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20년이 확정돼 복역하다 지난해 특별사면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가 24일 4개월여 입원치료를 마치고 대구 사저로 들어갔다. 퇴원 후 박씨는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대구 달성군 사저 인근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2017년 이후 5년 만의 육성 메시지다. 일부 언론은 사과 없는 행보를 꼬집었지만, 일각에선 그를 ‘보수 결집’ 아이콘처럼 띄우고 있다.

박씨는 24일 “지난 5년의 시간은 저에게 무척 견디기 힘든 그런 시간들이었다. 힘들 때마다 저의 정치적 고향이자 마음의 고향인 달성으로 돌아갈 날을 생각하며 견뎌 냈다”면서 입장을 밝혔다. 헌정사상 최초로 파면된 대통령 출신이자 뇌물수수, 국정원 특활비 상납, 새누리당 공천개입 등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데 대한 사과는 없었다. “제가 많이 부족했고 또 실망을 드렸음에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셔서 따뜻하게 저를 맞아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이 전부였다.

▲3월24일 MBN 종합뉴스 갈무리
▲3월24일 MBN 종합뉴스 갈무리

이를 명확히 꼬집은 보도는 일부에 그쳤다. 24일 지상파 3사(KBS·MBC·SBS)와 종합편성 4사(TV조선·채널A·JTBC·MBN) 메인뉴스 중 사과 없는 박씨를 비판한 건 두 곳이다. KBS·SBS가 박씨 입장과 정치권 반응을 두 개 리포트로 전한 가운데, MBC ‘뉴스데스크’만이 “박 전 대통령은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별도의 사과나 유감 표명은 하지 않았고 정치적인 발언도 담지 않았다”(박근혜, 퇴원 후 대구 사저로‥“나라 발전에 힘 보태겠다)고 지적했다. 종편 중엔 JTBC ‘뉴스룸’ 리포트(‘퇴원’ 박근혜 “대한민국 발전에 작은 힘 보탤 것” 정치행보 암시)가 “국정농단과 국정원 특수활동비 뇌물 사건 등으로 징역 22년을 선고받았지만, 1심 때부터 법원 출석을 거부했고 공식 사과도 없었다”고 했다. JTBC는 방송사 중 유일하게 ‘전 대통령’ 호칭을 붙이지 않았다.

MBC·JTBC만 ‘사과 없다’ 지적…MBN ‘朴 올림머리’ 리포트도

JTBC를 제외한 종편 메인뉴스는 박씨 관련 소식에 4개 꼭지를 할애했다. △TV조선(朴 사저 앞엔 환영 인파 가득…소주병 투척 돌발상황도) △채널A(朴 지지자 5천 명 인파 몰려…마을에 ‘이사 떡’ 인사) △MBN(수천 명 모여 ‘박근혜’ 외쳐…“인재들이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하게 돕겠다”)은 공통적으로 사저 앞에 박씨를 환영하기 위한 인파가 얼마나 모여들었는지 부각하는 리포트를 뒀다.

박씨의 정치적 활동 재개 가능성을 점치는 꼭지도 포함됐다. 채널A 뉴스 기자가 출연한 ‘[아는 기자] 5년 만에 공개 행보 朴…정취복귀 하나?’는 유튜브 시청자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박씨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윤석열 당선자와 만날까’ 등을 이야기했다. MBN은 박씨가 입은 옷과 머리 모양을 ‘‘올림머리’에 걸어서 퇴원…5년 전 입은 남색 코트 그대로’라는 제목의 리포트로 전했다.

▲3월24일 채널A, TV조선 리포트들
▲3월24일 채널A, TV조선 리포트들

이튿날 신문에선 종편사와 같은 그룹에 속한 신문들이 보수세력 결집론에 힘을 실었다. 동아일보 기사(수감때 입은 남색코트의 朴 “이루지 못한 꿈, 이제 다른 이들 몫”)는 김기춘·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 국무총리 출신인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박근혜 정부 인사와 측근 40여 명이 퇴원하는 그를 맞이했다고 설명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중이고, 최경환 전 부총리는 국정원 특활비를 받은 혐의로 복역하다 지난 17일 가석방됐다는 점은 언급되지 않았다.

‘국정농단’ 수사했던 윤석열 당선자에 ‘화해’ 요구

윤 당선자와 박씨의 화해가 요구된다는 기사도 두드러졌다. 조선일보 기사(朴 “못 이룬 꿈은 다른 이의 몫” 尹 “내주 찾아뵐 것”)는 “윤 당선인은 2016년 탄핵 정국에서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을 맡았고,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 청산 수사를 지휘하며 박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며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서로 만나서 오해가 있었던 것은 풀고, 또 서로 함께 통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국민이 바라는 모습 아닐까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 기사(朴 수사했던 尹 “내주라도 직접 찾아 뵙고 인사”)도 “한때 ‘보수 궤멸의 장본인’이라는 비판을 들은 윤 당선인과 ‘보수 진영의 구심점’이었던 박 전 대통령 간 굴곡진 관계도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한겨레 역시 관련 기사(다음주 박근혜 만날 듯…친박 품고 보수저변 확대 노려)에서 “윤 당선자가 박 전 대통령과의 회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보수 진영 안에서 입지를 다지겠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당내 기반이 취약한 윤 당선자로서는 기반을 넓힐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정치적 입지 측면에서 윤 당선자가 놓인 현실을 해석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국민적 공분을 샀던 박근혜 정부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를 ‘악연’이자 풀어야 할 ‘앙금’으로 표현하는 행태는 비판할 지점이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검찰총장 이미지로 대선에 출마한 윤 당선자가 공식 임기도 시작하기 전 자기 부정을 요구받는 상황은 모순적이다. 그러나 이를 지적한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3월25일자 국민일보 사진 기사, 서울신문 사설, 한국일보 사설(위에서 아래로)
▲3월25일자 국민일보 사진 기사, 서울신문 사설, 한국일보 사설(위에서 아래로)

한편 주요 일간지 중 박씨가 사과하지 않았다는 제목을 쓴 곳은 경향신문(박근혜 “못 이룬 꿈, 또 다른 이들 몫”…국정농단 사과는 안 해)과 서울신문(사과도 정치 메시지도 없었다)에 그쳤다. 서울신문은 사설(박 전 대통령 ‘사과 없는 일상복귀’ 부적절하다)에서도 “명시적인 대국민 사과를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탄핵이라는 불행한 과거를 깨끗이 털어버리고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국민 여망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자연인 ‘박근혜’의 새 출발을 위해서도 과오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통과의례는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일보의 경우 사설(5년 만에 사저로 돌아온 朴…국민 화합 길 찾아야)에서 박씨 복귀가 새로운 분열의 씨앗이 돼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 신문은 “행여 자신의 명예 회복이나 측근들의 재기를 위한 정치적 행보를 걷는다면 또 다른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 수밖에 없다”며 “방문자를 통한 ‘사저 정치’가 이뤄진다면 그에 대해 동정심을 가진 국민들마저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탄핵에다 사법적 단죄까지 받은 전임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남은 소명이 있다면 국민 화합의 밀알이 되는 길을 찾는 것”이라 강조했다.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은 25일 “대통령 당선자가 보수 세력을 안고 가야 한다는 국민의힘측 프레임을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맞춰주는 보도 행태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씨에 대해 매번 건건이 범죄자였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명예롭게 사저에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논조를 지녀야 한다. 새 당선인이 그를 활용해서 자기 입지를 밝히려고 하는 걸 언론이 너무 비판없이 전하고 있다”며 “(박씨가 화제의 인물이니) 흥밋거리로 삼는 것이 시청률 등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이런 보도 하나하나가 박씨 영향력을 키워주고 있다. 민주주의 학습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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