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 출범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와 위원회의 성향이 엇갈리는 상황이 됐다. 특히 국민의힘이 야당 시절 정연주 위원장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지속적으로 성토하고 심의 민원을 적극 제기했다는 점에서 ‘갈등’이 불가피하다. 

이명박 정부 때 출범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3기(위원회 임기 3년) 때까지 국민의힘 계열 정부와 정당에서 지속적으로 위원장과 다수 위원을 선임해왔다. 방통심의위는 9명의 위원 가운데 6명을 정부여당에서 추천한다.

박근혜 정부 집권 4년차에 4기 위원 선임이 예정돼 있었지만 탄핵 국면을 맞이하면서 3기 방통심의위는 박근혜 정부 탄핵 시기에 맞물려 임기를 종료한다. 공백기가 이어진 후 문재인 정부 출범 이듬해 4기가 뒤늦게 들어섰고, 5기 역시 야당의 위원 추천 거부 등으로 공백기가 이어진 후 지난해 7월 들어서게 됐다. 

▲ 정연주 제5기 방통심의위원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방통심의위 제공
▲ 정연주 제5기 방통심의위원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방통심의위 제공

정연주 체제의 5기 방통심의위 임기는 2024년 7월22일까지다. 윤석열 정부의 2년 이상을 정연주 체제 방통심의위와 함께 ‘불편한 동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방통위의 경우 한상혁 위원장 임기가 2023년 끝나는 것과 비교해도 1년 더 길다.

방통심의위 안팎에선 정연주 체제의 방통심의위와 윤석열 정부의 ‘갈등’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은 야당 시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정연주 위원장을 강력 성토한 바 있다. 지난해 7월 원희룡 당시 제주지사는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방통심의위원장 임명을 두고 “방송을 장악해 국민여론을 장악하고 대선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검은 흑심을 드러낸 것”이라며 “인간 정연주의 삶은 방송 중립성 훼손의 역사”라고 비난한 바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도 국민의힘의 공세는 방통심의위와 정연주 위원장을 향했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과방위 간사)은 “정 위원장은 노무현 정권 때 KBS 사장을 하지 않았나. 우리가 생각할 때 방심위를 장악해서 선거에 도움이 되려는 게 아닌가”라며 반발했다. 박성중 의원은 언론 보도에 대한 방통심의위 적극 심의 민원 제기, 언론 항의 방문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왔다.

원희룡 전 지사는 윤석열 정부 인수위 기획위원장을 맡았고, ‘미디어 공세’를 주도해온 박성중 의원은 사회복지문화분과 위원이 유력한 상황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은 야당 때와 달리 MBC와 TBS, YTN 등에 대한 적극 심의를 요구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위원장 사퇴 등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행법상 위원 임기가 보장돼 있기에 정권이 임의로 퇴출할 수는 없다. 이런 가운데 여당 입장에서 ‘문제’로 보는 방송이 방통심의위에서 중징계를 피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갈등이 고조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시절 공약으로 미디어 조직 개편을 예고한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방통심의위 조직 개편안’을 내는 방식으로 조직 자체를 흔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당 소속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실의 한 보좌진은 “정기 국회 첫 업무보고 때부터 자진 사퇴 압박 등 긴장이 연출되지 않겠나. 이후 8~9월 넘어가면 국정감사 국면에서 정점을 맞을 수 있다. 편향적 심의라는 문제제기 뿐 아니라 신상정보 등을 언급하며 적극적인 정치 공세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보수언론도 정연주 체제 방통심의위를 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정연주 위원장 ‘내정설’이 나왔을 때부터 보수 언론은 공세적 보도를 해왔다. ‘문 정연주 방심위로 TV방송에 ’조심하라‘ 노골적 위협’(조선일보) ‘방심위 공정성 훼손할 정연주 위원장 내정 철회하라’(동아일보) ‘방심위 친여 편향 인사로 채워선 안 된다’(매일경제) ‘방심위까지 정권 친위대 만들려는 독재 발상 접어야’(문화일보) 등 보수 언론이 일제히 사설을 낼 정도였다. 

▲ 정연주 전 KBS 사장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내정설을 다룬 보수신문들의 사설.
▲ 정연주 전 KBS 사장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내정설을 다룬 보수신문들의 사설.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2017년 탄핵국면에서 종편 재승인 조건으로 ‘오보·막말·편파방송 관련 법정제재 5건 이하 유지’를 제시하고 이후 재승인 때도 해당 조건이 유지돼왔다. 종편 입장에선 이 조치가 과도하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연주 체제가 조기에 막을 내리면 종편 입장에선 재승인 취소 압박을 덜 수 있다는 직접적인 이익이 있다. 

한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방통위 쪽이 정부조직 개편 대상으로 계속 언급되면서 방통심의위가 영향을 받을지 걱정이 있는 상황이다. (새 정부가) 강하게 나온다면 간판을 바꿔서라도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도 있다”며 “민주적으로 될지 강압적으로 될지 새 정부가 어떻게 나오는지가 중요한 변수”라고 했다. 

다른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우리 위원회는 정치적인 색채가 뚜렷하게 있을 수밖에 없는 조직”이라며 “정부여당 추천 위원이 다수라는 방통위 설치법과 현상이 안 맞게 되는 상황을 어떻게 풀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제실 모습.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제실 모습.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정치에 종속된 방통심의위에 대한 지배구조 개선에 나설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한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6:3이든, 3:6이든 근본적인 건 구조적인 문제”라며 “정치적인 독립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여당 주도의 방통심의위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항상 ‘야당’이 개편을 요구하고 ‘여당’은 침묵해왔다. 민주당이 야당이던 19대 국회 때 최민희 의원은 방송통신심의위원을 여야 추천 동수로 구성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신경민 의원은  5:4로 바꾸는 법안을 발의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대 국회 당시 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은 방송통신심의위원의 여야 추천 비율을 7:6으로 바꾸는 법안을 발의했다.

근본적으로 권한 집중과 국회중심 추천 구조를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9대 대선 당시 언론계, 시민사회, 학계, 법조계 등의 인사들로 구성된 방통심의위 산하 자문기구인 방송, 광고, 방송언어, 통신권익보호 등 특별위원회에 심의제재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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