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운동뚱, 나를 위한 운동을 고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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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운동뚱, 나를 위한 운동을 고민하다

일찌감치 한국에는 무수한 요리 프로그램이나 맛집 탐방 프로그램이 존재했다. ‘먹방’이라는 표현이 인터넷 방송이나 1인 미디어 발전으로 유행하기 전에도 TV 프로그램들은 최대한 출연자들이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시청자들이 절로 군침이 당기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출을 신경써왔다. 하지만 이미 차고 넘치는 맛집 탐방 프로그램 세계에서 이토록 한국사회에 파장을 낳은 프로그램이 나오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그것도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케이블 채널에서 말이다.

영광의 주인공은 2000년 개국 당시에는 코오롱그룹, 현재는 케이블 회사 딜라이브를 소유한 연예기획사이자 미디어 그룹인 iHQ가 소유하고 있는 케이블 채널 ‘코미디TV’의 ‘맛있는 녀석들’이다. 2015년 초 파일럿 방송을 거쳐 그해 3월부터 본방송에 돌입한 ‘맛있는 녀석들’은 2020년 현재까지 약 6년 가량 꾸준히 방송되며 시청자 사랑을 받고 있다. ‘맛있는 녀석들’ 포맷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코미디언 김민경, 김준현, 문세윤, 유민상 네 명이 매회 다양한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야무지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다시 해당 음식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의 반복이다. 하지만 이들 고정 출연진은 무척이나 맛깔나게 음식을 먹는 것은 물론, 코미디언 기질을 최대한 살린 입담과 상황극으로 시청자들을 단숨에 사로 잡았다. 2020년 현재 ‘맛있는 녀석들’은 그야말로 TV 맛집 탐방프로그램 최강자가 됐다.

지상파도 종편도, CJ ENM 계열도 아닌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이 6년간 장수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코미디TV라는 케이블 채널을 몰라도 맛있는 녀석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이다. 프로그램 인기가 좀체 식을 줄을 모르자 iHQ는 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한 스핀오프(spin-off, 파생) 예능을 만들기로 하였다. 올해 초부터 시작한 ‘JOB룡 이십끼’와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이하 오늘부터 운동뚱)이다.

▲맛있는 녀석들 홈페이지 화면.▲'맛있는 녀석들' 홈페이지 화면.

JOB룡 이십끼는 제목에 붙은 ‘JOB’(직업)이라는 말대로 ‘맛있는 녀석들’에 고정 출연하는 코미디언 유민상이 다양한 직업을 체험한다는 콘셉트의 파생 예능이다. JOB룡 이십끼는 고시원, 세차장, 고물상, 청소부, 홈쇼핑 방송사, 통계청 같이 일상에서 흔하게 접하지만 쉽게 내부 속살을 알기 어려웠던 직업 세계를 보여주며 적지 않은 인기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콘셉트 예능은 JTBC가 운영하는 웹콘텐츠 전문 브랜드 ‘스튜디오 룰루랄라’가 제작하는 웹예능 ‘워크맨’을 비롯해 이미 경쟁자가 무수하게 존재하는 상황이다. JOB룡 이십끼는 비교적 준수한 조회수를 지속적으로 기록 중이지만 압도적 인기나 주목을 모은다고 말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히려 7월 현재 압도적 주목도를 자랑하는 스핀오프는 오늘부터 운동뚱이다. 오늘부터 운동뚱은 맛있는 녀석들에 고정 출연 중인 코미디언 네 명이 모두 초고도 비만이라는 점에 착안한 파생 예능이다. 고정 출연진들은 맛있는 녀석들에 등장하기 전에도 뚱뚱한 상태였다.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할 때도 자기 몸매를 주제로 코미디를 했을 정도다. 하지만 맛있는 녀석들은 특성상 매주 겉으로 보기에도 엄청난 양의 음식들을 섭취하는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들은 고정 출연진들이 압도적 속도와 식사량을 자랑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면서도 계속 불어나는 이들의 몸집을 걱정하고 있었다. 동시에 이러한 걱정들은 한창 맛있는 녀석들의 파생 프로그램을 계획하던 제작진으로서는 좋은 소재가 됐다.

하지만 오늘부터 운동뚱은 단순한 파생 예능을 넘어 이전에 맛있는 녀석들을 보지 않고 있던 시청자들에게도 많은 파장을 주고 있다. 본래 출연진 네 명이 돌아가면서 등장하기로 돼 있던 오늘부터 운동뚱에서 맨 첫 번째 주자로 낙점된 김민경 모습이 결정타였다. 오늘부터 운동뚱 제작 발표회에서 즉석 복불복 게임을 통해 첫 번째 운동 대상자로 선정된 김민경은 10주간 진행한 운동 과정을 통해 많은 시청자들에게 ‘운동’의 의미를 알렸다. 처음에는 근력 운동을 하는 것을 무척이나 꺼려하던 김민경은 트레이너의 1:1 밀착 트레이닝을 통해 조금씩 자신의 가능성을 알게 됐다. 동시에 이전까지 전문적으로 운동한 적이 없었는데도 근육량이 많지 않으면 좀체 하기 어려운 트레이닝을 손쉽게 수행하는 모습을 통해 운동하는 여성들에게 많은 귀감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오늘부터 운동뚱이 던진 메시지는 강력하다. 오늘부터 운동뚱은 이전까지의 운동 프로그램과 달리 ‘날씬한 몸매’나 ‘단기간 개선 효과’에 초점을 주지 않는다. 평소 운동량이 부족한 사람이나 자기 건강 상태에 의문을 갖고 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운동하고 관리해서 건강한 생활 습관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오늘부터 운동뚱의 썸네일.▲'오늘부터 운동뚱'의 썸네일 화면. 

운동을 중점에 둔 프로그램이 없던 건 아니었다. 2011년 8월부터 11월까지 SBS에서 방송된 일요 예능 ‘다이어트 서바이벌 빅토리’(이하 빅토리)가 대표적이다. 빅토리는 해외에서 방송된 초고도 비만인 사람들 대상으로 한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거의 그대로 벤치마킹한 프로그램이었다. 오디션을 통해 초고도 비만인 사람을 선정하고, 선정된 사람은 유명 스포츠 트레이너 숀리와 함께 매주 정해진 운동량과 감량치를 달성해야 한다. 매주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 사람은 탈락하고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다시 말해 살을 가장 많이 뺀 사람은 상금 1억원과 승용차 1대, 5년간 방송 출연 보장과 잡지 모델이 약속됐다. (단, 중도 탈락자에게도 숀리가 운영하는 트레이닝 체육관에서의 개인 지도를 약속했다.)

빅토리는 해외에서는 자주 진행됐어도 한국에서 최초로 진행되는 ‘다이어트 서바이벌’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동시에 해외의 동종 예능과 같은 문제에 시달렸다. 숀리를 비롯한 스포츠 트레이너들은 급격하게 살을 뺄수록 더욱 쉽게 다시 살이 붙는 ‘요요 현상’이 오기 쉽다고 강조했지만 빅토리는 애초부터 ‘서바이벌 오디션’을 지향하는 예능이었고 당연히 한정된 기간에 최대한으로 몸무게를 강조하는 것으로 겨루는 프로그램으로 콘셉트가 잡힌 지 오래였다. 시청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수 있는 운동 방식도 지속적으로 강요됐다.

어디 그뿐일까. 명시적으로는 ‘운동’이나 ‘다이어트’에 초점을 두지는 않았지만, 결국 미디어나 사회 통념이 선망하는 미에 중점을 맞춘 프로그램은 빅토리 전후로도 꾸준히 제작됐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CJ ENM의 여성 시청자 대상 케이블 채널 ‘스토리온’(현, OtvN)을 통해 방송된 ‘Let 미인’은 방송이 처음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형편상 성형 수술이나 몸매 보정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선발해 완벽하게 지원한다’는 콘셉트가 논란이었다. 제작진들은 최대한 감동을 만들기 위해 한 눈에 봐도 당장 교정 수술이 필요한 사람이나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지속적으로 폭언이나 폭력을 당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발했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문제를 ‘성형 수술’이나 ‘지방흡입 수술’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이러한 예능들이 줄기차게 등장하는 상황에서 오늘부터 운동뚱은 분명 ‘운동’을 주제로 하지만 다른 길을 걷는다. 첫 주자로 등장했던 김민경이 천부적 근육량과는 별개로 지속적 운동을 통해 활력을 찾는 것은 물론 맛있는 음식을 걱정 없이 먹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면, 이후 두 번째 주자로 출연한 코미디언 유민상을 통해서는 매일 1~2시간 꾸준한 운동이 무릎 질환을 비롯해 여러 대사 질환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냈다.

유민상은 김민경과 달리 운동을 특별하게 하지 않아도 근육량이 많았던 특수한 케이스는 아니며, 오히려 일상 생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유형에 더 가깝다. 제작진과 작중에 등장하는 트레이너들은 김민경에게는 물론 유민상에게도 지금 당장 날씬한 몸매가 될 수 있다거나 반드시 살을 빼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좀 더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고 싶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오랫동안 하고 싶다면 꾸준히 몸을 쓰고 운동하는 것이 중요함을 10주간의 트레이닝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부터 운동뚱'에서 운동하는 유민상의 모습. 

이러한 운동 프로그램 콘셉트 변화는 한국사회에서 ‘운동’이 갖는 의미나 방향성이 점차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했던 ‘빅토리’나 ‘Let 미인’과 같은 프로그램은 결국 계속 제작 의도로는 ‘몸매 등으로 인한 개인의 고통을 해결’한다고 말을 해도 실제 프로그램 내에서 서바이벌 콘셉트로 오히려 나중에 더 큰 해를 줄 수 있는 무리한 운동을 강요하거나 매주 출연하는 사람들 고통을 상업화한다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반면 오늘부터 운동뚱은 운동 중심을 내 자신의 소소한 일상에 놓는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단계에 있어서나 출연진, 시청자 모두 ‘단기간 확실한 효과’를 말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 운동이 앞으로 출연자들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을 말하며 자신들이 제작하거나 즐겨보는 ‘맛있는 녀석들’의 지속적 제작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 역시 광고 수익을 위해서 제작된 예능이라는 점에서는 빅토리 등 프로그램과 다르지 않아도, 지향점을 변형시키는 선택은 이전의 운동 예능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소소하지만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물론 오늘부터 운동뚱 하나만으로 운동이 한국사회에서 지니는 의미가 당장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부터 운동뚱 영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KBS 토요 관찰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는 2019년 10월부터 고정 출연한 것은 물론 오늘부터 운동뚱에도 모습을 드러냈던 스포츠 트레이너 양치승의 촬영분에 올해 상반기부터 여러 연예인들을 지속적으로 출연시키며 피트니스 대회에 출전하는 모습을 그렸다. 평소 운동에 관심없는 연예인들이 단기간 집중 피트니스를 통해 아름다운 몸매를 가꾸는 과정은 얼핏 보기엔 오늘부터 운동뚱과 비슷해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운동 결과가 ‘몸매’로 귀결되는 모습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시각적 효과를 자극하는 단계에서 끝나버리는 문제를 낳는다.

동시에 이전부터 유튜브에서 전문적 헬스 트레이너로 인기를 얻고 오늘부터 운동뚱에서도 등장해서 호평을 받던 유튜브 채널 ‘피지컬 갤러리’ 트레이너 ‘김계란’은 7월부터 인터넷 방송인이 UDT 특수부대의 혹독한 체험과 훈련을 수행하며 몸매는 물론 심리를 바꿔낸다는 콘셉트의 ‘가짜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등장하는 사람이 모두 인터넷 방송인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가혹한 훈련’이라는 자극적 상황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며 감동을 추구한다는 콘셉트는 결국 이 프로그램 모티브가 된 MBC 군대 체험 예능 ‘진짜사나이’와 차이 없는 문제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나 가짜사나이 모두 오늘부터 운동뚱에 드러내 호평을 받았던 스포츠 트레이너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오늘부터 운동뚱은 분명 운동 의미와 방향성을 조금씩 개인 중심으로 변화하려는 시도지만, 정작 이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운동 프로그램 중심을 출연자가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나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에 맞추고 있다.

이렇게 분명 갈 길은 멀지만 오늘부터 운동뚱의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한 운동으로 점차 경향이 바뀌는 것은, 한편으로는 한국사회 속 개인 주체성이 점차 변화하는 것과도 맞닿아 있는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 흐름이 더욱 건강하고, 함께 손을 잡고 실천하며 사회를 바꾸는 길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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