세요? 어디 공장?’이라고 묻는다”고 전했다. 한국 언론이 아닌 BBC코리아가 지난해 영상으로 다뤘던 내용이다. 이렇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차별적 표현이 이어지고 있고, 다수의 한국 언론은 여전히 무감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