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가 백선엽 논란을 다루는 편향적 방식
7월10일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이 사망했습니다. 5일간의 육군장 끝에 7월15일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에 안장됐습니다. 백선엽 씨는 생전에 대전현충원 안장이 결정되었지만, 사망 후 대전현충원에 안장되기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백 씨에게는 한국전쟁에서 공을 세운 이력 외에 친일 이력이 있기 때문에 국립묘지 안장을 둘러싼 찬반이 팽팽했던 것인데요.
백선엽 씨는 간도특설대 활동 이력으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기록됐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중국에 세운 만주국 군대가 간도특설대인데요. 일본 관동군의 지휘를 받아 중국 북간도 내 항일세력 토벌을 위해 조직되었습니다. 간도특설대는 일제 패망 전까지 동북항일연군과 팔로군을 대상으로 108차례 토공작전을 벌였는데, 이들에게 살해된 항일 무장세력과 민간인은 172명에 달합니다. 간도특설대가 고문, 약탈, 방화,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기록은 곳곳에 남아 있죠. 이처럼 독립군 토벌로 악명이 높았던 간도특설대 지휘관이었던 백 씨 이력으로 인해 ‘대전현충원 안장 논란’이 일게 된 것입니다.
종편 시사대담 프로그램에서도 ‘백선엽 대전현충원 안장 논란’이 여러 차례 등장했습니다. ‘논란’을 말할 때는 상반된 주장과 관련 사실을 모두 설명한 후 시청자가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채널A는 백 씨의 친일 이력을 거의 다루지 않거나 이미 규명된 친일 이력도 ‘확실하지 않다’며 부정하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1. 백선엽의 ‘공’만 방송한 <뉴스TOP10>
채널A <뉴스TOP10>은 7월13~15일 ‘백선엽 대전현충원 안장 논란’을 다뤘습니다. 그런데 초점이 오로지 백선엽 씨가 세운 공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뉴스TOP10>(7월13일)에서 진행자 김종석 씨와 출연자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의 발언이었는데요.
진행자 김종석 : 이현종 위원님, 백선엽 장군을 추모하는 곳 중에 가장 목소리가 큰 데가 미국이더라고요. 전 주한미군 사령관들이 ‘한국군의 아버지다’, 이렇게 고인을 꽤 추모를 하고 있습니다. (중략)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 : 그게 왜 그러냐하면 세계 전사에서요. 백선엽 장군의 다부동 전투가 이 전사에서 아주 길이 빛나는 전투로 남아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북한 같은 경우에 6‧25전쟁을 일으킬 때 전차가 100여 대 정도를 소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내려왔어요. 당시 우리나라 국군은 전차가 한 대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6월 15일 날 휴전선을 넘어 들어와서 8월 12일 날 부산을 점령하는 것으로 계획을 짜고 있었어요. 파죽지세로 내려왔죠. 바로 그 파죽지세가 다부동 전투에서 막혔습니다. 즉, 당시 백선엽 장군은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라” 하면서 본인이 제일 앞장서서 전투를 지휘해서 정말 기적적인 전투를 했습니다. 바로 거기에 미군들이 굉장히 감동을 하고 있는 것이고.
김종석 씨는 “백선엽 장군을 추모하는 곳 중에 가장 목소리가 큰 데가 미국”, “전 주한미군 사령관들이 (백선엽 장군을) ‘한국군의 아버지다’, 이렇게 고인을 꽤 추모”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현종 씨는 다부동 전투를 언급하며 미국이 백 씨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다음 날 <뉴스TOP10>(7월14일)에서도 이현종 씨는 백선엽 씨 업적에 대한 칭송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백 씨의 친일 이력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백선엽은 독립군을 토벌하지 않았다” 역사 왜곡
<뉴스TOP10>(7월 15일)에서는 출연자가 백선엽 씨의 친일 이력을 언급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친일 이력을 제대로 설명하기보다 해명하기에 급급했는데요.
하종대 채널A 보도본부 선임기자 : 백선엽 장군이 간도특설대에 소속돼서 독립군을 토벌하는 데 앞장섰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이거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왜 사실이 아니냐면요. 1941년에 만주 군관학교에 백선엽 장군이 들어가서 2년 만에 졸업을 합니다, 43년에. 그리고 1년간은 흑룡강성의 자무스라고 하는 곳에서 조교 역할을 해요, 군관 조교 역할을. 그리고 1년 뒤에 다시 와가지고 간도특설대에 배속되는데요. 이때, 즉, 해방 직전에는 이미 만주사변 1931년 이후에는 독립군이 만주 부근에서 완전히 다 쫓겨나서 일부는 바로 소련으로 가고 그랬지 않습니까? 그래서 없었기 때문에 독립군하고 전투도 없었을뿐더러 독립군하고 토벌하는 데 앞장섰다고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하고 중국의 국경 지대에서 근무했던 거 아주 짧은 기간이고요. 그다음에 대부분은 북경 지역에 가서 정보 수집하는 곳에 종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혀 ‘우리 독립군을 토벌하는 데 앞장섰다’ 이거는 사실이 아니라고 다시 한 번 확인 드리겠습니다.
하종대 씨는 더 나아가 백 씨가 독립군을 토벌하는 데 앞장선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하 씨 주장이야말로 사실이 아닙니다. 백 씨가 1993년 일본에서 출간한 『대 게릴라전-미국은 왜 졌는가』에서 간도특설대 활동이 반민족 행위였음을 시인하는 취지의 발언을 내놨기 때문이죠. 백 씨는 “우리들이 쫓아다닌 게릴라 가운데 조선인이 많이 섞여 있었다. 주의․주장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하려는 일본의 책략에 그대로 끼인 모양이 된다”,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이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서술했습니다. 즉, ‘백 씨가 독립군을 토벌하는 데 앞장서지 않았다’는 하종대 씨 주장은 사실도 아닐뿐더러 역사 왜곡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채널A <뉴스TOP10>은 백선엽 씨가 세운 공을 주로 언급했고, 출연자는 이미 규명된 친일 이력조차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습니다. 백 씨에 대한 논란을 다룰 때 시청자가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시사대담 프로그램의 역할이겠죠. 그런 점에서 채널A <뉴스TOP10>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2. “친일의 확실한 이력이 없다” 왜곡한 김근식
채널A <뉴스A 라이브>(7월15일)도 ‘백선엽 대전현충원 안장 논란’을 다뤘습니다. 출연자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역사를 왜곡하는 문제발언을 내놨습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간도특설대로 2년 동안 복무했다는 것은 자신도 인정한 일입니다만 예전의 친일파처럼 직접 항일투쟁했던 독립군들과 싸웠거나 교전을 벌였거나 사람을 다치게 한 적은 없거든요. 그냥 43년 2월의 상황이라고 한다면 간도특설대에 복무는 했지만 교전을 하거나 독립군들하고 만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 친일의 확실한 이력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을 높게 평가하고 과에 대해서는 좀 안타까운 정도로 돌려보내는 것이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김근식 씨 주장처럼 백 씨는 1943년 만주국 소위에 임명된 후 광복 이전까지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습니다. 간도특설대는 잔혹한 토벌작전으로 일본에서 많은 훈장을 받았는데요. 이들이 독립군을 상대로 자행한 끔찍한 일들은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백 씨가 장교로 복무하는 동안 간도특설대는 170명의 조선독립군을 처형했으며, 우리나라가 해방될 때까지 독립군 탄압과 일제 침략전쟁에 협력하는 데 힘썼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 게릴라전-미국은 왜 졌는가』에서 백 씨는 자신의 친일이력을 정당화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간도특설대)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서술한 겁니다. 이처럼 백 씨가 스스로 친일 이력을 밝히고 정당화하기까지 했는데도, 김근식 씨는 “친일의 확실한 이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명백한 역사 왜곡이며 백선엽 씨 같은 친일파로 인해 목숨을 잃은 독립군에게도 예의가 아닙니다.
백선엽의 공은 정말 사실인가
김근식 씨는 “6‧25라고 하는 공산주의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는 전쟁 속에서 다부동 전투부터 평양수복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공적을 세운 영웅”이라며 백선엽 씨의 공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한겨레 <“백선엽은 조작된 영웅” 참전군인이 말한다>(7월20일)에서 박경석 예비역 준장은 “백 장군이 예편 뒤 자청해 30여 년 동안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자신과 채병덕 총참모장 등 일본군 출신 군인들 중심으로 한국전쟁사를 미화했다”며 백 씨의 공이 과장되거나 조작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박경석 준장은 “백선엽은 후퇴를 참 잘하는 사단장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였으며 “미군 군사고문단을 극진히 대접해 맺은 인연을 배경으로 승승장구했다는 게 정설”이라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한겨레21 <“백선엽 부대가 우리 가족 학살했다”>(7월21일)에서는 한국전쟁에서 백 씨의 1사단이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으며, 주둔지에서는 강간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백 씨도 2009년 펴낸 자신의 회고록 『군과 나』에서 “백야사의 전과가 (사살 5800명, 포로 5700명으로) 당초 예상했던 빨치산 숫자 4천 명의 무려 3배가 넘었다. 공비들에 포섭된 비무장 입산자도 많았다”며 민간인 사살 가능성을 스스로 인정했는데요. 한국전쟁에서 백 씨가 세운 공에 과장이나 조작이 있다는 증언, 백 씨 스스로도 인정한 민간인 학살 가능성 등을 종합해 볼 때 백 씨의 공을 알려진 그대로 받아들이고 평가하긴 어렵습니다.
진보진영의 왜곡된 역사인식?
김근식 씨 문제발언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진보진영 일각에 왜곡된 역사인식이 있다고 주장한 겁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제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바에 따르면 우리 대한민국 이른바 진보진영 일각에서 일본을 북한보다 더 싫어하고 오히려 항일투쟁이 6‧25전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왜곡된 역사인식이 있어요. 저는 그런 면에서 오히려 항일투쟁의 전사가 6‧25전쟁의 영웅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일각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는….
김 씨는 ‘일본과 북한’, ‘항일투쟁과 한국전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역사를 비뚤어진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일본과 북한 중 어느 나라를 더 좋아하고 싫어하느냐의 문제가 왜 진보와 연결되는지 황당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항일투쟁과 한국전쟁은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6월6일 제65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독립과 호국이 오늘 우리가 누리는 대한민국의 뿌리”, “독립·호국·민주 영령들은 각자 시대가 요구하는 애국을 실천했고, 새로운 시대정신과 역동적인 역사의 물결”이라고 강조했는데요. 이처럼 ‘독립’과 ‘호국’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역사입니다. 김근식 씨는 진보진영 일각의 역사인식이 왜곡됐다고 주장하기 전에 본인의 역사인식이 ‘편 가르기’로 왜곡된 건 아닌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년 7월13~15일 채널A <뉴스TOP10>, 7월 15일 채널A <뉴스A 라이브>
※ 출연자 호칭을 처음엔 직책으로, 이후엔 ○○○ 씨로 통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