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징벌적 손배 해외 사례 봤더니 극과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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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징벌적 손배 해외 사례 봤더니 극과극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취지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며 언론계가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적절성 논의로 뜨겁다. 일각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찬성해야 언론개혁이고, 반대하면 언론개혁에 반대하는 것처럼 인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단순하지 않고,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해외 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이 2019년 8월 발간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적정한 운영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옥스퍼드대가 2000~2015년 영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이 이뤄진 1심 사건을 조사한 결과 39.7%가 인용됐으며, 평균 금액은 1만8181파운드(약 2758만 원)이고, 중간값은 7630파운드(약 1157만 원)이며 최고액은 14만896파운드(약 2억1376만 원)였다. 영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은 주관적 판단이 높고, 대부분 배심원에 의해 산정되며 일관성이 없어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비판받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법에 따르면 징벌적 손해배상은 △의도적으로 △부당하게 △악의를 가지고 불법행위를 한 경우 인정되는데, 해당 제도가 있는 대부분 주에서 이 같은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전체 사건 수 대비 징벌적 손해배상이 부과된 비율은 1960년~1984년 기준 3.24% 수준이었다. 2005년 관련 논문에 따르면 징벌적 손해배상액의 76%는 손해에 상응하는 액수인 전보적 손해배상액의 3배 또는 그 이하 금액이었다. 

언론사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로 유명한 사례가 몇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3만8000부 발행 부수를 갖고 있던 ‘Alton Telegraph’는 1980년 920만 달러(약 111억)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고 파산신고를 했다. 한 건설업자가 마피아와 연관돼 있다는 기사였다. 전보적 손해배상액을 제외했을 때 징벌적 손해배상액은 250만달러(약 30억)였다. 당시 취재진에게 비윤리적 행위는 없었다. 다만 취재가 부실했다.

▲게티이미지.▲게티이미지.

1996년 ‘Philadelphia Inquirer’는 2150만 달러(약 259억)의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상대는 검사 출신 변호사였다. 해당 매체는 그가 검사 시절 살인사건을 수사하며 특정 용의자 아버지와 긴밀한 사이였고, 결국 용의자가 석방됐다고 보도했다. 취재기자는 상대방 동의 없이 통화를 녹음해 유죄판결을 받고 직장을 옮겨야 했는데, 당시 수사 검사가 기사에 등장한 인물이었다.  

1967년 ‘Saturday Evenillg Post’는 1962년 조지아대와 앨라배마대 간 미식축구경기 승부가 조작됐다고 보도했다. 조작 당사자로 지목된 자가 소송을 제기했고, 배심원들은 일반 손해배상 6만 달러(약 7000만 원), 징벌적 손해배상 300만 달러(약 36억) 판결을 냈다. 법원은 46만달러(약 5억5000만 원) 원고 승소 판결을 냈다. 

미국에서는 사안에 따라 전보적 손해배상액의 15배~40배에 이르는 징벌적 손해배상액도 과도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액 산정 시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인지 여부, 불법행위가 반복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캘리포니아·워싱턴DC 등 주에 따라 피고의 재산상태를 고려하는 곳이 있다. 영국에서도 피고의 재산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일부 주에서는 형사제재를 받은 경우 동일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중처벌이 될 수 있어서다. 

사법정책연구원 보고서는 “미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민사법과 형사법 영역의 혼동, 배심에 의한 편파적이고 일관성 없는 징벌적 손해배상액 산정의 위험, 억지 효과에 대한 의문 등 문제 제기가 많다”고 밝혔다. 미국 뉴햄프셔주·매사추세츠주 등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금지한다. ‘불안에 의한 자체검열을 조장함으로써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권리(언론의 자유 등)를 위축시킨다’는 이유”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해당 법안이 김영란법처럼 언론의 자정 효과를 유도하기보다 협박·봉쇄 소송의 맞춤형으로 기능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전국언론노조는 최근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반대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04년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논의가 촉발됐을 당시에도 언론노조는 반대 입장이었고, PD연합회와 기자협회도 같은 입장이었다. 

만약 정청래 의원의 법안이 통과되면, 원고는 전보적 손해액보다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구하기 위해 3배의 인지세를 납부해야 하는데, 이는 패소할 경우 감당해야 할 변호사 비용이 높아지기 때문에 소 제기의 유인이 감소하게 된다는 문제도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기 위해 원고가 어느 정도의 증명을 해야 하는지도 불명확하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최선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없어도 언론 보도 피해구제가 제대로 이뤄지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위자료를 활용하면 유사한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인권센터는 위자료가 충분치 못해 민사소송을 진행해도 실익이 없다고 지적한다. 미디어오늘이 언론중재위원회가 매년 발간하는 ‘언론판결분석보고서’에 집계된 2009년~2018년까지 10년간 언론 관련 손해배상 청구사건 2220건을 분석한 결과 손해배상 인용액이 500만원 이하인 경우가 전체 금전배상 사건의 47.4%로 가장 높았고 500만원 초과~1000만원 이하가 23.4%로 뒤를 이었다. 

위자료 산정은 법원의 자유재량이다. 이와 관련 언론법에 밝은 한 변호사는 “정신적 손해배상에 대한 위자료는 판사의 주관에 따르거나, 판례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언론 관련 판결) 위자료는 1990년대나 2000년대에 비해 오히려 낮아진 느낌”이라며 “피해구제가 필요한 사건에 대해 위자료가 높아져야 한다. 판사들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언론 보도 피해가 제대로 구제되지 않는 것은 맞지만 충분한 배상을 하도록 판결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법원의 위자료 산정 방식의 문제 내지는 손해배상액 인정 범위가 협소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봐야 한다. (정청래 의원 개정안처럼) 위자료를 3배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양홍석 변호사는 “재판부가 오보나 악의적 보도라고 해도 불법행위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위자료 3배 배상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며 “오히려 3배 배상제도로 인해 허위 내지 악의성에 대한 판단이 보수적으로 엄격해져 피해구제를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제도를 통한 억지 효과의 이면은 위축 효과다. 항암제를 먹으면 암세포가 죽지만 일반 세포도 죽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언론의 자유·표현의 자유 위축을 경계했다.  

법학박사인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우리 법원에서 명예훼손이 인정되는 상당히 많은 사안이 미국의 법정이라면 명예훼손이 인정되지 않을 사안들인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의 근거로 ‘미국에 이런 제도가 있다’고 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며 미국에 있으니 한국에도 도입하자는 식의 논의는 위험하다고 지적하며 “사회적 논의를 거쳐 우리의 명예훼손 법제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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