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 팬클럽 ‘건희사랑’이 윤 대통령의 대구 서문시장 방문 일정을 유출해 비판이 쏟아졌다. 경호를 위해 대통령의 외부일정은 출입기자들에도 종료후 공개 원칙(경호 엠바고)을 전제로 제공되는 등 철저히 보안을 지켜왔는데도 윤석열 정부 들어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자들에게 알린 내용은 일주일 전 대구 방문이라고만 되어 있을 뿐 시간과 장소는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건희사랑은 구체 정보까지 자세히 공개했다. 기자들은 “경악스럽다” “김건희 리스크 해결없이는 더 큰 사고가 이어질 수 있다” “경호처장 경질될 사안”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김건희 여사(왼쪽 사진)와 지난 24일 KBS가 뉴스9에서 보도한 건희사랑 페이스북의 대통령 외부일정 유출 내용 갈무리.
▲김건희 여사(왼쪽 사진)와 지난 24일 KBS가 뉴스9에서 보도한 건희사랑 페이스북의 대통령 외부일정 유출 내용 갈무리.

김건희 여사 팬 페이지인 페이스북 ‘건희 사랑’에 한 이용자가 윤석열 대통령의 26일 대구 방문과 관련 “공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윤석열 대통령 대구 서문시장 8월28일(금) 12시 방문입니다. 많은 참석 홍보 부탁드립니다. 장소~ 공용 주차장으로 오세요”라고 썼다. 다른 이용자는 댓글로 “가서 응원해 드립시다”라고 썼다.

경호상 이유로 대통령의 외부 일정은 사전 취재를 해야 하는 기자들에게도 현장 행사가 끝난 뒤에야 보도하는 ‘경호 엠바고’를 준수하도록 해 왔다. 심지어 이를 단 30분이나 1시간만 일찍 보도했다 하더라도 어기면 예외 없이 기자단과 회의를 거쳐 대통령실이 ‘1~3개월 기자실 출입정지’ 등의 징계를 해왔다. 이번에 기자들에 사전 공지한 일정에도 26일엔 ‘대구광역시’로만 돼 있을 뿐 ‘대구 서문시장 12시’와 같은 구체 정보는 나와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건희사랑의 외부 일정 유출은 사실상 대통령의 외부 일거수 일투족을 완전히 노출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A언론사 대통령실 출입기자는 25일 미디어오늘과 SNS메신저에서 “팬클럽에 자주 유출되고, 재발방지해도 재발되니 문제”라며 “특히 팬클럽에 유출되어서 회원들에게 공지가 되면, 일반인들에까지 알려지게 돼 언론보도 시점을 제한하는 경호 엠바고의 (취지와) 의도가 무력해진다”고 비판했다. 이 기자는 “기사를 쓰지 않아도 일정이 알려지는 일이 반복이 되니 팬클럽의 역할이 언론보다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고 우려했다.

B언론사 대통령실 출입기자도 이날 SNS메신저 대화에서 “대통령 대외비 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 ‘사적 경로’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경악할 만한 일인 것 같다”며 “이번엔 일정이지만 다음엔 더 무겁고 중요한 기밀일 수도 있고...김건희 리스크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어떤 형태로든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비판은 지난 24일 대통령실 고위관계자와 기자들의 질의응답에도 나왔다. 한 기자는 대통령 대구 일정의 팬클럽을 통한 유출을 두고 “팬클럽 통해서 공개되는 것은 계속 이치에 맞지 않”다며 “저번에 사진 유출 논란도 그렇고, 계속 유출 행위가 일어나는 데 대해서 대통령실 차원의 대응은 없느냐”고 비판조의 질문을 했다. 그는 “경호처가 파악 중이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 나온 것이 있느냐”고도 질의했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 19일 충북 충주시 중앙경찰학교에서 열린 310기 졸업식에서 신임 경찰 가족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건희 여사가 지난 19일 충북 충주시 중앙경찰학교에서 열린 310기 졸업식에서 신임 경찰 가족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KBS가 24일 뉴스9에서 건희사랑 페이스북의 대통령 외부일정 유출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사진=KBS 영상 갈무리
▲KBS가 24일 뉴스9에서 건희사랑 페이스북의 대통령 외부일정 유출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사진=KBS 영상 갈무리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에 “죄송하다”며 “이 같은 일은 벌어지지 말아야 하고, 재차 벌어지지 않도록 어떻게든 충분히, 저희가 더욱더 긴장하면서 살피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유출 경위와 관련해 이 고위관계자는 “어떻게 된 것인지 계속 알아볼 것을 지시했고, 이 부분에 대해서 기자들이 그동안 많이 협조해주고 저희의 입장도 경청해줬는데, 거듭 죄송하다”며 “다만, 제가 알아보니까 이 행보는 사실 한 차례 연기가 된 바 있고, 대구시당 차원에서 참석하려는 당원들이 적지 않아서 익히 일정이 알음알음으로 알려졌던 상황으로 전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고위관계자는 이어 “특히 그 당시에 저희가 대구시당에서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당원이라든지 현역 국회의원이라든지 보좌관이라든지 그리고 이 행사에 참여를 원하는 많은 분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어서 특별하게 누군가 특정한 의도가 있다기보다 당의 행사로서 마음을 보태주시려다 이렇게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다”며 “팬클럽이 주어가 아니다. 당원을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고위관계자는 “김건희 여사가 이 팬클럽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제가 보도를 통해서 본 적이 있고, 당원 행사 과정에서 나왔던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그러나 보다 면밀하게 살피기 위해서 경호처를 통해 어떻게 이 같은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해서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최선의 조치를 하겠습니다. 거듭 죄송하다”고 답했다.

이어 다른 기자도 “전에도 김건희 여사 사진이 용산 잔디밭에서 나온 게 유출된 것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대통령실이 이 문제를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는 것 아”니냐면서 “그때마다 대통령실은 감찰하겠다, 알아보겠다고 하지만 담당자에 대해서 문책이나 인사 이동 이런 얘기는 전혀 못 들어봤다”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이번 건 같은 경우 경호처장이 교체돼야 할 사항이 아닌가 싶다”면서 “인사 쇄신 같은 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기자님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가 충분히 공감한다”며 “기자들이 그동안 경호 엠바고 협조해온 것을 충분히 감안해서 재발 되지 않도록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건지 가용한 부분을 꼭 찾아보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저녁 방송사 저녁뉴스에도 건희사랑의 대통령 외부 일정 유출을 비판했다. 23일 저녁 MBC 뉴스데스크 스튜디오에 출연한 이정은 MBC 대통령실 출입기자는 대통령의 동선이 ‘보안업무규정’ 상 2급 비밀로 분류돼 유출시 국가공무원의 경우 형사 처벌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은 기자는 “유출된 대구 서문시장 일정은 기자단은 장소는 물론 시간도 통보 받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유출 사건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됐다. 이 기자는 “취임 직후인 5월 말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 두 곳에 대통령 집무실 사진이 올라왔다”며 “대통령 부부가 집무실에서 반려견과 함께 앉아있는 사진들, 그리고 청사 잔디밭에서 윤 대통령 부부가 돌아다니는 반려견을 바라보는 사진들이었는데, 대통령실 청사 안에선 사진 촬영이 엄격하게 통제돼 있다”고 전했다. 그는 “경위를 파악해 봤더니 김건희 여사의 카메라로 부속실 직원이 촬영했고, 그 사진을 여사 측이 팬클럽에 전달한 걸로 파악됐”다고 지적했다.

▲김은혜 대통령 홍보수석이 24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한중수교 30주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은혜 대통령 홍보수석이 24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한중수교 30주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밖에도 KBS도 24일 뉴스9 ‘‘대외비 일정’ 팬카페서 유출’ 리포트에서 “지난 5월에도 보안 구역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 사진이 비공식적 경로로 김 여사 팬클럽에 공개돼 ‘보안 사고’ 논란이 불거졌는데,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고 비판했다. SBS도 8뉴스 ‘‘건희사랑’이 알린 대통령 일정… 또 보안 사고’에서 이 소식을 전했다.

이에 정치권도 비판이 제기됐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변인은 이날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대통령의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국기문란 사고”라며 “대통령실이 대통령 일정을 도대체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 것인지 참담하다”고 비판했다. 신 대변인은 “대통령 내외의 일정은 누가 관리하고, 정부의 인사와 정책은 어디에서 결정되고 있느냐”며 “밀실에서 비선 몇몇에 의해 국정이 농단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고 질타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우려가 나왔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2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통령 행사는 공식적인 발표 직전까지는 철저하게 비밀이 되어야 하며, 대통령의 동선도 마찬 가지”라고 지적했다. 홍 시장은 ‘건희사랑’ 팬카페를 두고 “정치 한지 26년이 되고 많은 대통령을 거쳤어도 영부인 팬 카페가 있다는 소리는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얼마 전까지 이상한 사람이 영부인 팬 카페 회장이라고 하면서 정치권에 온갖 훈수까지 하더니 이제 대통령의 동선까지 미리 공개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들도 한다. 그만들 하라. 그런 카페는 윤 대통령을 국민들과 멀어지게 하고 나라를 더욱 어렵게 할 뿐”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이어 “그만 하시고 이젠 해산하라”며 “웃기는 코메디”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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