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 기본소득은 빈 껍데기일 뿐이다
2016년 6월21일,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경제민주화와 함께 해외의 기본소득 실험·국민투표를 언급하며 “세계적으로 불평등 격차를 해소하는 방법의 하나로 ‘기본소득(basic income)’에 대한 논의가 시작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김종인 대표는 기본소득을 몇 차례 더 언급했다.
기본소득과 경제민주화 등 개혁정책에 힘입어 당 장악에 나서던 김 대표는 당과 갈등이 심해지자 의원직을 내려놓고 당을 떠났다. 잠시 안철수 대표가 있던 국민의당을 거쳐 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으로 갔다. 2012년 한나라당 비대위원을 거쳐 박근혜 캠프 성공에 기여한 그가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온 것이다.
통합당에 가기 직전인 지난 3월 기본소득 논의가 시작된 계기였던 재난지원금 논쟁국면에서 그는 신동아 인터뷰에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얘기하듯 기본소득 50만원, 100만원 주는 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파악해 필요한 곳에 돈이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례없는 감염병 위기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는 사회적 요구가 강해지자 기본소득을 주장했던 정치인이 재난지원금에 대해 선별지급을 주장한 것이다. 기본소득은 정기지급, 재난지원금은 한번 지급한다는 점만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특징을 가졌다.
그는 비대위원장이 돼서도 기본소득을 주장했고 이 기조에 맞춰 정강정책개정특위에서도 새 정강정책 초안에 기본소득을 첫머리에 발표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지난 26일 2차 재난지원금에 대해 “선별지급이 옳다”고 했다.
기본소득의 필수조건은 어떠한 조건 없이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기본소득을 주장할때 기본소득과 재난지원금의 차이, 기본소득과 재난지원금에서 보이는 입장 차의 이유 등을 제대로 설명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기본소득을 시행하려면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복지를 전부 통합해 기본소득을 해야한다”며 “다만 당장 추진하기 어렵다. 기본소득을 전 국민 상대로 똑같이 주자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발언에서 두 가지 메시지를 담았다. 기존 복지를 대체하는 형식의 기본소득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보편이 아닌 선별지원을 주장했다.
기존 복지를 대체해 작은정부를 추구하는 방안 중 하나로 오히려 복지축소를 우려해 이를 주장하는 기본소득론자들이 많진 않다. 이재명 경기지사 등 여권에서 주장하는 기본소득과 차별을 둬 진영 내 반발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류성걸 통합당 의원이 7월 개최한 기본소득 토론회를 보면 주요 발언자들이 대체로 기본소득에 비판적인 것 등 진영 내에선 대체로 기본소득에 부정적이다.
기본소득으로 지칭했지만 실제 내용은 특정 계층에게만 지급하는 ‘수당’을 말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여권 인사들이 기본소득을 주도하자 논쟁에는 뛰어들면서 기본소득이 등장한 사회적 진단이나 도입취지에 반대하는 꼴이다. 통합당 경제혁신위원장인 윤희숙 의원은 최근 중위소득 50% 이하 가구에 지급하는 기본소득 초안을 내놨다. 사실 김 위원장과 통합당은 해당 정책을 기본소득으로 표현해선 안 된다.
통합당의 기본소득 주장이 한계를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기본소득이 단지 하나의 경제정책으로 접근해서다. 현재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진단이나 미래의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고민이 없다.
기본소득은 재원 마련 방법에서 공공재·불로소득을 대하는 관점을 담았다. 이 지사는 토지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을 국토보유세로 걷자고 했고,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탄소세, 모두의 정보를 이용한 부를 일부 회수하는 데이터세 등을 주장했다.
시장질서로 해결 못하는 비효율·불공평 문제를 외면한 채 시혜적 시선으로 현금지급행위 자체만 강조한 게 통합당의 선별지급안이다. 기본소득을 받게 될 때 조세저항의 강도, 소비진작으로 인한 경제선순환 등에 대한 고려 없이 현재 상태에서 증세도 하지 않고 세금이 이유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면 ‘재정건전성을 해친다’는 비판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을 일개 정책으로만 보면 불확실한 미래를 대처할 새로운 상상력 또한 부재하다.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던 앤드루 양은 기본소득으로 최저생계를 보장한 뒤 GDP라는 ‘낡은 기준’에 잡히지 않는 양육·예술·봉사 등 활동을 끌어내고 이런 활동에 다시 포인트를 제공하는 선순환 방안을 제시했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경제영역 뿐 아니라 정치와 언론 영역에서도 기본소득을 제안했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시민들이 받은 기본소득을 건전한 정치세력이나 언론사에 후원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기본소득’, ‘언론기본소득’이다.
기존의 세금과 정부지출의 순서나 발상의 틀을 깨지 않으면 일부 언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현금살포’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에 더해 이낙연 신임 민주당 대표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선별지급을 주장하며 재난지원금(기본소득) 논의는 1차 재난지원금 때보다 후퇴했다. 당시 상위50%냐 70%냐 등 선별기준선을 두고 논쟁하다 행정비용의 낭비 등을 고려해 전체 가구에 지급했지만 2차 지원금을 말하며 다시 무조건성·보편성을 두고 논란이다. 통합당도 비슷한 입장이기에 관련 생산적 토론은 나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1차 지원금 때 나왔던 ‘가구가 아닌 개인으로 지급해야 차별이 없다’는 지적은 최근 여권에서 자취를 감췄다. 여당의 한계를 짚어줘야 할 야당이 이 부분에도 강하게 문제제기하지 않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정부 입장을 신경쓰는 여당 대표는 기재부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기재부와 비슷한 생각을 해온 야당은 ‘기본소득’을 알맹이 없이 주장만 하고 있다. 그렇다고 통합당이 기본소득을 대신해 점점 늘어가는 복지 사각지대를 해결할 획기적인 정책을 내놓지도 않았다. 통합당이 기본소득의 현실화보단 기본소득을 통합당 또는 김 위원장의 이미지 개선에 이용할 뿐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