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 속 네탓 공방 격화에 언론 정치권 비판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였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결국 반쪽에 그치게 됐다. 정부가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2022년까지 단계적 폐지하고, 의료급여는 폐지가 아닌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한겨레‧경향신문‧서울신문이 이 소식을 1면 머리기사 또는 사설에서 다루고 비판했다.
초장기 폭우로 전국에 침수 피해가 계속되면서 관련 보도가 주요 지면에 떠올랐다. 미래통합당은 이명박 정부의 역점 사업 4대강 사업을 재평가하자고 나서는 한편 태양광 ‘난개발’이 산사태 피해를 불렀다고 주장하고, 더불어민주당이 4대강이 수해를 오히려 키웠다고 맞받으며 정치 쟁점으로 비화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4대강 보의 홍수 예방 효과를 검증하라”고 지시했다.
다음은 11일 전국단위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문 정부 ‘임기 내 달성’ 무산
국민일보 “100억대 부동산에 252만원 종부세…‘기막힌 세테크’”
동아일보 “노영민 비서실장은 남았다”
서울신문 “‘돌파형’ 최재성 정무수석 발탁”
세계일보 “우후죽순 태양광, 산사태 피해 키웠다”
조선일보 “집값 계속 뛰는데…문대통령 ‘부동산대책 효과’”
중앙일보 “5년간 300조 군비증강, 핵잠수함도 추진”
한겨레 “물난리 고통 와중에…4대강 불붙은 정치권”
한국일보 “청 ‘절반의 쇄신’…노영민 교체 일단 미뤘다”
정부 부양의무제 완전폐지 공약 파기
보건복지부는 10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중생보위) 회의를 열어 향후 3년 취약계층 대상 정책방향과 추진방안이 담긴 ‘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의결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가장 예산규모가 큰 의료급여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아니라 ‘개선’ 방침만을 밝혔다. 생계급여 기준은 2021년엔 노인과 한부모 가구를 대상으로, 2022년엔 그 외 가구까지 기준을 폐지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으로 내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사실상 파기 선언한 셈이다.
부양의무자 기준 제도란 재산이나 소득이 수급자 선정기준에 들어가는 빈곤층이라도 서류상 부모와 자녀 등 직계가족이 있으면 혜택을 받을 수 없도록 한 제도다. 가족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데도 부양의무자(1촌 직계혈족 또는 배우자)가 있다는 이유로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복지 사각지대로 지목돼왔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당시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 폐지를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현재까지 교육급여와 주거급여에서만 폐지한 상태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직접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는 것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고 말해 장애인단체를 비롯해 시민사회 거센 비판을 샀다. 다만 시민사회 측 위원들의 요구에 따라 “3차 종합계획 수립 시까지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폐지 방안 등 취약계층 의료보장 강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포함해 검토한다”는 부대의견이 달렸다.
경향신문과 서울신문이 1면에 소식을 전했다. 경향신문은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걸었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사실상 현 정부 내에서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빈곤 관련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사실상 포기라며 비판했다”고 밝혔다. 서울신문은 이날 1면 “부양의무자 기준 반쪽폐지, 복지사각 결국 안 줄인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선 공약이었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결국 반쪽짜리로 귀결됐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복지부가) 임기 후반 복지 청사진이라 할 2차 종합계획에서 의료급여 부양의무 기준 폐지를 제외함으로써 스스로 공약을 저버린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폐지하지 못한 데는 재정 부담 요인이 크다. 부양의무 기준을 폐지할 경우 매년 5조원 안팎의 개정이 든다”며 “그렇다고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있어선 안 된다. 정부는 ‘선 지원, 후 부양비징수제’ 도입을 포함한 빈곤층 의료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사설을 내 “(정부가) 의료급여 기준을 폐지하면 수급자가 크게 늘 것으로 보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조금 완화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한다”며 “정부는 2021년도 ‘기준 중위소득’ 인상을 2.68%로 묶는 등 복지정책에서 잇따라 머뭇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4대강 수해 키워” 통합당 “태양광 탓”
전국 물난리가 한창인 상황에 여야 정치권이 책임론을 벌이고 있다. 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최형두 원내대변인 등 통합당 주요 인사들이 연일 4대강 사업 덕에 수해가 줄었다며 이슈화에 나서자 더불어민주당이 낙동강 유역의 홍수 피해가 4대강 보 건설로 커졌다며 맞받았다.
문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50일 넘는 최장기 장마와 폭우로 발생한 전국적 피해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1면 “물난리 고통 와중에…4대강 불붙은 정치권”에서 “발언은 이번 폭우 피해를 고리 삼아 정부의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을 공격하려는 미래통합당의 공세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4면 머리기사에 ‘4대강 정치권 논란이 놓친 것’을 부제로 달아 보도했다. 한겨레는 “섬진강과 낙동강 지역의 홍수 피해를 분석 중인 전문가들은 강바닥을 파내고 보를 설치한 4대강식 준설사업은 홍수 예방책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며 “기후변화로 인해 갈수록 폭우 피해 우려가 커지는 만큼, 치수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친환경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고 전했다.
통합당은 문재인 정부의 태양광 발전 사업 난개발이 호우로 인한 산사태를 불렀다고 비판했다. 세계일보가 1면 머리에 경북도 고령군 태양광 시설 2곳의 토사 유출과 미통합당 탈원전대책특위 성명을 들어 기사를 냈다. 세계일보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 속에서 산비탈을 깎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다 보니 호우에 속수무책이었다는 비판”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이를 팩트체크 코너로 다뤘다. 경향신문은 “산림청은 지난 6월24일 중부지방에서 장마가 시작된 이후 9일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산사태가 모두 1079건이라고 밝혔다. 이 중 12건이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발생했다. 비율로 따시면 1.1%다”라며 “태양광 설비 자체가 경사진 산에 나무를 베어내고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영향평가를 해봐야 의견이 나온다”고 전문가 견해를 정리했다.
한편 수해 복구를 위한 4차 추가경정예산이 정치권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예비비 지출이나 추경 편성 등에 대해 고위 당정협의를 갖겠다고 발표했다. 야당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신속히 국회를 열어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수해 규모가 너무 커서 추경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재정당국 수장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비비 2조 6000억원이 있는 데다 내년 예산으로 확보해도 크게 늦지 않는다며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다.
신문들은 전국 물난리 앞에 정치권이 4대강 공방에 열을 올리는 데에 공허하다고 비판하는 사설을 내놨다.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이번 수해에 4대강 사업 유무에 따른 영향이 일부 있었다손 치더라도 재해가 지속되고, 생명이 위급한 경우도 계속 생기는 상황에서 네탓 공방에 매달리는 것은 방재 활동에 방해만 될 뿐”이라고 했다. 한겨레도 “지금 절실한 게 무엇인지 정치권만 우선순위를 모르는 것 같다”며 “여야는 소모적 정치 공방을 그만두고 ‘4차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실질 피해대책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일괄 사의 사흘 만에 절반 인사… 노영민 비서실장 유임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청와대 신임 정무수석비서관에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 신임 민정수석에 김종호 감사원 사무총장, 시민사회수석엔 김제남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을 내정했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수석 5명이 함께 사표를 낸 지 사흘 만에 절반에 인사 조치를 단행한 것. 일괄 사의를 밝힌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윤도한 국민소통수석, 김외숙 인사수석 등은 일단 자리를 지켰다.
신문들은 “안으로는 친정 체제를 강화해 청와대 내부 기강을 다잡는 한편 밖으로는 협치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한국일보). 한국일보는 정무수석 자리를 3선 의원 출신 강기정 수석에서 4선의 최 신임 수석이 이어받으면서 야당과 소통에 공들이겠다는 의미를 강조했다. 강성 친문계인 최 신임 정무수석을 발탁한 건 당청관계에서 청와대 주도권을 강화하는 의미라고도 했다. 한겨레는 최 신임 수석이 강성으로 알려진 까닭에 야당과 소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여야 모두가 이번 인사에 우려 혹은 비판을 제기했다고 했다. 민주당은 노 실장의 유임을 두고 “반쪽 쇄신으로 비칠 수 있다”고 했다. 야당은 “일부 교체는 아직도 대통령이 사태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미래통합당)” “핵심 정책 라인에 평가가 빠진 인사(정의당)”라고 비판했다.
민정수석에는 문재인 정부 초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냈던 김종호 감사원 사무총장을 다시 불러들였다. 한국일보는 행정고시 출신 감사원 인사가 민정수석에 오르면서 민정라인 ‘탈검찰화’ 기조도 재확인됐다고 했다. 시민사회수석엔 통합진보당‧정의당 국회의원 출신인 김제남 기후환경비서관을 승진 발탁했다. 한국일보는 이를 야당과 협치를 강화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라고 평가했다.
한편 사의를 밝힌 고위급 참모 가운데 절반을 바꾼 데 그쳐 후속 개편 가능성에도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 인사권에 관한 사항이라 답변이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