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에서 깊이 있는 국제 뉴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취재·보도 시스템의 한계라는 핑계로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 다른 관점의 국제뉴스를 위한 시도로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이들이 있다.

​▲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는 구정은 프리랜서 기자. 사진=윤수현 기자
​▲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는 구정은 프리랜서 기자. 사진=윤수현 기자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슈피겐홀에서 미디어오늘 주최로 열린 ‘2022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 1일차, ‘저널리즘 업그레이드’를 주제로 김수형 SBS 기자(전 워싱턴 특파원), 구정은 프리랜서 국제 전문 기자가 참여해 국제뉴스에 대한 고민과 대안을 던졌다. 강정수 익사이팅에프엑스 대표는 기후변화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한 한국 언론의 한계를 다뤘다.

“어려운 인터뷰는 어렵다. 포기하면 못하는 것”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돌아온 김수형 SBS 기자는 특파원 시절 탈레반 대변인 인터뷰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워싱턴에서 구성한 취재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유튜브 콘텐츠 ‘김수형의 워싱턴 인사이트’를 연재해왔다.

김 기자는 지난 인터뷰를 돌아보며 “어려운 인터뷰는 어려운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탈레반 대변인의 경우 두 번이나 일정이 바뀌었고, 극적으로 도하 시간 기준 자정에 이르러서야 인터뷰를 연결할 수 있었다. 김 기자는 “질문에 대해 상의할 겨를도 없었다”며 “하지만 탈레반이 화상인터뷰도 익숙하고 미국 매체 경험도 많아 이상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만약 일찍 포기했다면 성사되지 않았을 인터뷰”라고 말했다.

앤서니 파우치 백악관 수석 의료보좌관과의 인터뷰는 요청한 지 2년여 만에 성사됐다. 2020년 4월부터 이메일로 전한 인터뷰 요청엔 ‘자동응답’ 답변이 돌아왔고, 이후 관계자들을 통한 요청에도 당장의 성과는 없었다. 그러다 지난 5월 인터뷰가 성사됐다. 김 기자는 “코로나19 초기의 대응법 질문부터 지금 상황에 맞는 팬데믹 미래 질문까지 내용도 계속 바꿔가며 요청했다”며 “5월 인터뷰도 난관이 많았다. 하지만 어려운 인터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계속 접근하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김 기자는 해외 취재원들이 한국에 궁금한 의외의 지점들을 발견할 때도 있었다면서, 인터뷰 거절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탈레반 인터뷰도 K팝이 워낙 세계적으로 퍼져 도움을 준 측면이 있지 않나 싶다”며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도 한국에 대해 할 말이 매우 많다. (취재) 당시 러시아 고위관계자는 한국이 대러 제재에 동참하게 되면 러시아에 어떤 피해가 오는지 적극적으로 호소하려 했다”고 전했다.

▲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는 김수형 SBS 기자. 사진=윤수현 기자
▲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는 김수형 SBS 기자. 사진=윤수현 기자

“5분만 투자하면 ‘외신 받아쓰기’ 지적 막는다”

국내 언론의 국제 뉴스가 가장 비판 받는 행태는 사실상의 ‘베껴쓰기’다. 경향신문에서 약 30년 기자생활을 마치고 프리랜서 국제전문기자로 활동 중인 구정은 기자는 “게을러지지 말자”고 주문했다. 구 기자는 “외신을 인용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5분의 수고’를 아끼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외신의 중계를 그대로 중계하는 것이 ‘외신 받아쓰기’ 비판을 듣는 이유”라고 말했다.

구 기자는 인용을 하려면 그 외신 매체에 대한 파악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흑인 인권 운동) 당시 시위대가 성서를 불태운다며 확산한 동영상을 예로 들었다. 영상을 유포한 ‘럽틀리(Ruptly)TV’는 독일 법인으로 보이지만, ‘친 푸틴 매체’로 꼽히는 러시아 ‘RT’의 모체나 마찬가지였다. 구 기자는 “위키피디아를 5분만 들여다봐도 언론사의 역사와 대표보도, 세간의 평가가 나온다”며 “최소한의 검증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외신 보도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양한 기초 데이터를 직접 확인하는 습관도 강조했다. 구 기자는 “지금은 CIA 팩트북, 세계은행 통계 등 글로벌 데이터베이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기자들이 쓰기 좋도록 정리해주는 곳도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구 기자는 ‘지구공동체적 인식’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국경, 나라를 구분하는 지정학적 중심 보도에 매몰돼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그는 “우리를 5000만(대한민국 인구) 중 하나로 인식하기는 쉽지만 (전체 인구인) 80억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은 쉽지 않다”며 “미국과 중국의 패권 등 나라를 구분하는 지정학적 보도들보다 인공지능(AI)시대 앞 인간윤리나 기후 등 글로벌 이슈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우리에게 어떤 뉴스가 필요한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마무리했다.

“훌륭한 기후 전문 기자 한 명으로는 의미 없어”

실제로 기후위기는 언론의 접근 자체가 부족하다고 지적되는 영역이다. 강정수 익사이팅에프엑스 대표는 국내 언론이 ‘기후 저널리즘’에 대해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강 대표는 “다보스 포럼에서 뽑은 10가지의 심각한 위협 중 기후 관련 이슈가 5개였고, ‘기후변화 대응 실패’는 1등으로 꼽혔다”며 “정치철학자 알렉스 스테판은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정치 지형을 바꿀 것이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는 강정수 익사이팅에프엑스 대표. 사진=윤수현 기자
▲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는 강정수 익사이팅에프엑스 대표. 사진=윤수현 기자

강 대표는 특히 기후 문제를 대하는 한국 언론의 문제로 ‘체계성 부족’을 지적한다. 마치 ‘디지털화’와 겹쳐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디지털화’를 디지털부서에만 맡기면 편집국 전체가 체화하지 못해 성과가 안 나는 것처럼, 훌륭한 기후 전문 기자를 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뉴스룸 전체가 혁신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먼저 한국 뉴스룸 내의 ‘기초지식 확보’도 요구된다. 강 대표는 “스포츠 기자도 GDP를 알고, 정치부 기자도 (축구의) 오프사이드를 안다. 하지만 과학 기자가 아니면 대체로 메탄과 이산화탄소를 구분하지 못한다”며 “모든 기자가 연간 탄소배출량을 알고 주요 탄소배출 사업을 알아야 경제, 라이프 스타일 등 여러 분야에 기후이슈를 접목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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