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기사가 촬영보조, 리포터가 편집… 청주방송 비정규직 백화점
고 이재학 PD 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청주방송 내 수십 명의 ‘제2의 이재학’을 확인했다. 조사위는 전체 비정규직 42명 중 반을 넘는 30여명 비정규직의 노동자성을 확인했다. 나머지도 위법이 아닐 뿐 대부분 상시·지속 업무를 맡는 용역·파견업체 직원이었다. 자회사 직원에게 본사 청주방송 일을 시킨 불법파견도 확인됐다.
청주방송 비정규직 수는 정규직 수의 절반을 넘는다. 3월 기준 전체 정규직 78명 대비 42명으로 약 54%다. ‘용역업체’에 고용된 직원은 8명으로 MD(Master Director) 4명, 경비 2명, 미화 2명이다. ‘파견업체’에서 파견된 직원은 16명이다. 운전기사가 9명, 행정직원이 5명, CG작업자가 2명이다. 그 외 조연출(AD·3명), 리포터 및 DJ(4명), 분장담당(1명), 작가(9명) 등 ‘프리랜서’가 18명이다.
10년 넘게 청주방송에서 일한 비정규직만 6명이다. 조사에 응한 34명 설문조사를 정리한 결과다. 5~7년 근속한 비정규직도 7명이다. 5년 이하 근속은 3~5년 4명, 1~3년 8명, 1년 미만 9명이었다. 조사위는 “청주방송처럼 청주방송 일만 15~20년 가까이 한 프리랜서들이 직군 별로 다수 존재하는 건 지역 민영방송 업계 내에서도 드물다”고 밝혔다.
임금은 10년 이상 동결됐다. 동시에 열에 일곱은 청주방송에서만 80~100%의 소득을 벌었다. 34명 중 월 250만원을 받는다고 밝힌 응답자는 6명(17.6%)로 가장 많았고 180~190만원, 200만원을 받는 응답자도 각 4명씩이었다. 월 210만원, 220만원도 각 3명씩 응답했다. 대부분 정직원만큼 일하거나 그보다 더 많이 일하는 데도 업무량에 비해 임금이 적다. 프로그램 회당 지급되는 작가비는 타 지역방송사의 60~70% 수준이었다.
처우 개선 요구는 할 수 없었다. 2018년 4월에야 고 이재학 PD가 최초로 임금 인상을 요구를 했단 사실이 방증이다. 조사위는 면담조사 결과 “이들은 특정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처우 개선을 요구할 경우 언제라도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는 데 고용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절반 넘는 이들은 자신이 상시·지속 업무를 맡고 있다고 인지했다. “내 업무는 청주방송 운영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업무”란 질문에 아니라고 답한 응답자는 한 명도 없다. 52.9%가 ‘매우 그렇다’고 답했고 20.7%가 ‘그렇다’, 26.4%가 ‘보통’이라 답했다. “나의 업무는 청주방송 일상 업무에 속한다”는 물음엔 48.6%가 ‘매우 그렇다’고 봤다. 34.3%도 ‘그렇다’고 했고, 8.8%가 보통이라 답했다.
방송사고 직결된 필수 인력 전부 외주화돼
크게 작가, MD, AD 직종의 비정규직들 노동자성이 확인됐다. 특히 MD의 편법 고용 문제가 심각했다. MD는 ‘주조정실에 근무하는 방송 운행 책임자’로, 쉽게 말해 프로그램 사이에 나오는 각종 광고나 외주 프로그램이 정확한 시간에 송출될 수 있게 관리하는 기술인력이다. MD 업무에 공백이 생기면 그대로 방송사고로 이어진다. 방송학 교재에도 “(상급자인) 기술감독과 함께 최종적인 방송의 책임을 지며 방송국에서 없어선 안 될 분야”라고 써있다. 방송사가 통상 직접 고용하는 인력이다.
청주방송은 이 일을 전부 외주화했다. 2015년까진 정규직이 맡았는데 서서히 외주화돼 전부 용역업체 인력이 맡게 됐다. 때문에 주조정실에 정규직 기술감독과 용역회사 직원 MD가 함께 일하는 광경이 매일 벌어진다. 이 MD는 경영기획국 광고담당자와도 긴밀히 소통하고, 사고가 나면 청주방송에 경위서도 보고한다.
업무도 서서히 가중됐다. MD 본연의 업무가 아닌 일까지 계속 떠맡았다. 이들은 보도·제작 담당자가 해야 할 ‘블루레이 레코딩’과 기술팀이 해야 할 ‘재난방송 모니터링’ 및 각종 행정업무도 맡고 있다. MD 4명은 주·야간 4조 2교대로 24시간 일한다. 재난방송 모니터링 때문에 방송이 정파되는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쉬지 못한다. 기본급은 법정 최저임금이다. 여기에 시간 외 수당과 하루 2500원 중식수당이 붙는다. ‘재난방송 업무’ 대가로 월 20만원도 지급된다.
다른 직종 업무까지 맡는 경우는 청주방송에서 흔하다. 작가가 FD(실상 조연출 보조) 역할을 하거나 리포터가 대본 작성과 녹음·편집까지 하는 경우다. 한 작가는 진상조사위에 “출연자를 스튜디오에 안내하고 계좌번호를 받고 마이크를 채우는, 다른 방송사에서 FD가 하는 일을 우리들이 한다”고 말했다.
라디오 DJ를 병행하는 리포터 경우,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대본 작성, 녹음, 편집, 광고, 자동송출 등 제작부터 송출까지 모두 맡고 있다. 조사위는 또 “특정 리포터는 2020년 3월 개편부터 기상캐스터로 활동하면서 기사 작성, CG 업무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운전 후 촬영보조 뛰는 기사들, CG일 배운 리포터
운전기사는 촬영보조(오디오맨)를 병행한다. 보도·제작팀을 외근 장소로 운전해준 뒤 카메라 감독 보조를 맡는다. 삼각대 이동 및 설치, 카메라 밝기 조정, 동선 및 위치 보조, 마이크 채워주기 등의 일을 한다.
여기서 파견법 위반 문제가 나온다. 청주방송은 이들을 한 인력업체로부터 파견받는데, 파견법 상 파견노동자는 법에 적힌 파견대상업무에만 쓸 수 있다. ‘자동차 운전 종사자의 업무’가 파견 대상 업무에 있으나 청주방송 기사들은 본연의 업무 밖의 일까지 맡게 돼 문제가 발생한다.
같은 파견직인 행정직원들도 파견법 밖의 부가업무를 맡고 있다. 파견대상업무인 ‘행정업무’의 사무지원 종사자 내용을 보면 단순 사무보조에 가깝다. 그런데 이들은 방문객 접대, 제작비·영수증 매일 정산, 회계 관련 문서 입력 등을 맡는다. 업무가 특히 많은 편성제작국 소속일 경우 라디오 관련 행정업무도 맡고 한 달 한 번 열리는 시청자위원회나 심의실 자료 정리도 한다.
파견법상 회사는 한 파견노동자를 최대 2년까지 쓸 수 있다. 즉 이들은 계속 일할 의향이 있어도 회사가 직접 고용하지 않으면 2년 후 퇴사해야 한다. 조사위는 “부가 업무를 지시하면 파견법 위반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운전기사·행정은) 상시·지속적 업무고, 주기적으로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건 인력운용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직접고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백화점, 한 방송사 아닌 모든 방송사 실태
더 명확히 불법파견 문제가 드러난 곳이 있다. 청주방송이 지분 100%를 가진 완전 자회사 ‘엔터컴’이다. 엔터컴에 고용된 직원 2명이 대부분 청주방송 일을 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들 외 엔터컴에서 일하는 직원은 3명 더 있으나 모두 청주방송 임직원이다.
엔터컴 업무는 행사·축제 기획과 제작, 프로그램 홍보물 제작, 전시회 기획 유치 등이다. ‘괴산군 세계 유기농 엑스포 축제’ ‘제천 국제 한방 바이오’ 등 지자체와 공공기관으로부터 수주하는 행사가 많다. 청주방송 기획제작국도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두 회사 직원들은 행사를 엔터컴이 수주하든, 청주방송이 수주하든 구분없이 섞여서 일한다. 수주 행사는 청주방송이 엔터컴에 비해 월등히 많다. 즉 엔터컴 직원 둘은 대부분 청주방송 일을 한다. 이 경우 청주방송은 엔터컴에 용역대금 형식으로 비용을 지불한다.
인력과 업무가 모두 섞여 있다. 기획제작국과 엔터컴은 청주방송 4층 사무실을 같이 쓴다. 엔터컴 직원이 청주방송 기획제작국장과 PD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엔터컴 직원의 급여 처리부터 각종 회계 처리도 본사 경영기획국 직원이 한다. 엔터컴 직원들이 사용하는 각종 시설, 장비도 모두 청주방송 소유다.
조사위는 이들이 “명백히 파견노동자로 근무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들은 인력파견 계약서를 쓰고 파견받은 인력이 아니라 자회사 직원이다. 즉 실질로는 파견노동이지만 도급(용역) 회사를 통해 본사 일을 시킨 ‘위장 도급’ 불법파견이다. 조사위는 “파견법에 따라 이들을 직접 고용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결론냈다.
이밖에 각 직종에서 차별 처우 문제도 나왔다. CG팀에서 두드러졌다. 청주방송 CG는 정규직 2명과 파견직 2명이 같이 작업하고 있다. 파견직과 정규직은 출퇴근 시간이 비슷하고, 같은 공간에서 일한다. 업무 내용도 거의 같다. 그런데 임금 차이는 컸다. 정규직 월 임금이 월 430만원 수준이면 파견직은 월 230만원 정도였다. 파견직은 상여금, 복리후생 수당이 전무했다.
진상조사위는 “청주방송 비정규직 실태는 어느 한 방송사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대규모 지상파 방송사들이 안고 있는 고용 구조 문제들이 모두 포함된 축소판”이라고 밝혔다. 조사위는 “‘방송업’ 특성을 내세워 ‘원래 그런 바닥’이라는 변명을 앞세워 마땅히 이뤄졌어야 할 비정규직의 제자리 찾기가 번번이 가로막혔다. 청주방송부터 시작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