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불신 시대라는 말이 지겨운가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조사한 언론 신뢰도에서 한국은 40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언론 신뢰도 조사는 자국 내 주관적인 평가를 수치화한 것으로 우리 국민들이 언론을 믿는 정도가 40개국 중 가장 낮다(21%)는 뜻이다. ‘기레기’라는 말이 일상 생활에서 흔하게 사용할 정도이고, 언론인 스스로도 자조섞인 얘기가 나온 지도 오래돼 언론 신뢰도결과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태도야말로 언론 불신을 더욱 자초하는 일이다. 각 매체에서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와 같은 저널리즘 보고서를 엄정 분석하고 자체적으로 언론 불신 회복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특히 “전통적인 TV 뉴스 시청자들은 온라인 플랫폼과의 경쟁 속에 하락하고 있다. 유튜브가 뉴스에 점점 더 많이 이용되고 있다”는 보고서 분석 대목에선 우리 언론이 반성할 지점이 많다. 기성 매체보다 유튜브 채널을 많이 보는 것을 한탄하면서도 미확인 정보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에 기대 뉴스를 재생산했던 게 우리 언론이었다. 일례로 ‘신의한수’라는 유튜브 채널은 지난해 4월 강원 고성 산불 문제를 다루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술에 취해 5시간 동안 산불 대응에 늑장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기성 매체는 이를 정치쟁점화해 여야가 관련 문제로 갈등을 벌인다는 식의 뉴스를 쏟아냈다. 청와대로부터 일정만 확인해도 금방 거짓으로 탄로 날 거짓말이었는데도 사실을 다투는 ‘쟁점’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또 다른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서 다룬 각종 성(性) 관련 의혹 등은 당사자의 동의도 얻지 않고,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사실이 아닌 내용을 다뤄 물의를 일으켰지만 우리 언론은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하면서 스피커 역할을 했다. 급변하는 미디어환경을 들어 기성 언론이 외면받고 있다고 하지만 제대로 검증 역할을 하지 않고 미확인 정보 확산에 빌미를 줘서 언론 불신을 자초한 게 기성 언론이라도 해도 할 말이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언론 매체 산업의 어려움을 여론이 외면하는 현상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지난 4월 한국신문협회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저널리즘 지원 대정부 정책제안서’를 통해 회원사의 광고매출 급락과 이에 따른 감축 인력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 광고 대행수수료 50% 이상을 환원하고 정부 광고 홍보예산을 증액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당장 정부의 일자리 특단 대책과 자영업 대책을 비판했던 신문들의 보도 행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최소한 앞뒤가 맞는 말을 하라는 얘기인데 언론 스스로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훈계에 가깝다. 개인 개발자가 내놓은 ‘코로나맵’이 환영을 받았던 것도 저널리즘 역할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우는 차원에서 정보를 재구성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정보를 전달하면서 오히려 저널리즘의 불신을 깨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뉴욕타임스 구독 매출이 5.4% 증가한 점, 3월 미국 NBC 뉴스 프로그램이 20년 만에 최고시청률이 기록한 점 등 해외 사례를 보면 코로나19 위기 속 오히려 매체 브랜드를 높이는 전화위복을 만든 것도 시사한 바가 크다.
2020년 우리 언론을 떠올리면 ‘갑질’, ‘표리부동’ 등과 같은 단어를 떠올리는 건 저널리즘 윤리마저도 내팽개친 행태가 도드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 취재원과 친분을 강조하며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줬다는 기자의 SNS 글에선 부끄러움을 찾아볼 수 없다. 언론사 간부가 예의 문제를 제기하자 자리를 떴던 대기업 임원이 돌아왔다는 일도 낯뜨겁다. 우리 언론이 ‘저널리즘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빌 코바치·톰 로젠스틸이 정리한 저널리즘 기본원칙에 따르면 ‘저널리즘 본질은 사실확인의 규율’이며 ‘저널리즘이 가장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시민들’이다. 또한 ‘저널리즘은 반드시 권력에 대한 독립적인 감시자로 봉사’해야 하고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을 실천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기자의 힘은 전문성을 갖춘 진실탐구의 의지에서 나온다라는 것을 되새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