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과 이석기 그리고 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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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과 이석기 그리고 태영호

무려 8년째 감옥에 있는 이석기 의원, 그 동생을 석방하라고 청와대 앞에서 무려 1000일 넘게 1인농성을 해온 누나 이경진 님. 그 이경진 님이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말기암에 걸리셨다고 한다. 그럼에도 동생에게 ‘너가 나올 때까지 무조건 살아있겠다’고 약속하신다. 이 참혹한 현실에 그저 한없는 슬픔과 분노만 차오른다.

혐오와 차별이 극심한 한국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법이 차별금지법이라면, 반드시 없어져야 하는 법은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은 특정한 사상과 견해를 마음껏 혐오하고 차별할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다양한 혐오를 거부하고 벗어날 자유를 보장해야 할 차별금지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나라에 살면서 홍콩 보안법에 대해 뭐라고 할 자격이 있을까? 정치적 입장이 다르더라도 사상과 표현을 자유를 짓밟는 것은 잘못이기에 홍콩 보안법을 반대할 것이다. 그런데 홍콩 보안법을 비판하며 연대하는 목소리보다 한국의 국가보안법 폐지와 이석기 의원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작은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은 아마도 바다 건너의 홍콩 보안법을 비판하는 것은 뭔가 의미있고 멋진 행동처럼 보이는 부담없는 일인데 반해서, 이석기 의원 석방을 요구하는 것은 낡은 좌파나 ‘종북’으로 보일 수 있다는 부담감을 감수해야하는 바로 눈 앞의 일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녀사냥을 핵심 통치수단으로 악용하던 박근혜 정부가 무너지고, 이제 종북몰이도 한물갔다는 상황에서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것은 ‘혐오감정’의 끈질긴 생명력 때문일 것이다. 언론과 국가기구와 거의 전 사회가 달라붙어 만들어낸 낙인과 편견이 ‘혐오감정’을 만들어 냈고 그것이 8년째 남아서 우리 사회와 감옥의 이석기 의원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는 그 끔찍한 경험과 아픔을 녹여서 얼마 전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라는 책을 펴냈다. 깊이있는 탐구와 고민 속에서 나온, 혐오표현과 그것을 규제하고 탈피할 다양한 방안을 담은 이 책을 읽다보니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마지막에 나왔다.

거기서 이정희 전 대표는 종북 혐오표현의 피해자들이 그 마녀사냥을 묵인, 방관했던 다수의 사람들을 미워하고 탓하기보다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까지 비난하고 책임을 물으려 해서는, 이들을 ‘공존할 권리’가 인정되는 사회로 함께 가는 동반자로 만들 수 없다. 새로운 사회로 함께 갈 사람을 모으지 못하면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억울하고 화난다는 감정의 토로에서 벗어나, 그들이 그렇게까지 하도록 만든 힘겨운 시절이었으니 이제 함께 세상을 바꾸자는 결론으로 가볼 수는 없을까.”

상처를 딛고서 더 넓고 높은 곳으로 나아가려는 안간힘이 느껴져 미안하고도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사실,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 시절 그 대대적 종북몰이의 쓰나미에 직면해 위축되면서 선을 긋고 거리를 뒀던 나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 속에서 내란음모 조작은 성공했고 이석기 의원은 구속됐고 통합진보당은 강제해산 당했다.

그래서 더 이상 이석기 의원의 지지자와 친한 동료들과 입장이 비슷한 정치세력과 일부 종교인, 인권단체들만이 외롭게 ‘이석기 의원 석방’을 외치는 그런 장면은 그만보고 싶다. 그 외롭고 오랜 외침 속에 사무치던 서러움이 결국 이경진 님에게 말기암을 가져다 줬을 것이다.

이제, 이석기 의원과 가깝지 않았던 사람들, 입장이 다른 사람들, 종북몰이의 직접적 표적이 아니었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사람들이 앞장서서 ‘이석기 의원 석방’을 외쳐야 한다. 특히 종북몰이가 휘몰아치는 과정에서 서로간에 큰 상처와 불신, 갈등이 남게된 정의당 등에서 먼저 그런 목소리가 나오길 기대한다.

▲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2013년 9월2일 정기국회 첫날 국회 의원회관 오병윤 의원실에서 열린 대책회의 참석을 위해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2013년 9월2일 정기국회 첫날 국회 의원회관 오병윤 의원실에서 열린 대책회의 참석을 위해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그 아픔과 트라우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이것저것 따지기보다 거침없이 나서는 장혜영, 류호정 의원같은 새로운 세대가 앞장서주길 기대한다. 그것 또한 정의당 혁신의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용기있는 한걸음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정치적 견해와 사상에 따른 가장 극심한 형태의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정의당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의 정신에도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진보개혁적 의원들이나 민주당 지지자들 속에서도 그런 목소리가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저 강고한 보수카르텔(언론-검찰-우파)의 대대적인 낙인찍기, 몰아가기와 ‘죽을 때까지 찌르기’는 사실 조국몰이 때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명박근혜 시절의 종북몰이에서 그 원형을 볼 수 있고 더욱 더 대대적이고 악랄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무기력하게 방관하거나, 비겁하게 동조한 결과가 지금 상황일지 모른다.

아마 ‘그보다 먼저 노무현, 한명숙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 나타난 양상들이고 그때 좌파들도 동조한 거 아니냐’고 되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먼저였고, 누가 더 서운하고 상처받았을까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언론, 검찰, 국정원, 사법부, 정부, 거의 모든 정당이 합심해서 낙인찍고 마녀사냥하고 심지어 시민사회와 일부 진보진영까지도 방관한 속에서 감옥에 간 사람이 8년이 지난 지금도 갇혀있다는 것이다. 동생을 석방하라고 절규하던 누나는 말기암에 걸려서 살 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 나서서 그의 석방을 요구해야 하고, 문재인 정부는 당장 이석기 의원을 사면하고 석방해야 한다. 물론 이번 8·15 광복절 때 이석기 의원을 사면하고 석방하면 수구언론, 미통당과 보수적 여론은 하늘이 무너진 듯이 난리칠 것이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더 한층의 대대적인 공격을 할 것이다. ‘역시 적과 내통하는 사회주의 정권’이라고 우길 것이다. 하지만, 총선에서 180석의 거대여당이 되고도 그런 공격이 무서워서 눈치보고 타협하면서, 도대체 무슨 개혁을 한다고 믿어달라고 한 것인가.

종북몰이와 ‘종북’혐오, 그것이 만든어낸 혐오감정에 우리 사회가 계속 타협해 간다면, 국회에서 탈북자 출신의 의원 태영호가 통일부장관 후보 이인영에게 ‘아직도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사상전향을 안 한 것이냐?’라고 ‘검증’하는 이런 희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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