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방송 합의문 지키기 제2라운드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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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방송 합의문 지키기 제2라운드 돌입

14년, 1년 반, 171일. ‘무늬만 프리랜서’ 고 이재학 PD는 14년 일한 CJB청주방송에서 갑자기 해고됐다. 모든 프리랜서를 위한 판례를 남기겠다며 부당해고 소송을 걸고 1년 반 싸웠고, 패소 후 숨졌다. 유족이 진상규명 투쟁에 나섰고, 사망 171일째 청주방송이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23일 청주방송은 전국언론노조, 유족, 시민사회대책위(고 이재학 PD 사건 대책위원회)와 합의를 통해 이재학 PD 노동자성과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소송 중 회사 측 위증과 이 PD를 도운 직원을 회유·협박한 책임도 확인했다. 나아가 이 PD처럼 고용 의무가 있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등 비정규직 노동환경 개선도 약속했다. 

사망부터 합의까지 걸린 시간은 171일. 이 가운데 119일은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 구성과 진상조사 기간이다. 이 PD는 지난 2월4일 저녁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남긴 유서에 방송계가 동요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다.” “억울해 미치겠다.”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을까. 왜 그런데 거짓을 말하나.”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가 홀로 외롭게 싸운 고통과 억울함이 유서에서 묻어났다.

▲고 이재학 PD 빈소 입구. 사진=손가영 기자▲고 이재학 PD 빈소 입구. 사진=손가영 기자
▲고 이재학 PD 유서 내용. 디자인=이우림 기자.▲고 이재학 PD 유서 내용. 디자인=이우림 기자.

 

대책위 구성은 이 PD 사망과 동시에 시작됐다. 다음 날 소식을 듣자마자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최영기 방송스태프협회 사무국장, 김기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 등 대책위 주축 활동가들이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억울하다. 이대로 넘어갈 순 없다”고 애통해하는 유족을 만나 대책위 구성을 제안했다. 

일주일 후 유족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본격 논의에 돌입해 2월19일 57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대책위를 출범했다. ‘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명예회복,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다. 충북에선 5일 전인 14일 19개 충북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충북대책위’를 결성했다. 

그렇게 2월27일 ‘4자 협의체’가 꾸려졌다. 유족과 언론노조(노)·청주방송(사)·대책위(민) 등이 모인 의결 기구다. 이들은 이 사건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조사에 적극 협력하며 4자 모두 그 결과를 수용하면서 청주방송이 개선방안을 이행하면 이를 점검까지 하기로 합의했다. 

사주 입김에 휘둘려, 견제 어떻게?

진상조사위원은 총 10명이다. 대책위는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를, 유족은 이용우·윤지영 변호사와 김유경 노무사를 추천했다. 언론노조 추천위원은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와 김순자 충북본부 비정규사업국장, 김민철 노무사였다. 청주방송은 조민우 변호사와 김종기 보도국장·황현구 기획제작국장을 추천했다. 지난 3월3일부터 6월1일까지 활동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사주가 위압적 행동으로 회사 내부를 위축시켰다. 3월16일 전체 직원 조회가 단적이다. 대주주 이두영 두진건설 회장(지분 36.22%)은 이 자리에서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느냐”며 “내부고발자는 반드시 색출한다”고 밝혔고, 진상조사위를 청주방송 음해세력인 양 발언했다. 4월 초엔 이 회장 아들과 청주방송 협력업체를 운영하는 이 회장 사촌이 회사에 난입해 내부고발자 색출을 언급했다. 

▲지난 3월24일 "청주방송 회장님 훈시에 담긴 소름 돋는 의도...음성 녹취록 주요 부분 공개" 미디어오늘 보도 갈무리.▲지난 3월24일 "청주방송 회장님 훈시에 담긴 소름 돋는 의도...음성 녹취록 주요 부분 공개" 미디어오늘 보도 갈무리.

 

5월 중순까진 큰 이견 없이 논의가 진행됐다. 3~4월 집중 조사를 진행한 진상조사위는 4월27일 보고서 초안을 냈다. 이견을 조정해가며 5월18일 8차 회의에서 보고서 정리를 거의 마쳤다. 위원들은 6월1일 9차 회의에서 최종 확정을 예정하고 헤어졌다.

직후 상황이 변했다. 청주방송 기조가 돌변했다. 6월1일 조사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며 사측 위원들이 중도 퇴장했다. 4자는 팽팽한 교섭에 돌입했다. 1일 확정된 보고서가 22일까지 공개되지 못한 이유다. 6월22일 국회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할 때도 청주방송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배경엔 이두영 회장 입김이 있었다. 최종회의 3일 전(5월28일) 이 회장은 진상조사 결과를 모두 부정하는 입장을 ‘소장’에 밝혔다.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으로 충북대책위 활동가 2명에게 1억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이었다. 첨예한 교섭이 이어지는 가운데, 청주방송은 유족에게 “회사가 돈을 지급할 테니 이걸로 논의를 다 끝내자”며 이두영 회장 의중을 전해 분노를 자초했다. 

보고서 확정 후 합의까지 걸린 시간만 53일이다. 조사결과와 이행안 등을 둘러싼 4자 논의가 엎치락뒤치락한 시간이다. 4자가 합의점을 찾았다가 다음 회의에서 청주방송이 입장을 바꾸는 경우가 잦았다. 이두영 회장은 이 과정에서 계속 거론됐다. 회사 측 실질적 결정권은 결국 이 회장에게 있다는 말이 4자 논의에서 흘러나왔고, 충북대책위는 “청주방송 정상화의 걸림돌, 이두영 의장은 청주방송을 떠나라”는 피켓까지 들고 투쟁에 돌입했다. 

유족도 지난 한 달 거리에서 싸웠다. 이 PD 누나 이아무개씨는 6월22일부터 청주방송 앞 피켓 시위에 매일같이 나왔다. 충북대책위는 6월 말부터 ‘1박2일 집회’를 열고 천막 농성장을 차리는 등 투쟁 수위를 높였다. 7월 중순 자꾸 불발되는 합의에 ‘끝장 투쟁’을 선포하며 청주방송 로비와 사장실로 돌진하기도 했다. 충북 KBS·MBC·CBS 방송사 정규직 105명도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지 않겠다”며 연대 성명을 냈다. 

결국 7월22일 4자는 진상조사 결과를 확인하고 이 PD 명예복직과 이행 요구안에 합의했다. 23일 오전 청주방송에서 4자 대표가 모여 조인식을 열고 합의문을 공개했다. 이 PD 사망 171일 만이다.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사망사건 관련 타임라인. 디자인=안혜나 기자▲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사망사건 관련 타임라인. 디자인=안혜나 기자

2022년 12월31일까지 계속

대책위는 “이제 1라운드가 끝났을 뿐”이라고 본다. 대책위는 앞으로 최소 3년 청주방송의 약속 이행을 지켜봐야 한다. 27개 합의문 약속 중 ‘불법파견 직군 9명 정규직 전환’ 기한이 2022년 12월 말까지다. 올해부터 매해 3명씩 순차로 전환해 3년이 걸린다. 청주방송은 이행 상황을 3자에 통보해야 하고 3자와 진상조사위는 결과를 확인한다. 

청주방송이 정해진 기한 내 지켜야 할 과제는 21개다. 유족에 사과, 이 PD 명예회복 조치 등은 이달 마무리되지만 비정규직 노동환경과 조직문화 개선이 장기 과제다. 청주방송은 오는 9월 말까지 비정규직 대표를 노사협의회 위원으로 참여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운용 방안과 임금 테이블 및 복리후생 개선안 등도 내놔야 한다. 작가 직군의 고용구조를 다루는 TF는 오는 31일까지 구성돼 고용안정 방안을 논의한다. 실효성 있는 논의를 위해 내·외부에서 감시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대책위 일각에선 “대내·외적 여건을 고려해” 이행한다는 문구를 우려한다. 청주방송 사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떨어지면 경영상 문제를 이유로 이행 약속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성덕 청주방송 대표는 23일 기자회견에서 경영 위기 상황을 전하며 “최대한 성실히 임하겠다”면서도 “하다가 안 되면 여러분들도 이해해주실 거라 믿는다”고 언급했다. 

관건은 이두영 회장 입김이다. 청주방송이 이 회장 의지에 휘둘린다는 사실은 지난 171일 간 합의 과정에서 확인됐다. 이 PD는 명예 복직하고, 비정규직 고용구조 개선도 약속됐지만 사주 지배력 견제 방안은 논의된 적이 없다. 결국 확고한 소유·경영 분리를 요구하는 내부 움직임이 필수적이다. 언론노조도 이를 감시할 계획이다. 향후 3년 청주방송 이행에 따라 대책위 투쟁이 다시 시작될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다.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사망 사건 관련 타임라인]
2004년 6월 이재학 PD, 청주방송 조연출로 일 시작
2008년 8월 청주방송 자회사 '엔터컴' 계약직 권유받고 입사
2009년 6월30일 엔터컴 퇴사
2011년 3월 청주방송 재입사, 연출·조연출 맡아
2018년 4월 "프리랜서들 회당 30~40만원 너무 적다" 인건비 인상 요구한 후 부당해고
         5월 '방송계갑질119' 노동 상담 "14년의 세월, 너무 억울하다" 
         9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청주지법에 제기
         12월 첫 공판 시작
2019년 1월께 배달 라이더 등으로 생활비 벌기 시작
         5~7월 동료 직원들, '이재학 노동자성 확인' 진술서 작성
         7월3일 위 진술서 법정에 증거로 제출
         7~8월 청주방송, 작성한 직원에 진술 번복 및 경위서 작성 종용
         9월5일 청주방송, 진술 번복한 직원이 쓴 허위 사실확인서 법정에 제출
         10월2일 해고한 담당국장 회사 증인으로 법정 출석, 이재학 "새빨간 거짓말" 분노.
2020년 1월22일 정선오 당시 청주지법 판사, 이재학 PD 패소 판결
         1월30일 이재학 PD 판결문 수령, 즉시 항소
         2월4일 이재학 PD 아파트 지하에서 숨진 채 발견, 유서엔 "억울하다"
         2월14일 충북지역 19개 단체 'CJB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충북대책위' 출범
         2월19일 57개 단체 ‘CJB 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명예회복,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출범
         2월27일 4자 대표(청주방송·언론노조·유족·시민사회) 합의로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출범
         3월3일 진상조사위 1차 회의 개최
         3월16일 이두영 회장 “내부고발자 반드시 색출” “진상조사위 진의는 청주방송 흠집” 발언해 논란
         3월23일 청주방송 앞 이재학 PD 대책위 49재 추모 결의대회
         3월30일 이두영 대표이사 사임, 등기이사 및 이사회 의장 유지
         4월6일 이두영 아들, 4촌 친척 등 청주방송에 들어와 "내부고발자 색출" 행패
         5월13일 이재학 PD 사망 100일 추모집회
         5월28일 이두영, 충북대책위 2명에 1억원 손배소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6월1일 청주방송, 진상조사위 9차 회의에서 전원 퇴장 "조사 결과 수용 못해"
         6월11일 청주방송, 유족에 “돈 지급할테니 사태 종결하자, 이두영 입장”
         6월 4자 대표자 회의 계속
         6월18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유족·언론노조 면담
         6월22일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보고서 공개
         6월24일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이두영 의장 소송 취하, 조사결과 수용" 촉구
         6월29일 대책위 청주방송 앞 1박2일 총력 투쟁
         7월7일 진상조사 결과 및 이행안 관련 4자 대표 최종 합의 불발, 충북대책위 청주방송 앞 농성과 피켓 시위 시작
         7월13일 충북 KBS·MBC·CBS 105명 및 청주방송노조 53명 청주방송에 합의 촉구
         7월14일 충북대책위 '끝장 투쟁' 기자회견 개최, 두진건설·상공회의소에서 시위 시작 
         7월22일 4자 대표 합의 타결
         7월23일 조인식 및 기자회견
         7월28일 이두영 회장, 유족에 공식 사과·이재학 PD 명예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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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KOREAN.
hrmanila168 05.1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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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감사합니다.
KTVNabi 04.27 11:30
낳다 ㅎㅎ
익명 04.09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