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가 하루종일 홍어만 먹는 방송 만든 이유
코로나19는 미디어 생태계를 바꿔놓았습니다. 특히 지역 방송은 생존이 위태로울 정도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비단 코로나19 영향 때문이 아니라 지역 방송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계속돼 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학계와 시민단체, 지역방송 구성원들의 기고글을 통해 지역 방송의 정체성부터 다매체 환경에 놓인 지역 방송의 자구 노력, 나아가 정부의 지역방송 정책에 대한 방향을 묻고자 합니다. 지역방송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하고 있는 부분도 따끔하게 질타하는 목소리를 담겠습니다. 지역 방송 존재가치를 묻는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실마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당 릴레이 기고는 미디어오늘과 MBC계열사 전략지원단이 공동기획했습니다 - 편집자주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 매년 광고수입이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위기를 맞은 지상파방송의 처지다.
지상파방송 중에서도 MBC가 어렵고, 본사보다 지역사들이 더 어렵다. 급변하는 환경에 전력으로 대응해도 어려웠을 판에 권력에 영합하느라 허송세월한 탓이 크지만, 때로는 공영으로 규제당해 자유롭지 못하고 때로는 민방으로 취급해 공적 지원에서 배제당하는 정체성도 한 몫 한다.
IMF 경제위기나 세계 금융위기 때도 어려웠지만 단기간에 극복 가능했던 데 비해 환경과 구조에서 비롯된 작금의 위기는 차원이 다르다.
2018~19년 MBC 본사가 연속 천억이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한 반면 지역계열사들은 2019년 일이십억에서 수십억, 올해는 그 두세 배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액수로는 본사에 비할 바 아니지만 그 무게감은 엄청나다.
처한 상황은 비슷할 지라도 전파료 배분비율 같은 네트워크 내부문제들이 있는데다 수도권에 비해 형편없이 작은 광고시장, 유통할 수 있는 콘텐츠의 절대부족, 적은 보유 자산과 유보금 등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기가 훨씬 어렵다.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지역방송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 지역사 PD들과 함께 일본 나고야의 토카이테레비(東海TV)를 견학한 적이 있다. 십년을 꾸준히 다큐영화를 개봉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우리 광역사급 지역방송사다. 한국에서도 개봉한 다큐영화 ‘인생 후르츠’를 만든 곳이다.
왜 매년 다큐영화를 만드는지, 지역방송사는 어떻게 해야 생존할 수 있을지에 질문에 대한 다큐영화 제작 총괄PD의 대답이 가슴에 남았다.
“지역에 있다고 저절로 지역방송사인 것이 아니다. 지역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지역의 정보를 발신하고, 지역발전에 기여하며, 지역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지역민들이 우리 지역에 꼭 필요하다고 여기고, 믿고 사랑하는 방송사여야 한다. 미래는 거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의 이슈나 인물을 소재로 한 다큐영화 제작은 지역성 콘텐츠로 수익을 만들어 내고 지역정보를 발신하는 수단으로 토카이테레비가 택한 방법 중 하나였다.
일본 나고야 PD의 지역방송론은 우리 지역방송사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다큐영화는 아닐지라도 우리 MBC 지역사들이 노력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전파를 타진 못했지만 세월호 사건 때 서울의 잘못된 보도와 달리 현지 상황을 정확히 전달한 언론사, 손혜원의원의 목포 원도심 재생을 위한 투자가 엄청난 투기라도 되는 양 서울 언론들이 융단폭격을 할 때 보도내용과는 다른 지역도시의 현실을 꾸준히 보도한 언론사는 목포MBC였다.
대구 코로나 위기 때 드러나지 않은 신천지 관련 사실을 발굴 보도하고 지방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비판하고 상황을 정확히 보도함으로써 위기 극복에 기여한 것은 대구MBC였다.
2019년 안동MBC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라디오 드라마를 제작했다. 임청각의 주인 석주 이상룡선생의 항일투쟁기와 파란만장한 가족사가 평일 매회 십 분씩 50회에 걸쳐 전파를 탔다. 올해에는 6·25 발발 70주년을 기념하는 라디오 드라마 ‘낙동강 전선’을 50부작으로 만들었다. 서울 라디오들은 하지 않는 지역공영방송사다운 기획이다.
광주MBC는 지난 2년에 걸쳐 홍어를 소재로 한 10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 ‘핑크피쉬’를 제작 방송했다. 일부 세력이 5·18의 진실을 왜곡하고 전라도 사람을 홍어라며 모욕하는 상황에서 지역의 상징 음식인 홍어를 제대로 한 번 들여다보자, 외국에서는 홍어를 어떻게 먹는지 특정음식과 특정지역을 연결한 혐오와 차별이 얼마나 반문화적이고 비인간적인 악행인지 정면으로 다뤄보자는 취지의 이 기획 또한 일상적으로 홍어를 접하는 지역이 아니면 발상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역에는 서울과 다른 이슈들이 있다. 서울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지역에서는 보인다.
광주MBC는 5·18 콘텐츠의 허브를 자처하며 5·18 프로그램 제작에 힘을 쏟고 있다. 김철원기자는 작년 전태일과 윤상원 두 열사의 이야기를 다룬 ‘두 개의 일기’에 이어 올해 2부작 다큐멘터리 ‘이름도 남김없이’를 제작했다. 또 미니다큐 ‘내 인생의 오일팔’을 연중 방송하고 있다. 5·18 40주년을 기념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방송하고, 그것을 축약한 미니다큐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을 제작 방송했다. 백재훈 PD는 김의성·표창원·심용환 세 사람이 서울, 부산, 마산, 광주에서 5·18의 흔적과 희망을 만나는 기행 다큐멘터리 ‘오월행’을 만들었다.
지역성을 담은 프로그램만 만드는 게 아니다. 지역에 도움이 되는 사업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광주MBC는 나주 원도심의 버려진 정미소 창고 한 동을 나주시와 협력하여 음악프로그램 ‘난장’을 위한 공연장으로 만들었다. 녹화 때면 나주를 알지도 못했던 젊은이들 수백 명이 나주를 찾는다(코로나로 현재는 무관중 온라인 공연 중).
광주 남구청과 손잡고 근대역사문화마을 양림동에 라디오 오픈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일주일에 5일 두 개의 프로그램을 라이브로 진행하는데 누구든 방송 모습을 지켜볼 수 있고 참가할 수도 있다. 새로운 매력자원으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외에도 광주MBC 권역 안에 있는 담양군 화순군 등 지자체들과 여러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지역 공영방송이 지역발전에 기여하고 지역과 지역공영방송이 상생하는 일이다.
필사적인 노력에도 적자행진을 멈추게 하는 데는 벌어들이는 수입이 턱없이 부족하다.
핑크피쉬 같은 고품질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서울 수준의 제작비를 들였으나 수익은 미미하다. 지역 공영방송의 사명감이 아니라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기획이다.
앞선 기고문에서 김희경교수가 지적한대로 지역방송사가 만드는 콘텐츠는 “누구나 봐야 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본연의 기능에는 충실하지만 시장가치와는 부합하지 않는다. 지역콘텐츠는 상업적 재미보다 공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상업적 수익을 보장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한 마디로 만드는 족족 손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지역방송이길 포기한다면 모를까 자체 제작은 하지 않고 본사 프로그램을 그대로 받아 내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갈 길은 멀고 해는 지고. 요즘 심정이다.
광주MBC의 경우 올해 광고수입이 5년 전에 비해 반으로 줄었다. 디지털콘텐츠 제작 유통, 사업다각화, 아무리 애써도 급감하는 광고수입의 반도 벌충하기 어렵다. 코로나 이전, 전체 매출액 가운데 50%를 밑돌던 인건비 비율이 코로나 이후 70%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다른 계열사들도 비슷할 것이다. 지역방송이 백척간두에 서있다.
차입경영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아 임금 21%를 삭감하기로 한 충북MBC의 사례는 충격이었다. 사원들도 과거에 겪었던 위기와 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임금과 복지혜택을 삭감하는데 동의하고 회사와 함께 생존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개별 방송사들의 자구노력도 중요하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 법과 제도의 정비와 공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박성제 사장이 제기한 MBC에 대한 공적 지원과 정부 내 미디어개혁위원회 설치, 방문진에 보고한 지역사 통폐합계획 초안, 정해진 일정대로 UHD방송을 확대하겠다는 방통위 방침에 대한 지역방송사들의 반발 등은 더는 감내하기 힘든 경영상황에서 비롯했다.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 광고결합판매제도 폐지, 언론진흥재단이 지역방송사가 구해온 협찬금 10%를 가만히 앉아 수수료로 떼어가는 정부광고법 손질, 영업적자에도 불구하고 내야 하는 방송발전기금 제도 개선, 지역방송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원책 마련 등등.
이명박 정권이 종편에 안겨준 것과 같은 특혜가 아니라 시대에 맞지 않는 법과 제도를 고치고 지상파에 대한 역차별을 해소해달라는 요구인데도 정부의 태도는 적극적이지 않은 듯하다.
더 늦기 전에 빈사상태에 놓인 지상파방송, 특히 지역공영방송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일들이 신속히 이루어지기 바란다. ‘다른 매체들 많은데 지상파방송, 지역공영방송 같은 거 없어도 상관없잖아’라는 생각이 아니라면 고민은 그만하고 행동을 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의 분발을 앙망한다. 정말이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역방송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