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류관 주방장 발언 대서특필, 막말 확성기 자처한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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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관 주방장 발언 대서특필, 막말 확성기 자처한 언론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된 북측 인사가 있습니다. 북한 유명 음식점 ‘옥류관’ 주방장으로 알려진 오수봉 씨인데요. 북한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이 6월13일 ‘남조선 당국자들’을 험한 말로 맹비난한 그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고, 한국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알려졌습니다. 북한 매체는 북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주요 수단입니다. 하지만 북한 매체에 등장하는 북측 인사의 언행을 전하는 한국 언론은 일부 ‘막말’에 집중하여 북한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오늘> 글, 제목으로 가져다 쓸 만큼 가치 있나

▲ 6월29일 네이버 뉴스 검색 결과. 많은 언론이 ‘옥류관 주방장’ 발언을 제목으로 달았다.▲ 6월29일 네이버 뉴스 검색 결과. 많은 언론이 ‘옥류관 주방장’ 발언을 제목으로 달았다.

오수봉 씨의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500자 글에서 한국 언론이 주목한 문장 하나가 있습니다. “南, 국수 처먹을 땐 요사 떨더니…”라는 내용인데요. 여기서 국수는 ‘평양냉면’을 뜻하고, 오 씨 글의 대상은 ‘남조선 당국자들’입니다. 6개 일간지와 경제지 2개 중 해당 발언을 싣지 않은 곳은 한겨레가 유일할 정도로 ‘인기’ 문장이었습니다.

언론이 앞다퉈 해당 발언을 대서특필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요. 최고지도부나 북한 당국자가 아닌 민간인이 남측 대통령 등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고, 남북화해 상징인 ‘평양냉면’이 지금은 비난의 도구가 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해당 발언을 제목으로 쓰고, 도배에 가까운 수준으로 보도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데요.

<조선의 오늘>은 북한의 대외선전매체입니다. 조선일보 <북한 새 웹사이트 '조선의 오늘', 관광 적극 홍보>(2014년 12월02일), 연합뉴스 <“북한 관광 오세요”… 북한, 관광 특화 웹사이트 개설>(2014년 12월01일 이영재 기자) 등을 종합해 볼 때 북한 관광정보 제공을 위해 개설된 사이트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북한 3대 중앙지인 <로동신문>, <민주조선>, <청년전위>와 비교했을 때 대외용 선전매체인 <조선의 오늘>은 그 중요도가 크게 떨어집니다. 이밖에도 북한의 대외용 선전매체는 <메아리>, <우리민족끼리>, <통일의 메아리> 등 남측에 알려진 것만 꼽아도 여러 개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이 <조선의 오늘>에 실린 한 문장을 무분별하게 제목으로 가져다 쓴 이유는 발언의 자극성 때문입니다. 과격하고, 자극적인 기사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는 방식은 한국 언론의 고질병이지만, 북한 관련 뉴스에서도 ‘낚시질’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활용한 것입니다.

아시아경제 <“더러운 X개무리들… 국수 처먹을 때는 요사 떨더니” 北옥류관 주방장 대남비난>(6월13일 한승곤 기자), 중앙일보 <하태경 “옥류관 주방장까지 文 조롱… 韓, 北 노예국가 전락”>(6월14일 김기정 기자), UPI뉴스 <‘냉면 처묵’ 막말 ‘옥류관 주방장 오수봉’은 자라요리 전문>(6월15일 김당 기자) 등을 보면 북측 발언을 인용하고 있지만, 욕설과 비속어를 제목으로 쓰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이 북한의 ‘노예 국가’로 전락”했다는 과도한 비난까지 제목으로 뽑았습니다. 이런 제목은 언론으로서 최소한 품위는 고사하고, ‘낚시질’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한국 언론이 북측 인사의 ‘막말’을 퍼뜨리는 확성기 역할을 자처한 꼴이 되었습니다.

북한 ‘막말’, 남남갈등 조장과 정치적 공격에 악용

▲ 북한 ‘막말’ 보도하며 특정 지지층과 엮어 보도한 세계일보(6월17일)과 조선일보(6월16일)▲ 북한 ‘막말’ 보도하며 특정 지지층과 엮어 보도한 세계일보(6월17일)과 조선일보(6월16일)

일부 언론은 북한 ‘막말’로 ‘남남 갈등’을 부추기고, 정치적 공격을 위해 이를 악용하기도 합니다. 조선일보 <‘처먹는다’에 폭발한 친문들… “인간 아닌 것들 대우해줬더니”>(6월16일 원선우 기자)는 친문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인간 아닌 것들을 인간대우 해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미친×들, 벌레가 사람 흉내를 내느냐” 등의 격앙된 반응이 오고갔다고 전했는데요. 특정 진영의 분노를 강조한 기사입니다. 반면 서울경제 <하태경 “北주방장까지 대통령 조롱하는데 친문·조국부대 뭐하나”>(6월13일 윤경환 기자)는 앞선 조선일보 기사와는 다르게 특정 진영이 움직이고 있지 않다며, 은근히 특정 진영의 이중성을 비난하는 프레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북한 관련 이슈를 진영 논리와 엮는 방식은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을 때도 반복됐습니다. 세계일보 <친문 지지자들 北에 등 돌리자… 강경해진 당·청>(6월17일 김태훈 기자)은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이른바 ‘친문’ 지지자들이 문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무례한 태도를 들어 북한에 등을 돌린 것이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고 주장하면서 ’친문‘ 커뮤니티에 오고간 발언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한국 언론이 ‘쏟아낼’ 정도로 북한 ‘막말’을 보도하면서도 본질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북한이 왜 수십 년간 비상식적 ‘막말’을 반복하는지, 이같은 수준 이하의 발언을 한국 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북한의 ‘막말’은 김일성종합대 등 명문대를 졸업한 최고 엘리트들이 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요사를 떨더니’, ‘삶은 소대가리’와 같은 말을 퍼뜨린다는 건데요. 북한 처지에서 이들의 ‘막말’은 그저 비상식인 돌출행위로만 볼 수 없습니다. 체제불안에 시달리면서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놓쳐서는 안 되는 약소국의 외교전략이라는 해석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언론은 이런 발언을 ‘막말’, 눈길 끌기용으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그 배경과 맥락을 고려한 보도를 해야 합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가 공동으로 제정한 ‘2017 평화통일과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보도제작준칙’은 통일문제에 관한 민주적인 여론형성을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제작실천요강 4항에 따르면, ’상업주의와 선정주의를 경계’하라며, 언론행위가 ‘미래의 통일민족문화와 직결’된다고 적시했습니다. 북한의 막말을 대대적으로 부각하여 전하는데 급급하여 분노와 갈등을 키우기보다 ‘미래 통일민족문화’의 무게를 느끼며 차분하게 사안을 바라보는 언론의 자세가 필요할 때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년 6월16~26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보도와 네이버에서 ‘옥류관’을 검색하여 나온 온라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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