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형은 수백평 땅 있는데 동생 몇십만원 준다고 될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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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형은 수백평 땅 있는데 동생 몇십만원 준다고 될 일이냐

코로나19 이전에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갈등, 자영업자와 임금노동자의 차이가 두드러졌다면 코로나19로 사회적안전망 밖에 있는 이들의 절박한 삶이 드러났다. 최근 정치권에서 전국민고용보험제와 기본소득 등을 논의하는 이유다. 미디어오늘은 19일 지난해부터 전국민고용보험제를 다듬어 21대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진보당(옛 민중당)을 찾아 김재연 신임 진보당 대표를 만났다. 진보당은 20일 민중당에서 진보당으로 당명을 개정하고 김재연 상임대표를 선출했다.

김 대표는 최근 전국민고용보험과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을 두고 “두 가지 다 토론 주제가 될 일이고 반길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전국민고용보험제를) 자기 브랜드화하기 위해 논쟁을 하면서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 둘을 대립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국민적 합의에 따라 순차적으로 적용할 수 있고 둘 중 하나만 해야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먼저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다섯형제가 한 마을에 사는데 땅 500평이 있어요. 맏형이 460평을 독차지하고 나머지 40평을 동생 4명에게 나눴어요. 1인당 10평을 가지고는 먹고 살 수가 없어요. 그래도 맏형의 힘이 세서 고개숙이고 살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4명이 맏형에게 대들었어요. 맏형은 동생들에게 한달에 50만원씩 주기로 했어요. 뭘 하든 50만원씩 준다고 ‘너무 좋다, 고마워’ 이렇게만 생각하고 끝난다면? 애초 왜 맏형이 460평을 가졌는지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야 해요. 모두가 잘살 수 있는데도 돈 좀 쥐어주고 끝나선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진보정당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전국민고용보험제냐, 기본소득이냐 양자택일 수준의 논쟁으로 끝나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진보정당이라면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모순을 외쳐야 한다는 뜻이다. 김 대표는 “물론 당장 50만원이 없으면 안 되는 이들에겐 그것도 쟁취해야 할 일이지만 구조적 불평등까지 고민하지 않으면 난 10평을 받았지만 내 자식들은 땅 한평도 받을 수 없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 진보당 1기 대표단 취임 후 첫 행보인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지를 찾은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 사진=김재연 대표 페이스북▲ 진보당 1기 대표단 취임 후 첫 행보인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지를 찾은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 사진=김재연 대표 페이스북

 

이에 진보당은 모든 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 예술인, 자영업자, 무급가족종사자, 초단시간 노동자, 자발적 이직자 등에게도 고용보험을 적용하자고 주장했다. 보통 영세자영업자의 경우 가족들이 함께 돕는데 이들은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노동을 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이들을 무급가족종사자로 부른다. 김 대표는 “취약한 몇몇을 돕는 게 아니라 고용보험이 모두의 혜택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발 이직자에게도 혜택을 확대하는 건 노동자가 노동유연화의 주체가 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2018년 8월 기준으로 취업자수 약 2700만명 중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은 약 1400만명(51.7%)에 달한다. 사각지대가 더 넓은 기이한 제도다. 게다가 자발적 실업자는 적용제외라 실제 혜택을 본 이들은 더 적다. 김 대표는 “코로나 위기에 닥쳐보니 내 트럭을 가져 사업자라고 생각했던 특수고용노동자, 자부심이 컸지만 이번학기 한시간도 수업을 할 수 없던 방과후교사 등은 자신들이 노동자라는 사실과 고용보험 필요성을 깨달았다”며 “노동자성을 인식하고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도록 제도화하는데 같이 목소리를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이 제도를 문재인 대통령까지 언급하면서 주목을 받았지만 21대 국회에서 진보당은 원외정당이 됐다. 김 대표는 “의석이 없으니 법안을 발의할 수 없고 국회 기자회견장 마이크를 쓸 수 없지만 사실 한번도 교섭단체를 가져본 적 없고 실제 대다수 당원들의 일상 정치활동은 원내 정치와 달랐기 때문에 이 기회에 대중운동의 힘을 잘 키워갈 것인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김재연 신임 진보당 상임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진보당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김재연 신임 진보당 상임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진보당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이번 총선에서 민중당(현 진보당)은 정당득표율 1.05%에 그쳤고 지역구 당선도 실패했다. 김 대표는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이 원외정당으로 4년간 거리에서 모아냈던 서민·민생에 대한 여론은 굉장히 뜨거웠는데 상가임대차보호제도, 무상급식 등 의석하나 없었지만 신선하고 필요한 정책을 말하는 정당이었다”며 “만 20년이 지난 상황에서 무상급식 같은 브랜드가 안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 사이 상당수 의원을 배출했고 그들이 열심히 싸워 통과시킨 법안도 있지만 각인되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며 “정책개발 역량이 꼭 부족한 게 아니라 진보정당 정체성을 큰 목소리로 모으지 못한 건 아닌가”라고 진단했다. 이어 “의원 개개인이 좋은 얘기는 많이 했지만 화력을 집중해본 경험이 많이 없고 실현될 법하면 시대변화 속도가 빨라 거대양당이 정책을 흡수해가는 상황”이라며 “‘복지확대’ 정도를 내세우며 안주하기 보다 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기 위한 대중운동을 연구하고 실행하겠다”고 말했다. 

진보당이 지난해부터 전국민고용보험제를 본격 연구해 최근 구체적인 안을 내놓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필요성을 언급하는 등 진보정당의 주장을 거대정당들이 흡수하는 현상이 일반화됐다. 진보정당의 설 자리가 그만큼 좁아진 건 아닐까? 

김 대표는 “정권교체 이후에도 여전히 미래통합당이 발목잡는 것을 넘어 민주주의 시계를 반대로 돌리려는 걸 보면 여당의 승리는 ‘민주vs반민주’ 구도에서 국민들이 할 수 있는 걸 다 보여준 것”이라고 이번 총선을 평가했다. 이번 총선이 민주진영을 다수로 만든 선거였다면 선거 이후엔 민주진영 내에서 여당이 보여주지 못하는 개혁을 진보정당이 본격 요구할 시간이라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예속성·자주의 문제와 불평등 등 두 가지를 구조적 과제로 봤다. 

김 대표는 정책 내용뿐 아니라 ‘정서’도 언급했다. 

“조금 다른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조국사태’때 서초동 집회에 가는 당원은 거의 없었어요. 검찰개혁, 언론개혁에 다 동의하죠. 지난 촛불 때 조국과 같은 사람들이 정의로운 얘기할 때 청와대를 응원했지만 (조국 사태땐) 내 자식 보기가 미안해진 거죠. 자식 학업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데 난 해준 게 없어 미안하고 화나고. 감정적으로 공감이 되지 않는 거죠. 정책과 노선이라고 하는 건 정서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대표출마 공약으로 ‘노동중심성 강화’를 내걸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노동자들을 배제했고, ‘노동존중사회’를 말한 현 정부는 대화의 한 파트너로 생각은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노동은 여러 영역 중 하나가 아니라 진보정당의 중심이 돼 모든 사회문제를 노동자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노조를 가지지 못한 프리랜서들, 무급가족종사자 등의 권리도 누군가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선명성은 진보정당 생존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 민중당은 지난 20일 당명을 진보당으로 바꿨다. 사진=진보당▲ 지난 20일 당명을 민중당에서 진보당으로 바꿨다. 사진=진보당

 

당 지도부와 함께 당명도 바꿨다. 김 대표는 “2017년 민중연합당과 새민중정당을 합당하며 민중당을 창당할 때도 ‘진보당’을 당명으로 하자는 당원이 많았다”며 “선거를 뛰어보니 민주당이나 과거 이재오·김문수의 민중당과 헷갈려하는 분들도 있었고 ‘민중’이라는 단어를 낯설어하는 분들도 있어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대법원은 옛 통합진보당 인사 3명에 대해 민중가요를 불렀다며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 등)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사회주의를 주장한 노동해방실천연대 간부 4명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김 대표는 “가사 어디에도 북한이 없는데 은유적인 의미까지 추정해 ‘노래를 부를 때 북한에 대한 생각을 했다’고 본 것”이라며 “실제 (한국 가수들이) 북한 노래를 평양에서 부르기도 하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국보법 판결 결과를 보면 통합진보당 사람이냐 아니냐로 유무죄가 갈렸다. 김 대표는 “‘통합진보당 사람들은 뭘해도 종북 생각을 할거야’라는 근거없는 자기규정을 가진채 재판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낡은 색깔론으로 몇몇 옥살이시키는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에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빼앗는 시대착오적 인식을 개혁하지 못하면 국민들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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