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규제 입법, 열린우리당 전철 밟나
2017년 4월, 문재인 후보는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에 <표현의자유위원회>(위원장 유승희)를 만들고 △포털의 임시조치(블라인드) 제도를 개선해 ‘댓글 게시자 이의제기 시 블라인드를 중단’하고 △진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위법성 조각 사유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표현의 자유 공약을 발표했다. (이데일리 2018년 10월5일)
사라진 대통령 공약
최근 인터넷 규제 입법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가짜뉴스와 ‘N번방 사건’이라 불리는 성 착취 콘텐츠 유포로 인터넷 규제 움직임이 더욱 강해진 것이다. 하지만 처방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대 국회 마지막 회기에 처리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대한민국 헌법 제18조가 보장하고 있는 통신비밀을 포털과 같은 인터넷서비스 사업자에게 열람, 삭제하고 접속을 차단하라는 것이다. 국가기관도 통신기록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영장이나 법절차가 필요한데, 이는 개인정보 침해, 통신의 자유 훼손에 따라 결국 표현의 자유는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다.
여기에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177석의 슈퍼 여당이 된 이후 가짜뉴스를 잡는다고 앞다퉈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가짜뉴스나 허위정보, 성 착취물 차단 등 명칭은 다양하지만, 실효성이나 법 집행에서 문제점이 많은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는 여러 차례 문제점을 지적한 바가 있다. 텔레그램, 다크웹은 해외 사업자 또는 별도 웹 채널이기 때문에 ‘정보통신망법’ 법망을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사업자는 국내법으로 규제하기 힘든 한계도 있다.
인터넷 규제악법과 과거 열린우리당 책임
더불어민주당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열린우리당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저항하는 국민의 지지로 민주계열 정부 중에서 처음으로 299석 중 152석을 차지, 단독 과반을 달성했다. 인터넷 규제에 왜 열린우리당이 다시 소환되는지 의아한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바로 열린우리당의 정책실패에서 인터넷 규제법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노무현 정부는 인터넷 기반 선거운동 활동으로 인터넷 대통령으로 불렸지만, 인터넷 규제법을 양산했다.
열린우리당이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만든 인터넷 규제법은 크게 3가지이다. 모두 논란이 되었던 인터넷 악법이다. 첫째, ‘공직선거법’에서의 인터넷 선거운동 규제(제93조 1항), 둘째, ‘정보통신망법’ 인터넷 실명제로 통칭하는 제한적 본인확인제(제44조의5 제1항 제2호), 마지막으로 정보의 삭제요청(제44조의2 정보의 삭제요청 등)과 해당 정보를 차단하는 임시조치 조항(제44조의3 임의의 임시조치)의 신설이다. 야당과 합의로 통과되었지만 정부 여당은 전문가와 학계, 시민단체의 경고에도 법 통과를 방조 또는 적극 찬성했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때 이명박 정부는 이 제도를 잘 이용(?)했다. 여기에 미네르바 사건, 촛불시위 인터넷 검열, 인터넷 실명제 유지로 대한민국은 인터넷 감시국(Under Surveillance)이란 오명을 얻게 되었다. 더 자세한 노무현 정부의 인터넷 정책의 모순은 류석진‧송경재. 2011. “인터넷 정치”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노무현 정부의 실험』(서울 : 한울아카데미)을 참조하기 바란다.
더 놀라운 반전은 헌법재판소에서 나온다. 입법 당시 필요하다고 규제를 했던 법들이 줄줄이 위헌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과거 열린우리당이 만든 인터넷 관련법은 규제악법이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 규제악법으로 인해 많은 시민이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하고 힘들어했는데, 후신인 더불어민주당은 아직 당 차원의 사과도 없다.
다층적인 해결방법 모색해야
인터넷 법 개정이나 정비는 좀 더 장기적이고 종합적 관점에서 준비해야 한다. 당장 쉽다고 근시안적인 졸속 법 개정을 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안게 된다. 한번 만든 법 제도는 자체 경로 의존성 때문에 고치기 쉽지 않아 시민들이 겪게 될 사회적 손실도 크다.
인터넷 규제가 꼭 필요하다면 핵심이 무엇인지를 진단하고, 필요한 해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정부 차원의 입법연구반 운영, 기술적 해결 방법, 글로벌 인터넷 사업자의 책임 강화, 시민의 신고와 감시, 학계의 허위정보 팩트체크 능력 강화, 시민의 정보 리터러시 제고 등 다차원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한두 차례 찬성론자들을 모아두고 공청회나 토론회를 하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이를 통해서 가짜뉴스와 불법 허위정보, 성 착취물, 민주화운동 왜곡, 여성(남성)혐오, 차별정보 등의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규제하고 표현의 자유라는 시민권과 조화를 이루는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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