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곽상도의 쉼터소장 타살 의혹 받아쓰고 정체불명 제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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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곽상도의 쉼터소장 타살 의혹 받아쓰고 정체불명 제목까지

6월6일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마포쉼터 소장 손영미 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죠. 부검을 실시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1차 소견을 내놨습니다. 경찰 역시 외부 침입 흔적이 없어 “타살 혐의점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안타까운 분위기 속 추모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6월11일 국회에선 뜬금없는 ‘음모론’이 제기됐습니다. 미래통합당 곽상도 의원이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손 소장의 사망과 관련한 의문점이 있다”고 주장한 겁니다. 

곽상도 의원은 고인 발견 당시 상태와 수사 책임자인 파주경찰서장의 청와대 근무이력 등을 근거로 들며 “사인(死因)을 단정지은 수사기관이 미심쩍다”며 사실상 ‘타살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곽 의원의 이러한 주장에 정의연은 11일 성명을 내고 “(곽 의원은)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사망관련 정황정보를 취득하고 유족 이외의 사람들이 알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불필요한 정보를 공개하며 ‘음모론’ 유포에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경찰과 국과수의 현장조사 결과도 무시하고 도 넘은 의혹을 제기하는 곽 의원 주장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런데 음모론에 가까운 주장을 6월11일 저녁종합뉴스에서 비판 없이 보도한 방송사가 있습니다.

곽상도의 황당 주장 첫 보도한 MBN 

MBN은 곽상도 의원의 기자회견 내용을 받아쓰기 수준으로 보도했습니다. MBN은 6월11일 24번 째 보도로 <자료공개 거부… “쉼터소장 사망에 의문”>(백길종 기자)를 냈습니다. 앵커는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은 ‘평화의 우리집’ 손 모 소장 죽음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라며 리포트를 열었는데요. 백길종 기자도 “미래통합당에선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손 모 평화의 우리집 소장 죽음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라며 곽 의원의 기자회견 장면을 보여줬습니다. 뒤이어 “곽 의원의 주장은 음모론”이라 비판하는 정의당의 지적을 전하긴 했지만, 백 기자는 “곽 의원은 파주경찰서장이 청와대 파견 근무 후 서장으로 부임한 이력을 들어 수사책임자 교체를 요구했습니다”라고 리포트를 마쳤습니다. 사실상 곽 의원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수준의 보도를 한 셈입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리포트 중간에 보도된 곽상도 의원의 기자회견 장면이었습니다. 곽 의원은 “손 소장의 죽음을 자살이라 단정 짓기 어렵다”는 근거로 경찰 자료를 언급했는데 해당 장면이 사용되면서 고인 발견 당시 상황을 묘사하는 내용이 그대로 노출됐습니다. MBN은 저녁 종합뉴스에서 곽 의원의 비상식적 의혹 제기를 그대로 전달한 것도 모자라 자살보도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 보도윤리조차 저버린 겁니다.

▲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의 ‘쉼터 소장 타살설’ 전한 MBN▲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의 ‘쉼터 소장 타살설’ 전한 MBN

자살보도 윤리강령 유명무실, 곽상도 문제발언 고스란히 노출

한국기자협회는 자살보도 윤리강령자살보도 권고기준3.0을 통해 자살보도에서 지켜야 할 보도윤리와 주의사항 등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자살보도의 사회적 책임과 영향력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죠.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 따르면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 내용을 보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살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거나 묘사하면 자살에 관한 정보나 자살 암시를 제공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 수사자료 속 내용을 아무 성찰 없이 언급한 곽 의원의 문제발언을 그대로 인용한 MBN 보도는 자살보도 권고기준조차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같은 날 JTBC는 <비하인드+-애도를 표한다면서…>(박민규 기자)를 통해 곽 의원의 기자회견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JTBC를 비롯한 언론은 한국기자협회의 윤리강령을 따릅니다. 극단적 선택의 방법, 경위를 묘사하지 않고 있습니다”라며 자살보도 유의점을 짚었고, 앵커와 대화에서 “공인인 곽 의원이 공개적인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러한 발언을 반복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곽 의원의 주장에 대한 아무런 검증 없이 문제발언을 그대로 노출시킨 MBN 보도와 대비되었습니다.

MBN은 손 소장 사망과 관련한 보도에서도 윤리강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타살 의심 정황 없어”… 부검서 주저흔 발견>(6월8일 노태현 기자)에서 ‘주저흔’이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법의학 용어인 ‘주저흔’은 자살하려는 사람이 한 번에 치명상을 만들지 못하고 여러 차례 자해하여 생긴 흔적을 말합니다. 이 단어도 자살 과정을 암시할 수 있는 표현이므로 언론보도에서 지양해야 합니다. 이쯤 되면 MBN이 자살보도 윤리강령을 고려하긴 하는지 의문입니다.

‘정의연 의혹’으로 뭉뚱그려 본질 흐리는 보도

해당 보도의 문제점은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어긴 것뿐만이 아닙니다. <자료공개 거부… “쉼터소장 사망에 의문”>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전혀 다른 내용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터넷판 제목 역시 <외교부, 윤미향 자료 공개 거부… “쉼터소장 사인 논란”>으로 언뜻 보면 쉼터소장 사망 보도에 ‘외교부’가 등장에 눈길을 끌기도 합니다. 

그러나 해당 보도는 “윤미향 의원이 2015년 위안부 합의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외교부가 당시 윤 의원과의 면담자료 공개를 거부했다”는 내용과 ‘곽상도 의원의 쉼터소장 사망관련 의혹 제기’를 하나의 보도로 묶은 것입니다. 사실 보도에 등장한 두 내용은 ‘정의연’이라는 키워드 말고는 ‘아무런 상관없는’ 별개 사안입니다. 그런데 MBN은 두 이야기를 섞어 정체불명의 헤드라인을 뽑아낸 겁니다.

외교부의 면담자료 공개 거부를 지적하고 싶었다면 현재 쟁점이 되는 내용이 무엇인지, 2015년 윤미향 의원 면담자료가 왜 중요한지, 외교부가 그러한 자료공개를 거부한 배경이 무엇인지 자세히 짚어야 합니다. 하지만 MBN은 ‘곽상도 의원의 의혹 제기’로 리포트 후반부를 채웠습니다. 이런 보도는 시청자에게 정의연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 합리적 판단을 막을 우려가 있습니다. ‘외교부는 자료공개를 거부하고, 쉼터소장 사망은 의문점 투성이’라는 보도를 접한 시청자는 정의연은 ‘의혹이 가득한 곳’이며, ‘관련된 사람도 죽었다’고 받아들일지 모릅니다. 해당 보도를 끝까지 시청하지 않고 제목만 본 시청자라면 더욱 그렇겠죠. 정의연은 6월11일 성명에서 곽 의원의 의혹 제기를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고인의 죽음과 주검을 세간의 ‘호기심거리’와 ‘볼거리’로 전락시키는 비인간적 패륜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곽상도 의원뿐만 아니라 언론 역시 정의연 관련 의혹을 그러한 ‘볼거리’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음모론 재생산에 기여하는 언론

곽 의원이 6월11일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날인 12일 두 차례 보도자료를 발표하는 동안 곽 의원 주장과 관련한 내용을 저녁종합뉴스에서 다룬 방송사는 MBN, JTBC, YTN, TV조선이었습니다. JTBC는 <곽상도, 연일 '사망 의혹' 제기…무슨 근거로?>(6월12일 최수연 기자), <민주당 “유서대필 조작사건 사과도 없이 또…”>(6월12일 황예린 기자)를 통해 곽 의원이 제시한 근거의 부적절성과 모순을 지적했습니다. YTN은 <나이트포커스-“쉼터 소장 사망 의문”>(6월12일 최영주 앵커)에서 8분 가량 대담을 진행했는데요.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와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의혹 제기는 할 수 있지만 추측과 지레짐작이 아닌 사실을 근거로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TV조선은 <“사망 원인 의혹”에 “고인 명예훼손” 반발>(6월12일 윤수영 기자)에서 곽 의원의 의혹제기를 두고 “통합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등장한 문제발언을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곽 의원의 주장에 대한 부적절성을 지적하지 않은 건 MBN이 유일했습니다.

▲ 지난 6월11일부터 12일까지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의 ‘쉼터소장 타살설’ 관련 방송사 저녁종합뉴스 보도량. 표=민주언론시민연합▲ 지난 6월11일부터 12일까지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의 ‘쉼터소장 타살설’ 관련 방송사 저녁종합뉴스 보도량. 표=민주언론시민연합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막말’, ‘의혹 제기’를 아무런 검증절차 없이 전달하는 보도를 흔히 ‘받아쓰기’식 보도라고 합니다. 발언이나 주장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슈가 되면 일단 보도하고 보는 행태는 오보와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합니다. 마구잡이식 의혹 제기와 ‘음모론’ 확산에 언론이 한 몫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방송사 메인뉴스인 저녁종합뉴스에서 정치인의 ‘부적절한 발언’과 검증되지 않은 ‘음모론’을 그대로 받아쓰는 보도는 지양해야 합니다. 저널리즘 행위는 사실을 발굴·검증·취합해 가능하다면 적절한 분석을 거쳐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정보’로 바꿔내는 과정을 전제합니다. 정치권의 무분별한 의혹 제기를 검증하고, 때로는 독자적인 해석과 판단을 통해 발언의 적절성을 지적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입니다. ‘받아쓰기’식 보도가 계속된다면 언론은 정치적 발화자의 스피커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MBN이 더는 이런 보도를 이어가지 않길 바랍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년 6월11~12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뉴스9>(평일)/<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YTN <뉴스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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