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봉곤 작품 논란, 출판계 뒷북 대응이 키웠다

필리핀 뉴스
홈 > 커뮤니티 > 뉴스
뉴스

소설가 김봉곤 작품 논란, 출판계 뒷북 대응이 키웠다

7월 초부터 한국 문학계가 논란으로 들썩이고 있다. 논란의 주인공은 지난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하여 ‘딸에 대하여’의 김혜진,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의 박상영과 함께 퀴어 문학을 선보이며 많은 주목을 받아왔던 소설가 김봉곤이다.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지난 7월10일 트위터로 하나의 폭로가 올라오면서부터였다.

폭로에는 김봉곤이 2019년 문학과지성사가 출간하는 문예지 ‘문학과 사회’에 처음으로 발표하고, 올해 초 문학동네가 주관하는 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단편 ‘그런 생활’에서 허락도 없이 메신저 카카오톡을 통해 사적으로 주고 받은 대화를 단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겼다는 내용이었다. 작품을 게재하기 전 김봉곤에게 자신이 발표할 소설에서 자신을 언급해도 되겠냐는 부탁이 들어와 허락하긴 했지만, 최소한의 가공도 거치지 않은 채로 성적수치심이나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까지 그대로 담긴 것이 문제였다. 폭로자이자 피해자인 익명의 네티즌은 김봉곤이 소설은 문학과지성사로 송고한 이후 자신에게 보여줄 때 이 사실을 알고 강하게 항의하며 수정을 요구했으나, 김봉곤은 자신의 수정 요구를 단 한 차례도 수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폭로자는 출판사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피해자는 단편 ‘그런 생활’에 상을 수여하고 수상작을 모아 작품집을 출간한 문학동네는 물론 해당 단편을 수록한 소설집 ‘시절과 기분’을 펴낸 출판사 창비에게 피해 사실을 적시한 공문을 보내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지만 이는 반영되지 않았고, 오히려 근래 인기 작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김봉곤의 작품을 홍보한 것을 비판했다. 단편 ‘그런 생활’을 처음으로 게재한 문예지 ‘문학과 사회’를 발간하는 출판사인 문학과지성사 정도만 피해자가 수정 요구를 하기 전 미리 해당 사건을 인지하고 온라인 열람 서비스를 중단하였을 뿐이었다.

▲김봉곤 ▲김봉곤 '시절과기분' 책 표지.

폭로를 담은 글이 트위터를 통해 게재되지마자 글은 무수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김봉곤은 2010년대 후반 데뷔한 작가들 중에서는 빠른 속도로 명성과 유명세를 얻은 작가였다. 근래 한국 소설에서 주목받고 있는 퀴어 주제의 이슈를 다룬 것도 있었지만, 김봉곤 작가 본인이 한국 소설가 중에서는 최초로 자신이 ‘게이’임을 선언하며 커밍아웃한 작가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일종의 ‘당사자 문학’이라는 특성을 지니며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동시에 김봉곤은 성소수자를 중심에 둔 문학 작품이 이전에도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성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힌 작가 자신을 소설에 지속적으로 등장시키고 작가 자신의 경험과 픽션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 ‘오토픽션’(autofiction, 자서전을 뜻하는 autobiography와 소설이나 허구를 뜻하는 fiction의 합성어. ‘자전적인 소설’을 넘어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과 허구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서술한 부류의 작품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문학계 내부에서 주시하는 것은 물론 많은 독자를 거느린 작가기도 했다. 김봉곤의 소설에서는 일찌감치 ‘카카오톡’이나 ‘문자’를 비롯해 각 개인의 사생활에서 이따금씩 접할 수 있는, 내밀하며 미처 정돈되지 않은 문장들이 빈번하게 노출되었고 많은 이들은 이를 김봉곤이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토픽을 잘 쓴다고 여겨왔었다. 폭로가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온라인 상에서는 김봉곤에게 대한 성토와 함께 피해자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문학동네와 창비에 대한 비판이 연일 이어졌다. SF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의 김초엽 작가를 비롯한 몇몇 작가들도 해당 문제를 언급하면서 함께 비판에 나섰다. 계속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김봉곤 작가는 7월11일 본인의 SNS를 통하여 수 차례 피해자에게 사과했고, 수정 요청을 즉각 이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 차례 사과를 했음에도 장장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문제의 부분을 수정하거나, 관련 문제에 대한 지적이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언급이 된 두 출판사도 대응에 나섰다. 문학동네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최근 인쇄본부터는 피해자의 요구를 반영하여 문제가 되는 부분을 수정하여 발행했으며, 피해자의 젊은작가상 수상 결정 취소 요구에 대해서는 “심사위원들이 해당 부분이 전체 작품을 판단하는데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의견”을 보냈다고 공지했다. 창비 역시 단편집 ‘시절과 기분’에서는 피해자의 요구를 받아들여 문제 부분을 수정하여 출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두 출판사 모두 수정 사실을 공지하지 않았다. 동시에 두 출판사는 수정 사실을 공지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피해자의 주장과 김봉곤의 주장이 일치하지 않아 그럴 수 없었다는 식으로 나섰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김봉곤의 소설.▲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김봉곤의 소설.

논란이 불거지자 김봉곤 작가는 물론 문학동네와 창비 역시 형식적으로는 사과를 표했지만, 피해자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 명확하게 답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이러한 수준의 사과로는 논란이 종식될 수 없었다. 계속 김봉곤과 문학동네, 창비에 ‘그런 생활’의 게재 중단 및 해당 작품이 수록된 작품집의 판매 중단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7월17일에는 또 다른 폭로가 이어졌다. 김봉곤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단편 ‘여름, 스피드’에 자신의 동의도 없이 자신의 행적과 성정체성, 김봉곤에게 사적으로 보낸 페이스북 메시지를 그대로 노출시켰다는 폭로가 트위터를 통해 나온 것이다. 이름과 신상정보를 추측할 수 있는 일부 요소를 바꾼 것을 빼면, 그의 존재는 고스란히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여기저기로 퍼져나갔다.

또 다른 폭로가 이어지고 나서야 출판사는 꼬리를 내렸다. 단편 ‘그런 시절’이 수록된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과 함께 김봉곤의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를 펴낸 문학동네는 사과와 함께 두 도서의 판매 중단을 선언했다. 창비 역시 자사를 통해 출간된 소설집 ‘시절과 기분’의 판매 중단과 함께 재차 사과를 표명했다. 그러나 논란과 문제 제기는 쉽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사과를 다시 하고, 뒤늦게 문제가 된 작품들이 실린 단행본의 판매를 중단한다 치더라도 왜 이렇게까지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야 너무나도 뒤늦은 사과에 나서고, 그 사과마저도 충분하지 않으며, 후속 조치나 재발 방지를 위한 아무런 움직임이 최소한 지금까지 나온 수 차례의 사과문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문학계의 뒤늦은 움직임과 형식적 사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년간 문학계에는 거의 매년 판 전체의 구조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중견 소설가 신경숙의 낯뜨거운 표절 사건, 해시태그 ‘#◯◯◯_내_성폭력’과 맞물려 폭로된 시인 고은과 소설가 박범신에 대한 미투(me too) 문제 제기, 그리고 소설가 윤이형이 올해 초에는 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오래된 문학상인 ‘이상문학상’이 오랜 시간 수상작 저작권을 3년간 문학사상사에 양도하고 작가 개인의 단편집에 수록할 때도 표제작으로 내세울 수 없다는 지침을 폭로한 사건도 있었다.

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출판·문학계는 잠시 떠들썩했지만, 동시에 같은 수순이 반복되었다. 해당 사건을 처음으로 알린 글이 먼저 인터넷 상을 떠돌고, 다시 그 글에 대한 충격과 허탈함이 담긴 반응들이 줄을 짓는다. 작가나 평론가, 편집자, 기타 출판이나 문학계의 관계자들이 다시 이와 관련된 이야기나 발언을 한다. 이에 대한 각종 기고문이 쏟아지고, 이따금씩 이 문제를 다루는 토론회나 좌담회, 심포지엄이 열려 이중 몇몇은 문예지에 게재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흐름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사건사고들이 출판과 문학계에 고질적으로 존재하는 구조에 기인한다는 말은 많지만, 어느 순간 정작 재발 방지를 위한 기획들은 말만 나올 뿐 실제로 구현되거나 변화하지 않는 경우가 계속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점차 해당 문제를 처음 폭로하거나 연대에 참여한 사람만이 덩그라니 남겨지는 일도 계속 이어졌다. 시인 고인의 성폭력을 처음 폭로한 시인 최영미는 고은에 대한 추가적인 폭로가 이어지기 전까지는 계속 공격에 시달려야 했으며, 이상문학상의 불합리한 저작권 계약 관행에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소설가 윤이형은 절필까지 선언했다. 폭로의 대상, 또는 문제를 저지른 대상이 벼랑 끝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들이 쉽게 벼랑에 놓이게 되거나, 누군가는 정말로 벼랑 끝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출판·문학계의 이러한 모습은 영화계가 비슷한 문제를 대처하는 방식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부끄러운 모습들이다. 한창 문화계 내 성폭력을 폭로가 연이어 벌어졌을 때, 영화 영역에서는 ‘여성영화인모임’이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영화계 내부의 성폭력 및 성차별 신고를 전문적으로 받고 영화 촬영 전 사전 성평등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을 만들어 운영 중에 있다.

물론 출판·문학계와 진배없거나 때로는 그보다도 못한 영역들도 속출한다. 무용, 전통예술, 미술, 음악, 만화 등등의 영역에서도 내부 구성원들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폭로가 있었지만 이 곳들에서도 오히려 피의자를 옹호하며 피해자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게임계의 경우에는 2016년 이후 지금까지 SNS 등을 통해 페미니즘적인 목소리를 냈다며 개발자를 배제하고, 탄압하는 경우가 잇달았고 이에 국가인권위원회가 해당 문제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표명했지만 게임 영역을 담당하는 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물론, 게임계 내부의 수많은 협회와 단체들 역시 이에 대해서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있다. 평소 ‘한국 정부가 게임을 탄압한다’고 목소리를 높여댔지만, 정작 게임을 만드는 구성원이 부당한 폭력을 당할 때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니 출판·문학계는 최소한 게임보다는 살짝은 낫다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정작 시급한 개선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문학계 역시 결코 자유롭지 않다. 특히 1970년대 창립하여 계속 한국 사회의 문제에 목소리를 내어오고 때로는 함께한 ‘한국작가회의’(구,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몇몇 문인들의 성폭력 문제에만 징계, 사후 대처 등을 말할 뿐 문학계 전반을 뒤흔든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입장을 내거나, 해결 방안을 위한 고민의 시도도, 바꾸기 위한 실천의 시도도 보이지 않는다. 판 외부에 놓인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내어도, 정작 판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다.

김봉곤의 ‘그런 생활’이 낳은 파장에 대해서 출판계나 문학계는 이번에도 이전과 진배없는 자세를 보일까. 앞서 언급했다시피 김봉곤은 근래 데뷔한 작가 중에서 빠르게 인지도를 쌓아올리던 작가였고, 문학동네나 창비를 물론 다른 몇몇 출판사도 김봉곤을 자사의 출판물에 기용하거나 때로는 홍보를 위한 캠페인에 활용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이 문제에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출판계나 문학계 관계자는 없는 것이다.

물론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문제제기가 되기 전까지는 필자를 비롯해 그 모두가 김봉곤의 소설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제대로 된 동의를 받지 않은 무분별한 재현(또는 재현도 아닌 사실상의 사실 적시)인 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피해 당사자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는 어떤 식으로든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야 했다. 동시에 그 문제 해결의 방식은 사건이 발생하니 어떻게든 넘기자는 형태가 아니라, 왜 이 사건이 발생했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결코 쉽게 해결될 수는 없지만 그냥 방치하는 것도 곤란한 문학 내부의 표현과 문학 외부의 윤리가 지니는 긴장 관계, 또는 출판·문학계가 외부에서 터져나온 문제 제기를 다루는 방식 전반을 고민하는 장을 만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사건은 결국 피해자 본인이 SNS를 통해서 재차 문제를 공개적으로 꺼내기 전까지 사실상 방치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 상처는 곪아 고름이 진 것은 물론 자칫하면 뼈까지 다치게 만드는 지경까지 악화되었다.

이미 너무나도 많이 늦었지만, 가만히 있어서는 곤란하다. 누가 문제를 키우고, 방치하고, 그리고 왜 비슷한 부류의 문제를 계속 반복되게 만들었는지를 고민하고 바꿔야 한다. 단순히 사건이 불거질 때 무수한 말을 잔뜩 쏟아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문제들은 그저 가끔씩 일어나는 ‘해프닝’이 아니라, 어떤 의미론 한국 출판·문학계 전반이 놓인 상황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이번 문제에도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대처한다면, 이미 썩어버린 환부는 끝내 관절마저도 부식시키리라.

프린트
0 Comments
글이 없습니다.
+

새글알림

+

댓글알림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