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A와 볼빨간 사춘기 불화설…가십을 넘어
2007년 ‘원더걸스’와 ‘소녀시대’가 한국에서 다시 아이돌 붐을 만든 이후 누구나 알다시피 연예계 화제의 중심은 단연 ‘아이돌’이 됐다. 이는 역설적으로 아이돌에 대한 부정적 사건보도가 지니는 영향력도 폭발적이라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사소할 수 있는 말실수는 물론, 사람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감정과 심리적 충돌도 쉽게 기사로 오르내리기 쉽다. 온라인 연예뉴스의 고질적 악습인 ‘댓글 소개식 기사’나 ‘커뮤니티 반응 소개 기사’는 이러한 영향력의 역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론 다수는 이러한 기사들을 소위 ‘기레기’의 전형적 태도라며 비판하지만 결국 상당수는 언론의 이러한 행태를 키우는 데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이들이다.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순식간에 인기 검색어에 해당 이슈가 오른다. 사건 관계자 SNS는 그야말로 온갖 댓글들로 쑥대밭이 되고, 반응들은 황색 언론을 위한 ‘떡밥’이 되고 만다. 모두가 떡밥에 시선이 쏠린 사이 정작 사건에 책임져야 마땅한 이들의 모습은 망각되기 쉽다.
이런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보였던 사건은 2012년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던 아이돌 그룹 ‘티아라’에 제기된 집단 괴롭힘 의혹이 아닐까. ‘러비더비’나 ‘롤리폴리’ 같이 다양한 후크송으로 2010년대 초반 인기를 끌던 티아라는 그룹 결성 초창기부터 함께한 멤버들과 활동 중간에 합류하게 된 멤버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정황이 알려지고, 다시 새 멤버에게 괴롭힘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매우 빠른 속도로 지탄의 대상이 됐다. 줄곧 상위권을 차지하던 음원 차트 순위가 순식간에 폭락한 것은 물론, 험악한 여론을 이유로 빠르게 프로그램 게스트나 광고 모델에서 하차되기도 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약 8~9년이 지났지만 한 번 악화한 이미지는 여전히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창 학교 내 괴롭힘(왕따) 문제에 사회적 분노가 들끓고 있던 상황에서 티아라에서 발생한 괴롭힘 의혹은 빠르게 비난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SNS 등으로 드러난 멤버 사이 갈등과 의혹은 쉽게 부정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티아라에게 괴롭힘을 저질렀다고 추측되는 멤버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모조리 여론과 언론의 공격·비난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지만, 이들이 쉽게 건드리지 않는 영역이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계속 방치하고, 크고 작은 문제를 호소하기 어려운 한국 아이돌 산업 현실이다.
물론 여론과 언론은 티아라가 당시 소속돼 있던 기획사인 ‘코어콘텐츠미디어’와 해당 기획사 수장이자 프로듀서인 김광수도 연일 맹폭했다. 코어콘텐츠미디어는 일찌감치 소속 가수들의 스케줄을 지나치게 무리하게 잡는 것으로 지적 받았으며 프로듀서 김광수는 윤상, 터보 등을 프로듀싱한 것으로 명성이 높았지만 동시에 권위주의적으로 가수를 대하는 것은 물론 무리한 언론 활용으로 지탄을 받기도 했다. 티아라 논란 때도 코어콘텐츠미디어는 사건을 덮는 것에 급급했다는 평을 들었다. 티아라 문제는 곧 이들 문제로 전이되기 충분했다. 결국 티아라가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은 후 티아라와 소속사 코어콘텐츠미디어는 물론, 코어콘텐츠미디어의 후신격 연예기획사인 MBK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은 김광수 프로듀서 부진과 맞물리며 대중들에게 좀처럼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파장은 티아라 외부를 넘지 못했다. 티아라 내부 갈등과 의혹에 대해 온갖 말들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매우 빠른 주기로 그룹 콘셉트나 멤버가 바뀌고 이에 기획사가 멤버들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을 지적한다. 아이돌을 비롯해 상업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가수들은 어느 정도는 상품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2007년 재차 아이돌 붐이 불거진 이후 아이돌은 이전보다 훨씬 더 ‘서비스 상품’으로서 덕목을 지니는 것이 요구됐다. 연예기획사는 정식 데뷔하기 전부터 ‘연습생’이라는 이름으로 ‘투자’를 진행하며, 데뷔한 이후로는 기획사마다 조금씩 사정은 다르지만 자신들이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는 것에 신경을 쏟는다. 만약 공들여 기획한 음원이 대중에게 먹히지 않는다면, 그 이후로는 판매 촉진을 위한 빠른 조건 변경이 이뤄진다.
하지만 아이돌이 아무리 대중적 문화 상품으로 기획될지라도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휴식 시간이나 사생활 보장 없이 고된 연습을 요구받고, 많은 과정과 경쟁을 거쳐 데뷔한 후로도 자신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연예 활동을 한 것에 대한 성과는 ‘투자비 정산’ 명목으로 막대한 제한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아이돌 개개인이 받는 스트레스와 여러 고민은 자연스럽게 부차적 문제로 밀려난다. 티아라의 오랜 논란에서 아이돌 개개인이나 소속사에 대한 비판은 있었지만 아이돌 산업 구조에 대한 지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쉽게 특정 대상에만 머무를 뿐 문제를 만드는 구조를 보지 않는 흐름은 결국 다른 문제들을 연이어 낳았다. 지난 2018년 아이돌 밴드 ‘더 이스트라이트’와 이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행사했다는 문제 제기를 받은, 김건모·박미경 등 인기 가수를 기획하며 유명세를 얻었던 유명 프로듀서 김창완 사이의 논란은 기획사와 아이돌 사이의 관계가 수직적으로 형성되기 매우 용이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건이었다. 2019년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CJ ENM 엠넷의 ‘프로듀스 101’ 시리즈를 비롯한 수많은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의 투표 조작과 열악한 촬영 환경, 심지어는 ‘소년24’를 통해 데뷔한 모 멤버에게 제대로 활동비를 지급하지 않다가 탈퇴 의사를 보이자 거액의 위약금을 제시한 사건은 대형 기획사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지 않음을 매우 극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7월에는 두 건의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가장 먼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사건은 FNC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아이돌 AOA의 멤버들 사이에 발생한 괴롭힘 논란이다. 처음에는 인스타그램에 달린 악플에 대한 짜증에서 출발했던 전 멤버의 글은 어느 순간 자신이 과거 AOA에서 겪었던 온갖 괴롭힘에 대한 폭로로 끝나 있었다.
한 번 터진 폭로는 계속 이어졌고, 이 폭로는 무수한 매체와 SNS, 커뮤니티를 통해 계속 확산됐다. 폭로는 어느 순간 진실공방으로 이어지고, 아무도 이 폭로가 정확히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게 됐다. 동시에 이와 같은 시기, 2인조 그룹이었다 올해 4월 멤버 한 명의 탈퇴로 솔로그룹이 된 ‘볼빨간사춘기’ 역시 현 멤버와 전 멤버 사이 인스타그램 글이 ‘불화설’을 입증하는 증거라며 널리 확산됐다.
많은 언론과 사람들은 이 두 그룹에서 벌어진 사건 사고를 빠르게 소비하고 다시 확산한다. 특히 AOA에서 발생한 괴롭힘 논란은 티아라에 이어 인기그룹 멤버 사이에 발생한 괴롭힘 논란이라는 이유로 더더욱 가십성으로 소비되고 있다. 온갖 ‘불화설’과 ‘갈등’은 언론에는 높은 조회수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소재가, 많은 대중들에게는 온갖 관심과 주목을 바쳐 소비하고 싶은 ‘이슈거리’가 된다.
그러나 이런 말들과 시선은 얼마나 문제의 핵심에 닿고 있는가. AOA 역시 티아라 만큼 수차례나 멤버가 바뀌고 콘셉트가 변경됐던 것을 생각하면, 즉각적 수익을 위해 계속 그룹 이미지만 바꿀 뿐 질적인 요소를 체크하지 않았던 FNC엔터테인먼트의 문제는 더더욱 직시해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동시에 2012년 티아라를 둘러싸고 논란이 발생한 이후 좀체 연예계 종사자 개개인을 위한 상담이나, 문제 해결 처리 기구를 명확하게 만들거나 구축하지 않은 것 역시 결코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당장 즉각적으로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가르고 평가하고 새롭게 이 둘 사이에서 나올 말들을 다시 적극적으로 소비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한 다층적 결들은 사라지고, 구조적 원인은 그대로 남은 채 뇌리에서 사라진다.
싸움을 부추기기만 할 뿐, 최소한의 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조차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 수십년간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도 그저 개개인의 잘잘못을 가르는 것에서 끝이 난다면, 문제는 그대로 다시 이어지지 않을까. 이 반복적 상황은 겉으로는 사건이 발생한 것을 걱정하지만 실상은 계속 끊임없이 논란과 사건사고가 일어나기만을 원하는 이들이 함께 동조해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진짜 이 같은 문제가 사라지길 원한다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아이돌이 지금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고 활동하는지 직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