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ARF 외교전 성적표…'日경제보복' 문제 알렸다
【인천공항=뉴시스】김진아 기자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위한 3박4일간의 태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9.08.03. bluesoda@newsis.com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31일부터 3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결과물이 나왔다.
3일(현지시간) 발표된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회(APT)의 의장성명에는 이례적으로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우려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방콕 외교전’의 최종결산서라고 할 수 있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에는 기존처럼 북한 미사일 발사의 중단을 촉구하는 내용이 들어갔으나 일본 경제보복 관련 부분은 없었다.
본래 안보이슈를 논의하는 다자협의체인 만큼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APT, EAS에 이어 ARF 의장성명까지 일본 관련 내용이 들어갔다면 보다 강한 대일(對日) 메시지를 보낼 수 있지 않았겠냐는 아쉬움 섞인 반응도 나온다.
강 장관은 3박4일의 태국 방문 기간 동안 중국·일본·미얀마·라오스·브루나이·유럽연합(EU)·캐나다·태국 등 8개국과 양자회담을 갖고 한미일 3자 회담도 했다. 또 한-아세안 외교장관회의, APT, EAS, ARF, 한-메콩 외교장관회의 등 5개의 다자 일정을 소화했다.
강 장관은 이들 회의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유무역 정신을 강조하며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 배제 조치에 대한 부당함을 설파했다.
특히 지난 2일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이 이뤄진 1시간여 뒤 개최된 APT에서는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설전을 주고받았다. 싱가포르·중국·태국이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 일본이 수세에 몰렸다.
올해 APT 의장성명에는 "아세안과 한중일 3국은 역내 무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과 그것이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경계한다"며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와 반(反)세계화 정서가 높아지고 있는데 우려를 표명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무역긴장, 보호주의, 반세계화 등의 단어들은 지난해 APT 의장성명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번 의장성명은 미중 무역갈등과 함께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APT에서의 한일 외교장관 간 설전이 의장성명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관측이다.
EAS 의장성명에도 "규칙에 기반한 다자무역체제를 통해 시장의 개방성과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며 “역내 경제통합을 위해 공동의 경제적 위협에 대해 더 많은 대화를 하기를 독려한다”는 문장이 포함됐다.
이들 문구는 마찬가지로 지난해 EAS 의장성명에 없던 내용이다. 정치·안보이슈를 주로 다루는 회의체인 EAS에서 관련 내용이 언급됐다는 점은 한일갈등을 바라보는 아세안 국가들의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ARF 의장성명의 경우 무역에 대한 문안은 포함되지 않아왔던 관례를 지켰다. 결과적으로는 일본 관련 내용이 없었지만, 정부는 ‘자유무역이 국제사회의 번영을 가져온 중요한 준칙’이라는 점을 참가국들과의 물밑접촉에서 지속적으로 이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ARF 의장성명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핵·미사일 실험의 중단을 촉구하고, 평화적 대화 재개를 요청하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외교장관들은 “비무장지대(DMZ)에서 이뤄진 북미 정상간 회담을 환영하고 협상 재개를 기대한다”며 지난 6월 30일의 상황도 반영했다. 다만 북한의 최근 잇단 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고 기존 원론적 언급을 되풀이하는데 그쳤다.
ARF는 북한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지역 내 안보협의체다. 북한은 당초 리용호 외무상을 참석시키기로 했다가 지난달 중순 갑자기 그의 불참을 결정했다. 대신 김제봉 태국주재 북한대사가 참석했다.
현지에선 김 대사가 ARF 회의장에서 미사일 발사 관련 입장문을 낼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김 대사는 별도의 발언이나 입장문 발표 없이 조용히 회의장을 떠났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리 외무상의 불참과 관련해 “체제상 우리처럼 여러 개의 이슈를 저글링 하면서 갈 수 있는 체제가 아닌 듯 하다. 북미 실무협상 준비에 올인하는 것 같다”며 “대화 전 미사일의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려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내다봤다.
최태범 기자 bum_t@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