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자의 고백 언론·검찰·삼성,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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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자의 고백 언론·검찰·삼성,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

지난달 20일 출간한 책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해요미디어)는 한 ‘30년차 기자’의 자성이다. 그는 언론계 잘못된 관행의 공범이라며 ‘검찰 받아쓰기’ ‘기사·광고 거래’ ‘접대 골프’ 등 생생한 사례를 책으로 고백했다. 자성의 형식을 빌렸지만 내용은 언론에 대한 비판이다. “언론개혁 공감대를 넓히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것이다.

고쳐야 할 관행 중에서도 ‘검찰’과 ‘삼성’ 두 열쇠 말에 방점을 찍었다. 저자가 생각하는 언론개혁 방향의 두 축이다. 지난 30년간 검찰을 취재한 경력과 편집국에서 데스크 펜을 흔들던 각종 외압을 관찰해둔 것이 주요 글감이 됐다. 짧은 글 70꼭지를 4장으로 묶어 310여쪽 책으로 펴냈다. 지난 3일 경기도 인근에서 저자 ‘이소룡씨’(필명)를 만나 발간 취지를 들었다.

▲ 지난달 20일 출간한 책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해요미디어.▲ 지난달 20일 출간한 책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해요미디어.

‘전(全) 언론사 편집국장’ 출신 검찰 간부

4장 부제가 이 책의 성격을 보여 준다. 검찰 출입 기자들의 ‘선택적 보도’를 다룬 1장 부제는 “선한 정치권력이 없듯이 정의로운 검찰권력도 없다”다. 자신의 ‘공정보도 투쟁’을 다룬 2장은 “‘빨갱이 몰이 사설’에 반대하는 연판장이 공개됐다”로 지었다. “진정 두려운 존재는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권력”이 3장 ‘삼성과 자본권력’의 부제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룬 4장엔 “떠나는 그에게 회사를 대신해 깊이 사과했다”고 붙였다.

이소룡씨는 검찰 취재 경험을 복기하며 언론의 ‘검찰 받아쓰기’를 질타했다. 이씨는 “원래 언론개혁을 다루는 책을 쓰려고 계획했으나 시간을 앞당긴 건 ‘조국 사태’였다”고 밝혔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잘못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대상을 검찰과 언론으로 옮겨와 그 행태를 보면, 사람을 표적 삼은 그물망식 수사가 있고 언론은 검찰 수사를 견제·감시하지 못하고 받아쓰는 패거리 저널리즘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핵심은 언론의 “검찰발 정보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었다. 여기에 수십 개 언론사들이 ‘남보다 빨리 쓰는’ 단독 경쟁에 빠지며 사안 본질보다 “이삭(단편 정보) 줍기”에 빠졌다고도 했다. 이씨는 “권력을 견제한다면서 또 다른 권력(검찰)의 위험성에는 눈감는 모순”을 언론이 범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사례를 들었다.

“나도 검사가 일러준 수사 내용과 공소장을 토대로 기사를 썼다가 곤욕을 치른 적 있다. 조직폭력배가 개입한 상가 분양 비리에 관한 보도였다. 피의자 쪽에서는 검사의 청부 수사 의혹을 제기하는 상황이었다. 피의자 친족이라는 변호사가 나타나 피의사실 공표 및 유출을 따지고 드니 말발이 달렸다. 정정보도를 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위협해왔다. 나는 유감을 나타내면서도 ‘검찰의 공신력’을 내세우며 버텼다. 결국 ‘후속보도할 때 유의하겠다’는 약속으로 마무리 짓기는 했지만 검사 입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 21쪽)

▲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지난해 9월2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며 기자들 앞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지난해 9월2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며 기자들 앞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른 정부 부처보다 왜 유독 검찰과 언론의 관계가 가까울까. 이씨는 “고급 정보”를 언급했다. 그는 “기자 힘은 정보에서 나온다. 그중에서도 힘 있는 정보는 공직자, 대기업 총수 등 권력층에 대한 비리, 정보, 첩보다. 기자의 수집으론 한계가 있다. 의혹은 수집할 수 있지만 그걸 확인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검찰에서 넘겨주는 정보는 ‘날 것 그대로 삼켜도’ 된다.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이니까. 검찰은 ‘가장 강한’ 정보, 내밀한 정보를 쥐고 있고, 기자들에게 확신을 주는 취재원”이라고 설명했다.

검찰도 이를 알고 언론을 적절히 활용한다. 이씨는 책에서 한 고위 간부 검사를 ‘전(全) 언론사 편집국장’이라 부르기도 했다. “큰 언론사들을 중심으로 영민하게 수사 정보를 몇 개씩 적절히 배분해 던져줬고, 언론사들도 ‘나도 달라’며 계속 매달렸다”는 것.

이씨가 ‘기자단’에 비판적인 이유기도 하다. 기자단은 폐쇄적 구조를 만들어 정보권력 등 이점을 누리고, 공무원도 기자단만 응대하면 돼 공보가 편리해져 서로 우호적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씨는 “검찰발 정보를 받고 이것이 실질적 국민 알 권리와 관련됐는지, 검찰 이기주의나 수사 흐름 조성과 관련된 건 아닌지 등의 의심을 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본의 데스킹 “로열패밀리 보도는 안돼”

“이후 삼성 임원이 편집장에게 연락해 ‘협조’를 부탁했다. 인터넷판 기사를 내려달라는 요청이었다. 앞으로 최대한 협조하겠다면서. 이런 경우 오가는 얘기는 뻔했다. 삼성 측에서 편집장에게 제안한 광고금액은 ○○원이었다.”(책 207쪽)

이씨가 2012년 2월 ‘Z 주간지’에 ‘삼성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태안 원유 유출 사고) 관련 르포 기사를 쓴 후 편집장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광고는 없던 일이 됐다. 이씨는 “(많은 기업이) 특히 오너, 혹은 로열패밀리 비리 의혹이나 사생활 관련 보도는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막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거래가 이뤄지는 건 언론계 오랜 불문율”이라며 “삼성은 그나마 (거래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는 편이라고 알려졌지만 예외는 아니었다”고 썼다.

2014년 ‘X일보’ 모 논설위원이 삼성 비판 칼럼을 쓴 직후 ‘영업부서’로 발령난 예도 있다. 삼성그룹 승계작업 첫 단계 중 핵심이었던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관련한 칼럼이었다. 일부 임원들도 이 채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차명주식’ 의혹이 짙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도 차명주식 문제를 수사했지만 혐의를 밝히지 못했다.

2014년 삼성SDS가 상장되면서 차명 의혹의 중심에 있던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인주 삼성선물 사장이 각각 1조원과 5000억원 시세차익을 올렸다. 이 논설위원은 “존경받지 못하는 부의 축적은 자본주의 체제를 위태롭게 한다. 땀이 묻어난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반칙과 불법의 돈놀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피케티가 한국 증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희한한 삼성SDS 대박 사건을 본다면 ‘21세기 자본 속편’을 쓰려고 하지 않을지 모르겠다”고 썼다. 그는 한 달 뒤 ‘AD본부’(광고국)로 발령났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되면 어떻게 할 건가요?” “뛰어내리세요.” 2016년 10월 X일보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문제의 발언을 했다고 기사화됐다가 며칠 뒤 삭제됐다. 이 부회장이 한 삼성전자 임원으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임원을 몰아세우며 한 말로, 부국장급 기획위원이 신빙성을 확인해 보도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월8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월8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 밖에도 외압에 시달려 삭제되거나 대폭 축소된 대기업 비판 기사 사례가 69쪽에 걸쳐 있다. 독자들은 직간접적 외압이 기사 초고를 어떻게 바꾸는지 내밀한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유독 ‘삼성’ 이름만 실명으로 처리됐다. 이씨는 “과거 권력의 정점이 정치권력이었다면 지금은 재벌권력이다. 재벌 중의 정점은 삼성그룹이다. 삼성을 얘기하지 않고 재벌권력을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렇다고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이 악의 축처럼 보는 과격한 관념엔 동의하진 않는다. 우리 사회에 끼친 긍정적 역할은 인정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곪은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 언론이 지적을 안 하면 삼성 내에서 누가 하겠느냐. 언론이 꾸준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기자들, 언론계 내에서도 싸워야

기자들이 스스로 저항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있다. 120여쪽에 달하는 2장 ‘공정보도 투쟁’ 내용이다. 이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로 2006년 10월 ‘X일보’에서 있었던 기자들 집단 반발을 들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이적 행위 또는 적화 통일을 위한 북과의 공모 행위”를 했다며 “노 정부 내 적화동조 세력을 찾아내고 몰아내야 한다”고 쓴 사설이 문제였다.

문제의식을 가진 기자들이 ‘연판장’을 돌렸다. “사시가 보수적이고 사주가 있는 회사라 위험을 무릅쓰고” 한 행동이었다. 편집국 내 공정보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기자들이 만든 사내 동아리 ‘신문연구회’가 주축이 됐다. 이들은 11월 초 ‘빨갱이몰이 사설’에 반대하는 성명과 이에 동의하는 기자들 명단을 공개했다.

이씨는 책에서 “공정보도나 언론윤리 등 공적 영역에서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사적으로는 특권 의식에 젖어 특혜를 누렸던 점을 고백한다”며 “이 책이 언론 집단의 자성을 촉구하고 언론개혁의 공감대를 넓히는 데 이바지한다면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덜 수 있겠다”고 썼다.

그는 “‘기레기’라 불리는 등 언론의 부정적 이미지만 워낙 부각되고 있지만 언론이 사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기(公器)인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언론과 기자들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라도 언론이 처한 문제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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