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선택 자유 침해 국회서 오탈제 폐지 논의하나
“자살하라는 댓글도 많아요. 심한 얘기 많죠. ‘오탈XX들 중 로스쿨 비판할 사람 없다’, ‘죽는 게 나음’, ‘잉여인간 아님?’, ‘로스쿨제도까지 욕먹이지 말라’ 등 약점이 있는 사람을 놀리고 괴롭히는 사이버불링(사이버상에서 집단 괴롭힘)이죠.”
유튜브 ‘로스쿨TV오탈누나’를 운영하는 탁지혜씨 말이다. 그의 콘텐츠에는 인격을 모독하는 공격적 악플이 많이 달린다. 그가 불법을 저질렀거나 남에게 심한 피해를 줬다면 모를까, 그는 그저 자신의 삶을 사는 시민이다. 그리고 변호사시험법 제7조(응시기간 및 응시횟수의 제한) “시험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석사학위를 취득한 달의 말일부터 5년내 5회만 응시할 수 있다”는 조항 탓에 로스쿨을 나오고도 더 이상 변호사 시험을 볼 수 없는 피해자다.
탁씨는 지난달 3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국가가 강제로 5년(5번)의 제한을 두는 제도가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에 있었다면 이런 분위기겠냐”며 “처음 설계할 때부터 문제가 있었지만 다들 쉬쉬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0명 이상 로스쿨에 입학하지만 변호사는 1500명만 될 수 있다. 5년이 지나면 자연스레 변호사 시험에 영영 응할 수 없는 ‘오탈자’가 발생한다. 국가가 만든 ‘오탈자’는 수년간 준비한 진로가 막힌 채 사회적 혐오의 대상이 됐다.
“5년 사이에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공부를 못한 사람들도 있고 자녀가 아파서 못한 사람도 있어요. 심지어 암에 걸렸는데도 5년 안에 해야 하니까 치료보다 시험을 보러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변에 개명한 사람들도 많고 이혼 당한 사람들도 있어요. 인간적인 환경에서 시험을 봐야지 이런 것 자체가 비인간적이죠. 저(로스쿨 3기)는 멋모르고 빨리 졸업해서 변시(변호사시험)을 봤는데 최근에는 졸업하고 5년이니까 졸업을 늦게 하기도 해요.”
탁씨는 “법무부에서 최소한 ‘오탈자’들에 대한 실태조사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로스쿨 제도를 도입했는데 당시 이를 추진한 사람들, 같은 계열 정당으로 정권을 잡은 현 정부, 당시 사법개혁추진위 기획추진단장이었던 김선수 현 대법관 등이 오탈제도에 문제가 있다고만이라도 말해주길 바라는 게 탁씨 바람이다. 그는 “대학에서도 등록금만 받지 사실 아무 관심이 없고 다들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서울행정법원은 한 로스쿨 졸업생이 5년간 변호사 시험에 불합격한 뒤 다른 대학 로스쿨에 입학한 후 ‘변호사시험 응시할 지위가 있음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에서 ‘응시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모든 것을 건 투쟁이었고, 이마저 차단한 판결이었다.
소위 ‘로스쿨은 부자들만 간다’는 편견 탓에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분위기도 있다. 탁씨는 “눈물나는 이야기들이 많다. 한 학생의 어머니께선 로스쿨 돈이 많이 드니까 난방비 아끼겠다며 난방조차 안 하다가 병나서 돌아가신 분도 있다. 다들 힘들다”라며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분들도 있지만 그런 분들이라고 기본권을 침해 당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오탈자는 자연스레 늘어난다. 오탈자들은 매년 오탈제도를 규정한 법에 위헌소지가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다. 탁씨는 “로스쿨 1기와 2기 때 헌법소원을 했을 때는 다 졌는데 3기(2018년 헌법소원 제기)때부터 헌법재판소에서 결과가 안 나오고 있다”며 “법조인들도 위헌 소지가 있거나 문제가 있는 걸 다 아니까 눈치보기 시작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탁씨는 “노숙자를 서울역 앞에서 쫓아낸다고 노숙자가 사라지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고시낭인을 없애겠다고 이런 식으로 변호사시험 자격 자체를 박탈하는 건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라고 비판했다. 사실 오탈제도를 좀 들여다보면 폐지 쪽 의견에 공감할 부분이 많지만 변호사들의 경우 변호사가 되는 길을 좁히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저항이 만만치 않다.
지난 국회에서 로스쿨 졸업 후 5년 내 임신과 출산을 했을 경우 1회에 한해 시험응시 기회를 더 주는 법률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의했지만 통과하지 못했다. 민주당 정권에서 만든 제도가 현재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고, 사회적 갈등까지 야기하는 가운데 후속조치가 절실한 시점이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탁씨가 운영하는 유튜브에서 “변호사들의 단합된 힘에 의해 변호사시험 제도를 지금과 같이 경쟁시험 상대평가제도로 묶어둘 경우 그 피해는 국민들이 지게 된다”며 “로스쿨 제도 설계 과정에 관여했던 사람으로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를 늘려 국민에게 법률서비스를 확대하는 건 사법시험을 없애고 로스쿨 도입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변호사가 많아져 법률서비스가 필요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변호사를 접할 수 있어야 하지만 변호사단체를 중심으로 합격자 수를 통제하자는 주장을 하면서 ‘로스쿨 도입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탈제도는 기존 변호사단체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제도 중 하나다. 시간이 갈수록 변호사 시험을 보는 로스쿨 졸업생 수가 많아지고 변호사 합격자 수가 늘지 않는 한 변호사 합격률은 떨어진다. 그러면 변호사 합격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면서 변호사 합격자 수를 늘릴 가능성이 커진다.
한상희 교수는 “로스쿨의 기본 취지대로 ‘시험과 선발’이라는 방식이 아니라 ‘교육과 양성’이라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헌재가 판단을 바꿔야 하고 정부와 국회도 입법개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윤영석 미래통합당 의원이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윤 의원 측에서는 탁씨를 만나 의견을 듣기도 했다. 윤 의원실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오탈제 폐지 법안을) 준비 중에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