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국공 논란이 보여준 노동운동의 현주소와 갈 길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논란이 다시 한번 차별과 증오를 부추기는 수구보수언론과 정치세력들의 해악을 보여주고 있다. 저들은 ‘로또취업’, ‘알바몬’ 등의 용어와 논리로 일부 청년 구직자들의 박탈감을 부추기고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며 커다란 반목과 갈등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비정규직 차별이야말로 불공정하다’는 김두관 의원의 지극히 맞는 말은 집중포화와 비난을 받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졸 취준생들의 분노와 불만이 언론에서 ‘청년의 목소리’로 소환되고 과잉대표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또 법망을 벗어나고 있는 삼성 이재용이 아니라 인천공항의 비정규직들이 더 특권과 불공정과 부정의의 상징인 것처럼 돼버린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정규직화를 중단하라’는 청와대 청원서명은 25만 명을 넘어섰고, 으레히 ‘사법시험준비생모임’(폐지된 시험을 준비하는 불가사의?)이 튀어나와 ‘평등권 침해’라며 인권위 진정까지 했다.
이는 또한 ‘공정의 역습’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공정’은 몇 년전부터 ‘386의 위선과 특권’을 빌미삼아 반동적 어젠다를 추구하는 신(청년)우파의 주요 무기로 변화해 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언론과 정치세력의 가짜뉴스와 악선동이 낳은 결과로만 볼 수는 없다. 불평등한 사회가 낳은 불만과 분노가 불쏘시개가 돼 왔고, 특히 이 상황의 뿌리에는 대기업/공공부문의 정규직 일자리라는 ‘좁은 문’을 놓고서 벌어져온 줄 세우기와 극심한 경쟁이 놓여 있다.
이 무한경쟁은 ‘능력이 좋거나 노력을 많이 해서’ 그 울타리 안에 있거나, 그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배타성을 키웠다. 울타리 밖의 사람들은 ‘머리가 나쁘고 뭔가 뒤떨어진 루저들’이라는 낙인과 열등감의 상처가 깊고, 울타리 안의 사람들은 언제든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자기 욕심만 채운다는 시선에 대한 수치심이 깊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불신과 갈등은 커지고 ‘좀비언론’과 ‘혐오정치’는 그 틈을 파고든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구조다. 1997년 IMF 위기 전후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속에서 2000년대부터 대기업/공공부문에서는 정규직 신규채용을 최소화하면서 필요한 인력을 2,3차 사내하청과 외주화, 비정규직으로 채웠고, 중소영세기업에서는 무방비의 불안정 노동자들, 맨 밑바닥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는 차별구조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단지 보수정부만이 아니라 ‘민주정부’도 함께 만들어 온 구조이다.
그 결과,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의 임금이 100일 때, 대기업 비정규직은 60, 중소영세기업 정규직은 50,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40, 이주노동자는 30이라는 식의 분절과 격차의 노동시장이 생겨났다. 임금 수준보다도 고용안정성의 격차가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위험의 외주화’는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을 가능성에서도 엄청난 격차를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학력, 젠더, 토익, 스펙, 시험성적 등이 작용하는데, 무엇보다 대기업/공공부문은 대부분 ‘유노조’이고 중소기업 영세부문은 ‘무노조’라는 것도 핵심적 요소다.
노조는 방패이자 무기이기 때문에, 경제위기 때는 방패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덜 빼앗겼고, 경제회복 때는 무기가 있으면 더 얻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분절과 격차’에 노동운동도 책임있는 듯이 보이는 ‘역설과 착시’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분절과 격차를 만들어온 지배자들이, 그 분절과 격차를 이용해 노동운동을 공격하고 이간질하는 역설과 연결돼 왔다. 정규직/비정규직, 조직/미조직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는 것은 1997년 이후 한국 지배계급의 주된 분열지배전략이었다.
하지만 노동운동이 과연 안팎의 모든 노동자들을 위해 울타리를 없애는데 성공해 왔는가하면 답이 쉽지 않다. 노동조합은 분명 조합원들의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을 위해 매우 효과적인 무기이지만, 특정 단계에 이르면 조합원만의 이익을 위해 전체 노동계급의 단결을 가로막는 걸림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도 “발전의 변증법에서는 노동조합을 성장시키는 이러한 필연적인 수단이 오히려 노동조합 발전이 특정 단계에 이르고 조건이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걸림돌로 변화하는 상황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요즘 미국의 경찰노조이고, 지금 한국에서는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공공부문의 일부 정규직 노조들이다.
그래서 지금 이 사태는 단지 문재인 정부가 직면한 모순이나 수구언론과 보수세력의 반동성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현주소와 갈 길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는 것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닥친 경제위기 속에서 지금 악 소리도 못 내고 잘려나가고, 임금이 뭉텅이로 깎이고, 밥줄이 끊기고 있는 것은 대기업/ 공공부문/ 유노조 작업장의 노동자들이 아니다. 그 울타리 밖의 비정규직, 하청, 여성, 플랫폼, 이주노동자, 영세자영업자들이다. 여기서 노동운동에 3가지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기존에 하던 대로 하는 것이다. 부문별, 기업별로 밀고 당기는 투쟁과 협상이 벌어질 것이고, 그러면 노조와 임단협으로 보호받는 노동자들은 코로나19 경제위기에서도 아마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 공공부문은 그래도 지불능력이 남아있고, 노동조합은 그것을 받아낼 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비바람에 쓸려가는 울타리 밖의 사람들은 그 안의 사람들을 더 원망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결국 나중에 울타리 안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둘째는 이번에 양대노총 지도부가 하듯이 지금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에 참가해 뭔가 양보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울타리 밖의 사람들을 걱정하며 손을 내미는 것처럼 보이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 합의’만으로 재벌과 기득권 세력들이 자기 몫의 많은 부분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실질적 문제 해결과 개선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울타리 안팎에서 ‘우리만 손해봤다’, ‘뭐가 달라졌나’라는 불만과 불신, 갈등이 다시 커질 것이다.
셋째는 노동운동이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사회적 방안을 제시하면서 무엇보다 울타리 밖의 사람들을 위해 단결하고 투쟁하며, 실질적 개선을 쟁취할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별 기업에서의 임금과 고용만이 아니라 주택, 교육, 보건, 사회복지와 공공서비스를 위한 투쟁을 통해서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일자리라는 좁은 문을 둘러싼 무한경쟁’을 벗어날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90%정도나 되는 울타리 밖의 노동자들의 신뢰를 얻고 울타리를 허물면서 세상을 바꾸고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일어서는 것이다.
셋째 길을 위해 대기업/공공부문의 조직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단기적, 부문적 이익을 넘어서 투쟁할 의지와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협소한 이해관계를 넘어서 전체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을 위해 투쟁하고 있음을 모두에게 확신시켜야 한다. 노동운동은 그럴 준비와 능력을 만들어 왔는가? 지금 사회적 대화에 참가해서 뭐라도 내놓으며 더 큰 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그것의 문제점과 위험성을 비판하는 급진좌파들의 심정을 크게 공감하면서도, 지금의 대립구도가 갑갑한 이유다. 인천국제공항 논란은 노동운동에게 결코 강 건너 불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