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언론 장악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대규모 언론인 해직 사태까지 빚으며 집권 기간 내내 불통했다.

취임도 하기 전 이명박 인수위원회는 언론사 간부 성향 파악에 나섰다. 2008년 1월 경향신문은 MB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위 한 전문위원이 문화관광부 직원에게 이메일을 통해 하달한 지시 내용을 폭로했다. 언론사 사장을 포함해 편집국장 등 주요 간부의 인적 사항, 경력, 그리고 성향까지 8가지 항목으로 나눠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문화관광부는 산하단체를 통해 일간지 10곳의 사업 계획과 내부 동향까지 포함된 내용의 자료를 제출받았다. 언론을 사찰 대상으로 삼아 국정을 운영하려는 움직임을 정권 초부터 드러낸 건데 독재정권을 제외하곤 이런 일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 2012년 3월12일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가 서울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대통령과 편집·보도국장 토론회’에 참석해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 연합뉴스
▲ 2012년 3월12일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가 서울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대통령과 편집·보도국장 토론회’에 참석해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인수위원회를 놓고도 ‘독재정권’을 언급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수위가 KBS 및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와 간담회를 갖기로 한 것에 대해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려울 뿐더러 전두환 정권도 이러진 않았다는 반발이 나왔다.

애로 사항을 청취하는 취지의 간담회라곤 하지만 갑을 관계가 명확한 자리라는 점에서 ‘방송 공정성’ 언급만 있어도 ‘언론 길들이기’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윤석열 인수위원회가 당초 업무 보고 성격의 자리를 간담회로 급선회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정권 초 막강한 권력자래도 소통을 상징하는 언론을 상대로 압박하는 모양새는 여러모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인식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제든 정치적 독립을 훼손하려는 움직임이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행 공영방송 이사회는 여야 정치권이 추천하는 구조이고 집권 세력은 이를 통해 사장을 갈아치우고 방송을 장악할 수 있다. 인수위가 공영방송을 호출한 이번 간담회에 ‘언론 장악 신호탄’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비슷한 맥락에서 윤석열 당선자가 최근 언론사 국장들을 만나는 행보에 대해서도 시각은 천양지차다. 선거 운동 기간 각을 세웠던 언론과 오해를 풀고 스킨십을 강화해 소통 폭을 넓히려는 행보로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도 있지만 비공개 만남인 데다가 참석 기준도 모호한 면이 있어 ‘비우호적 언론을 다잡고 길들이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인수위 단계에서 언론사 간부급 만남은 전례를 찾기 어렵고, 소통 강화 차원이라면 공개적인 기자회견·간담회를 갖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비공개 국장단 만남에 일각에서 거친 비난이 나오는 건 밀실에서 이뤄져온 ‘권언유착’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사 부국장 인사가 윤석열 당선자 외신 대변인으로 직행한 문제도 넓게 보면 권언유착의 한 행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3월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당선자 집무실 건물 앞 임시 기자실(프레스다방)에서 기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
▲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3월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당선자 집무실 건물 앞 임시 기자실(프레스다방)에서 기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상징적 정치인인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조차도 정권 초반 소통 행보에 공을 들였다. 2016년 당선자 신분으로 뉴욕타임스를 찾은 게 대표적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에게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반트럼프 진영의 언론을 통했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당선되면 바로 소송을 걸 것”이라고 뉴욕타임스 기자를 협박하기도 했다. 그런 트럼프도 뉴욕타임스 편집국장 등 매체 소속 기자 20여명과 공개 간담회를 갖고 “뉴욕타임스는 위대한 미국의, 세계의 보석”이라고 했다.

▲ 2016년 11월2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 뉴욕의 뉴욕타임스빌딩을 방문했다. 사진=flickr
▲ 2016년 11월2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 뉴욕의 뉴욕타임스빌딩을 방문했다. 사진=flickr

윤석열 당선자가 오해 아닌 오해를 피하려면 ‘혼밥은 하지 않는다’는 식의 보여주기식 소통에 그쳐선 안 된다. 무엇보다도 권력으로 언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도리어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의 역할을 강조·선언하며 소통 정부라는 타이틀을 선점하는 것은 어떨까? ‘커피나 한 잔 하자’며 통의동 인수위 천막기자실을 찾아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소탈함이나 “기자들을 더 자주 뵙고 원활한 소통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김은혜 대변인)는 약속의 의미가 바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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