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정말 2차 가해 우려하고 있는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7월9일 실종 후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동시에 고 박원순 시장이 성추행으로 피소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파장이 일었습니다. 고 박원순 시장은 인권변호사, 시민단체 운동가, 서울시장으로서 여러 성과를 남긴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서울대 신 교수 성추행 사건’ 때 피해자측 공동변호인을 맡아 성희롱도 범죄라는 인식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고, 서울시장이 된 후에도 성평등 정책에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랬던 고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고발과 무책임한 죽음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조문 논란’과 ‘2차 가해 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성범죄, 극단적 선택, 정치가 얽힌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인 만큼, 언론은 전반적으로 고 박원순 시장에 대한 논란에 나름 조심스럽게 접근하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시신운구 영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2차 가해성 글들을 편집 없이 전하는 등 과거 행태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비판받는 극단적 발언을 집중 소개해 정쟁을 심화시키기도 했습니다. 한편 고인의 업적을 다루는 보도에서는 고인의 생전 권한을 부각해 2차 피해가 우려되는 대목도 나타났습니다.
또 다시 등장한 ‘시신운구’ 영상
채널A와 MBN에서는 고인의 시신을 운반하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됐습니다. 채널A는 7월10일 <의혹과 7줄 유저… 떠나간 서울시장>(조영민 기자)에서 수색대원들이 고 박원순 시장의 시신을 운반해 구급차에 싣는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해 방송했습니다. 채널A는 다음 날인 7월11일에도 <조문하려다 보류… “세금으로 5일장 하나”>(강은아 기자)에서 보도내용과 특별한 연관 없이 모자이크 처리한 시신운반 영상을 또 사용했습니다. MBN도 7월10일 <이 시각 서울대병원 조문 행렬 이어져>(정태웅 기자, 홈페이지 삭제)에서 자료화면으로 시신운구 영상을 사용했습니다. 특히 채널A는 시신운반 영상을 내보낸 직후 고 박원순 시장 일부 지지자들이 큰 소리로 박 시장 이름을 부르는 장면을 배치해 자극적으로 화면을 구성했습니다.
민언련은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 사망할 경우 시신을 운반하는 영상 또는 사진을 보도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 일인지 계속 지적해왔습니다. 고 노회찬 의원 사망 당시 TV조선과 연합뉴스TV는 시신이 이송되는 장면을 생중계했고, 고 최진리 씨 사망 당시에도 마이데일리, 뉴스엔 등 일부 온라인매체가 경찰이 시신을 운구하는 장면을 찍어 보도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모친인 고 강한옥 여사가 작고했을 때도 KBS, MBC, SBS, TV조선, YTN 등이 시신운반 영상을 내보냈다가 기사를 수정한 바 있습니다.
업적 조명은 좋지만, 불필요한 생전 ‘권한’ 부각
고 박원순 시장은 권력형 성범죄 가해자라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과를 평가하여 업적을 조명하더라도 생전 권한을 드러내는 방식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줄 수 있어 신중해야 합니다. 가령 ‘박원순 시장 사망으로 서울시 중요 정책이 좌초될 우려가 있다’는 식의 보도입니다.
KBS는 <박원순 없는 서울시… 그린벨트·35층 제한 풀리나>(7월10일 구경하 기자)에서 “박 시장의 공백으로 서울시 역점사업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며 각종 부동산 대책과 그린벨트·재개발 규제 유지 등 “박 시장의 역점사업도 추진력을 잃게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SBS <박원순 철학 이어간다지만… 그린벨트 정책 어떻게>(7월10일 유수환 기자)도 “행정전문가인 권한대행이 박 시장만큼 정치권의 압박을 견뎌낼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보도했고, YTN도 <서울시 권한대행 체제… 역점사업 동력 의문>(7월10일 김학무 기자) 역시 비슷한 취지로 전망했습니다.
‘과거 업적’을 조명하는 것과 ‘특정인이 없는 경우 벌어질 일’을 예단하는 것은 명백히 다릅니다. 이런 보도는 피해자 고소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손해를 보게 될지 추측하게 만들어 피해자를 더 공격하는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오직 특정인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 사람이 없으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예측은 생전 시민사회와 협력을 중시한 박원순 시장의 철학과도 배치됩니다. 고 박원순 시장이 추진한 일이 정말 중요했다면, 그의 죽음으로 정책 추진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섣부른 예측보다는 앞으로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심층보도를 하는 게 필요할 것입니다.
‘정쟁’으로 소비한 보수언론
일부 보수언론은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기사로 정쟁을 부추겼습니다. ‘친여 논객’, ‘친여 커뮤니티’ 발 자극적 발언과 ‘반대진영’ 유투버 등의 망언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부각했습니다. 조선일보 <‘성인지 감수성’ ‘피해자 중심’은 어디갔나… 진보·여권의 두 얼굴>(7월13일 정석우 최연진 기자), <피해자 2차 가해와 망자 조롱 최소한의 품격도 무너진 사회>(7월13일 이해인 남지현 기자)는 친여 커뮤니티에서 ‘수십 명’이 추천한 글이라며, 박 시장 성추행 혐의와 이순신 장군을 빗댄 글 등을 보도했고, ‘반대진영’ 극단적 유투버의 ‘도넘은 조롱’ 발언과 행위를 함께 전했습니다. 모두에게 비판받는 극단의 발언과 유튜브 행태에 진영 프레임을 씌워 갈등을 부추긴 보도입니다.
박원순 시장 조문을 둘러싼 여야 대립도 중계할 뿐 갈등 배경을 짚으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 <두 의원 “조문 않겠다”했다가, 봉변 당한 정의당>(7월13일 주희연 기자)은 박 시장 조문을 거부한 정의당 일부 의원이 ‘봉변’ 당하고 있는 내용으로만 기사를 채웠습니다. ‘친여 성향 지지자’나 정의당 의원을 비판하는 여당 의원 발언을 ‘따옴표’를 붙여 그대로 전하기도 했습니다. 조문 거부 배경인, 피해자와 연대하겠다는 두 의원의 입장은 두 줄뿐이었습니다. 같은 날 한겨레는 <미투 이후에도… ‘젠더’ 문제는 진보진영 주변부였다>(7월13일 박다혜 기자)에서 박 시장을 추모하는 과정에서 성별, 세대별로 엇갈린 반응이 나오는 원인을 한 면을 할애해 분석했고, 경향신문은 <“조문 거부” 진보 야성 부각하는 정의당>(7월13일 박용하 기자)은 정의당 두 의원의 ‘조문 거부’ 이유를 구체적으로 전하면서도 당 안팎의 반발을 두루 살폈습니다.
정쟁화의 전형, ‘백선엽 vs 박원순’ 구도
연관성이 부족한 사안을 박 시장 사망과 연결지어 정쟁을 부각한 보도도 있습니다. 7월10일 사망한 백선엽 육군 예비역 대장의 장지 논란에 대해 중앙일보는 <여야 조문 정치에 광장이 갈라졌다>(7월14일 한영익 김기정 권혜림 기자)에서 “파렴치한 의혹과 맞물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치단체장은 대대적으로 추모”하고 백 장군 “홀대는 도를 넘고 있다”고 했습니다. 두 망자에 대한 예우를 같은 선상에 놓고 단순 비교하긴 어렵습니다. 두 망자의 공통점은 비슷한 시기 사망했다는 사실뿐입니다. 정치권에서 두 망자를 두고 정쟁화한다고 해서 언론까지 덩달아 가세하는 건 갈등만 키우는 꼴입니다.
한국일보는 <박원순·백선엽 조문정국에 다시 두 쪽 난 서울 도심광장>(7월13일 최은서 기자)에서 백선엽 대장 분향소와 박원순 시장 분향소가 ‘대치 전선’을 그었다며 갈등 상황을 부각해 정치권 정쟁 프레임을 따랐습니다. 한국경제는 <정쟁 불붙은 ‘조문 정국’… 두쪽 난 대한민국>(7월13일 조미현 정지은 기자)에서 박원순 시장과 백선엽 장군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을 각각 분리해 쓰고도 한 기사에 넣어 두 망자를 둔 갈등이 있는 것처럼 제목을 뽑고 사진을 실었습니다.
‘따옴표’, ‘영상’으로 2차 가해 내용 전달
언론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비판하면서 스스로 2차 가해를 행하기도 했습니다. 2차 가해 내용을 따옴표로 직접 인용하며 자세히 그 내용을 설명한 사례입니다. 매일경제 <애도 물결 속… 피해여성에 2차 가해 ‘우려’>(7월10일 이진한 김금이 기자)는 “고소인을 특정하기 위한 글이 올라왔다”며 해당 커뮤니티 이름을 공개한 것은 물론 게시글 제목과 내용도 직접 인용했습니다. 2차 가해와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를 기사에 실으면 해당 내용이 과도한 관심을 불러 피해를 더 키울 수 있습니다. 호기심에 글을 찾아보거나 검색하는 등 행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 <피해자 2차 가해와 망자 조롱… 최소한의 품격도 무너진 사회>(7월13일 이해인 남지현 기자), 중앙일보 <추모에 묻혀버린 진실… 고소한 그녀는 홀로 떨고 있다>(7월13일 우상조 김수정 기자), 한국일보 <“남**로 다 바꾸자… ”또다시 도 넘는 2차 가해>(7월13일 김정현 기자) 등은 2차 가해에 사용된 표현을 본문에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심지어 중앙일보, 한국일보는 온라인판 기사에서는 2차 가해 표현을 ‘따옴표’ 제목으로 인용해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방송사 보도는 해당 게시글을 영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SBS <고소인 향한 2차 가해… 경찰, 엄중 조치>(7월10일 장훈경 기자), TV조선 <“고소 ** 색출하자”… 2차 가해 논란>(7월10일 이재중 기자), MBN <받은글에 가짜 사진까지… “2차 가해 엄중 조치”>(7월11일 박규원 기자), YTN <도 넘은 2차가해… ‘장례 방식’ 반대 청원 봇물>(7월11일 고한석 기자) 등 다수 보도에서 2차 가해성 게시글이 그대로 방송됐습니다. 피해자가 해당 보도를 접했을 때 정신적 고통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댓글이나 SNS 공유 등을 통한 2차 가해를 재생산할 우려도 큽니다.
해당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해야만 2차 가해를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향신문 <추모를 넘어선 2차 가해 등장에… 피해자 곁 지키는 시민들>(7월11일 이보라 김형규 오경민 기자)은 “일부 시민들은 피해자 신상털기식 글을 게재했다”고만 서술했고, 한겨레 <피해자 호소 직시가 ‘박원순 추모의 길’>(7월13일 박윤경 기자)처럼 “정치적 음모론”, “비난” 등 표현으로 2차 가해 내용을 대체해도 충분히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JTBC는 <고소인 찾는다? 피해 우려… ‘허위사실 유포’ 수사>(7월10일)에서 2차 가해 게시글 중 피해자를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은 블러처리했습니다. 다른 방송사보다는 낫지만, JTBC도 게시글의 일부 내용을 클로즈업해 보여주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시한 ‘성폭력범죄 보도 세부 권고기준’은 “언론은 성범죄를 보도할 때 피해자와 그 가족 인권을 존중해 보도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2차 가해를 우려하는 보도가 오히려 2차 가해를 일으키고 재생산하는 일이 없도록 더욱 면밀히 고민하여 보도해야 할 것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방송 : 2020년 7월10~13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뉴스9>(평일)/<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YTN <뉴스나이트>(평일)/<뉴스와이드>(주말),
- 신문 : 2020년 7월10~14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에 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