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대북 보도제작 준칙을 기억하자
남북이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에 합의하면서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됐다. 어느 누가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자리에서 만날 것이라고 예상했던가. 종전선언까지 언급됐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은 올해 남북관계는 백척간두에 놓였다. 언론은 북이 개성공단을 철거하고 국경지대에서 군사 도발까지 감행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발표된 일련의 북 담화문을 놓고 북이 핵실험을 재개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내놨다. 북미관계까지 파탄나면서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를 것이라고 앞다퉈 전망하고 있다.
북은 정상 간 ‘합의’에 강제력이 없는 실태(대북전단 등 9·19 군사합의 위반)를 이유로 들고 있지만 비핵화의 반대급부였던 국제 제재가 풀리지 않고 있고 우리 정부도 이렇다 할 돌파구를 제시하지 못한 게 파국의 원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국 상대를 믿지 못하겠으니 단절하자는 얘기다.
이럴 때일수록 상대를 자극하거나 갈등을 조장하는 보도는 지양해야 한다. 당장 북이 군사적 행동을 감행할 것이라고 기정사실화하기보다 남북관계 파탄의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군사 행동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을 적극 제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 언론이 ‘중심’을 잡는 모습을 보여줘 상호신뢰 회복의 기회를 마련하는 ‘영리한’ 계산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8년 4·27 판문점선언으로 남북교류에 기대가 커졌을 때, 고질적인 남북 언론 문제를 개선했더라면 남북관계 신뢰 구축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KBS와 연합뉴스 등 주요 언론은 평양지국 개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평양지국 개설 문제는 호전된 남북관계에 편승해 뜬구름 잡기식 논의로 흘러버린 측면이 있다. 대북 관련 오보를 냈을 때 정보 부족을 탓하면서 으레 ‘북한 보도는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갔던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2018년 민중당은 현송월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5년 전 공개 총살됐다는 한 언론 보도에 “명백한 오보임이 판명된 현재까지 어떠한 정정 보도 및 사과를 하고 있지 않다”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했지만 공식 답변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 누구도 대북 관련 오보에 책임지지 않았던 행태가 악화하는 남북관계의 저변에 깔린 문제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동안 남북언론교류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6·15공동선언 남측위원회 부문 조직으로 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 등이 언론본부를 구성해 남북언론인 토론회와 남북언론인모임을 개최했다. 그리고 2018년 10년 만에 남북언론인이 한자리(언론본부·조선신보 간담회)에 만나는 일도 있었다. 지난 2008년 합의했던 남북 간 보도, 논평, 사진기사, 영상기사 등을 교류하는 방안을 올해 추진하는 것도 논의 중이다.
남북 언론 문제 개선의 시발점은 1995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과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가 제정한 ‘평화통일과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보도제작 준칙’이다. 준칙 전문은 “분단된 조국의 통일은 온 겨레의 염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언론은 남북관계 및 통일 문제 보도·제작에서 화해와 신뢰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기 보다는 불신과 대결 의식을 조장함으로써 반통일적 언론이라는 오명을 씻어내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25년 전 준칙은 현재도 유효하다. 냉전적 사고에 기초해 불난 데 부채질하는 보도 행태를 바꾸지 않으면, 언론은 남북관계의 악순환만 조장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