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전 일본 원폭 투하와 한반도의 현재
미국은 75년 전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22만 명이 사망했다. 그 해 8월6일 오전 8시15분 히로시마에 16kt의 핵폭탄이 B-29에서 투하된 뒤 인구 35만 명의 주민 가운데 8만 명이 즉사했고 사망자 수는 방사선 피폭과 관련된 질병과 관련된 부상과 질병으로 14만 명으로 늘어났다. 3일 뒤인 8월9일 미군이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폭으로 27만 명가량이 피폭되고 7만여 명이 사망했다. 며칠 뒤 일본은 항복했고, 전쟁은 끝이 났다.
두 도시에서 한국인은 7만여 명이 피폭돼, 4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목숨을 건진 3만여 명은 심각한 후유증을 앓았고 그 2·3세들이 아직도 고생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피폭 생존자는 2100여명이며, 평균 나이는 81살이다(한겨레 2020년 8월5일).
[ 관련기사 : 한겨레) 원자폭탄 피폭 후유증은 자손에게 대물림될까? ]
피폭 당시 폐허가 된 일본의 두 도시에는 먹을 거나 마실 물도 구하기 힘들었다. 도시는 사흘 밤 낮 동안 불탔다. 두 도시의 피폭 생존자는 13만 6천여 명으로 방사선으로 평생을 만성 질환에 시달렸다(가디언 2020년 8월6일). 당시 생존자들의 목격담은 처참하다. 피부가 타서 궤양이 생긴 사람, 눈알이 안구에서 튀어 나온 사람, 입과 몸에서 내장이 튀어나온 사람 등이 즐비했다. 피폭자들은 대부분 목말라 했고 물을 마신 뒤 대부분 즉시 사망했다.
생존자들은 여러 가지 피폭 증세로 고통을 받았는데, 입 몸이나 코에서 피가 흐르고 심한 설사를 했으며 머리털이 뭉텅이로 빠졌다. 온 몸에 파란 반점이 생겼다. 이들은 매일 생과 사를 오가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미국은 원폭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 등에 대한 논란이 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 피해 지역에 대한 언론 방문 등을 제한했고 미 육군은 히로시마 피폭지역에 대한 기록물을 1946년 만들었다.
미국 등 2차 대전 연합군은 유럽에서 독일군을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민간인과 군인을 구분치 않고 대도시에 무차별적인 공습으로 수많은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 것에 대한 비판, 책임론 등을 피하기 위해 독일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대인을 학살한 끔찍한 사진 등을 대거 유포시켰다. 독일의 야만적 행위로 연합군의 민간인 대량 살해가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간접적으로 확산시킨 것이다.
미국의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는 전쟁 종식의 전단계라는 관점에서 정당화되었지만 도덕적으로는 그렇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점이 종전 이후 핵전쟁을 기피하게 된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는 관점도 있다(BBC 2020년 8월4일).
두 도시에 원폭이 투하되면서 인명 피해만 볼 때 22만 명이 화염과 폭풍, 방사선에 의해 사망했고 수만 명이 부상했다. 그리고 피폭자 후손으로 이어진 방사능과 암, 그리고 정신적 상처는 숫자로 헤아리기 어렵다. 주로 민간인이 피해자가 된 원폭 투하는 산 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할 만큼 그 피해가 막심했다. 피폭 직후 사망자 다수가 시신도 남기지 못했고 부상당한 채 살아남은 사람들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숨져갔다. 일본 정부는 생존한 피폭자의 후유증이 후손에게 연결된다는 주장에 대한 역학 조사결과 유전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려 많은 논란이 된 바 있는데 한국 정부가 최근 유전 여부에 대한 조사를 한국인 피폭자를 대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원폭 공격의 정당성이나 그 문제점은 여러 각도에서 접근에서 이뤄졌다. 우선 정치, 군사적인 면에서 미국의 원폭 투하 목적은 일본의 무조건적 항복이었다고 하는 주장이다. 만약 원폭이 사용되지 않고 전쟁이 일본 본토에서 지속되었다면 미군 병사가 1백만 명 이상 사망하고 일본인도 그 이상 사망할 것으로 추정됐다. 독일의 경우 히틀러가 자기 은신처까지 러시아군이 접근할 때까지 독일군의 저항을 독려했고 일본군의 저항도 자살 공격 등 모든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일본본토에서 전쟁이 전개되었을 경우 그 피해는 막심했을 것이란 추정을 피하기 어려웠다.
위와 같은 접근 방식을 뒷받침하는 논거의 하나로 태평양전쟁의 인명 피해를 꼽을 수 있다. 인명 피해를 점검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인데 그 가운데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해서 1945년 8월 일본 항복까지를 그 기간으로 삼을 경우 미국, 영국, 중국 등 연합군 진영의 사망자는 군인 400만 명, 민간이 2600만 명이었고 일본은 군인 250만 명, 민간인 100만 명으로 집계됐다(https://en.wikipedia.org/wiki/Pacific_War#Casualties). 태평양 전쟁으로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전쟁 종식은 빠를수록 좋았다는 것이다.
다른 접근은 미국이 소련의 동북아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원폭을 사용했다는 시각이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 피폭 이후에도 일본은 항복 조건을 수정하지 않았다. 일본 군부는 천황이 절대 군주로 존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입헌군주제를 주장한 미국 측 제안을 받아드리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소련이 8월8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고 그 다음 날 두 번째 원폭이 나가사키에 떨어지면서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다. 미국은 소련이 대일 선전 포고 다음 날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것은 종전을 앞당겨 소련의 동북아 진출을 압박하려는 계산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유럽에서 독일을 점령하는 등 위세를 과시한데 이어 극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심히 우려하고 있었다. 미국의 이런 조바심은 태평양전쟁 종전이후 미군이 일본을 우군으로 만들기 위해 전범처리 등을 약하게 하는 방식으로 노력했고, 남한에 점령군으로 진주해 친일청산을 차단하면서 친사회주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노력을 강화한 것에서 확인된다. 즉 소련의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크게 의식한 것이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를 결정했다는 추정이 가장 큰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은 소련이 만주를 더 많이 점령할 기회를 차단하기 위해 종전을 서둘렀다는 것이다(가디언 2020년 8월 4일).
미국의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작전에 직접 참가했던 군인들의 경우 인류 역사상 최초의 핵무기를 직접 적진에 떨어뜨려 막대한 인명 피해 등이 발생하고 종전으로 연결된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경우 두 케이스로 대별된다.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고 한 사례와 반대로 자랑스러웠다고 밝힌 사례가 그것이다. 대 표적인 두 사례는 다음과 같다.
미국이 두 개의 원폭을 투하하는데 동원된 B- 29 폭격기에 편대에 탐승한 병력이 90 여 명 가운데 1명인 클라우드 이덜리 소령은 원폭 투하 당시 기상관측 담당이었는데 자신의 행위로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받아 전후에 예편한 뒤 반핵운동을 벌였다. 그는 히로시마 기상상태가 원폭 투하에 가능한지 여부를 살피는 기상관측기의 파일럿 이었고 직접 원자탄을 투하하지는 않았다 해도 괴롭다고 술회했다. 그는 히로시마 피폭자들에게 서한을 보내 자신이 명령을 받고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했지만 그것에 죄의식을 느끼고 있으며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썼다(뉴욕타임즈 2020년 7월15일).
한편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B-29폭격기인 에놀라게이를 조종했던 폴 티베츠 준장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몰고 간 14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던 비행기는 5톤짜리 폭탄인 리틀 보이를 투하했다. 그는 자신의 임무로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전후 60여 년 간 후회 없이 평생 편안한 밤을 보냈다며 자신의 역할을 자랑스러워했다. 미국이 나가사키에 두 번째 핵폭탄을 투하했으며 이 임무에는 티베츠는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면 오늘날 지구촌 국가들의 핵무기 보유와 그 파괴력은 어느 수준인가? 미국과 러시아는 현재 1만4천여 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전 세계의 모든 핵무기의 90%가 넘는다. 미국이 6185개, 러시아가 6490개를 각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은 215개, 프랑스 290개, 중국 300~320개, 인도 150개, 파키스탄 160개, 이스라엘 90개, 북한 30~40개 등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내년 2월까지 신 전략무기협상 기간이 만료되기 때문에 그 연장 등에 합의해야 하는데 두 나라는 군비확충을 공언하고 있어 그 전망이 밝지 않다(로이터통신 2020년 8월4일). 러시아는 2018년 핵을 장착한 수중 발사체를 개발했다고 발표했고 미국은 2020년 핵무기 개발에 500억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최근 중국에게 핵무기 감축을 제안했지만 중국은 미국이 중국 수준으로 핵무기를 감축해야 협상에 응하겠다고 답변했다.
냉전시대에 핵무기 제조 경쟁을 벌이던 미국과 소련이 그 감축에 합의한 것은 핵전쟁으로는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인정한 결과였다. 로널드 레이건,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1985년 전략무기감축 협상을 타결 지을 때 ‘핵전쟁에서 승자는 있을 수 없고 핵전쟁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된다’고 말했었다. 두 나라는 1980년 중반을 정점으로 핵무기 감축합의에 따라 핵무기 비축량을 85% 감축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세계 9개 국가가 부유한 핵무기는 기후변화와 코로나 19와 같은 생물학적 요인과 함께 인류의 미를 위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21세기에 전면 핵전쟁이 발생할 경우 그 피해는 인류 멸망을 초래할 만큼 지독하다. 피폭 직후 수 억 명이 사망하고 핵폭발로 생긴 연기가 태양빛을 차단하면서 생기는 핵겨울이 수년간 지속되면서 수 십 억 명이 굶어죽어 인류 멸망의 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이 같은 비극적 결과는 도덕적 관점에서 고려해야 할 최우선적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즉 지구상에 존재하던 인류가 사망하는 것과 동시에 미래에 태어났어야 할 수십, 수백 억 명의 인류가 지상에 존재할 수 없게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BBC 2020년 8월4일).
특히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핵 문제는 한민족에게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북한은 2017년 리틀 보이보다 6배 강한 약 100kt의 기폭장치를 지하에서 폭발시켰다. 오늘날 핵무기는 기술은 계속 개량되고 있어 어떤 국가, 심지어 국가가 아닌 단체 수준이라 해도 비밀리에 핵무기 제조를 시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한에서도 북 핵에 대응해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강대 강으로 맞서자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현실을 넓게 살피면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 상황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관련 기사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미국의 군사전문 랜드연구소는 6일 ‘북한의 재래식 포: 보복, 강압, 억제, 또는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수단’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비무장지대(DMZ)에 전진 배치된 북한 재래식 포대의 기습공격으로도 1시간 만에 서울에서 13만 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미국의소리 방송 2020년 8월8일).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 가능성을 지적한 최근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보고서와 관련해, 미국은 이미 북한이 핵무기 소형화 역량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핵무기 역량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 수준과 관련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미국의소리 방송 2020년 8월5일).
북한의 대남 재래식 공격력에 대해 남한도 비슷한 수준의 대응력을 갖추고 있다고 할 때 한반도에서 재래식 전쟁만 난다 해도 75년 전 일본에 떨어진 두 개의 핵폭탄에 의한 피해 못지 않는 인명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거기다 북한의 핵무기와 관련해 (미국, 북한 누가 먼저 쏘던 간에) 한반도가 핵전장이 될 경우 금수강산은 후손들이 살아갈 수 없는 폐허가 된다. 이런 무서운 상황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해답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통해 북한의 핵,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등이 폐기되어야 하는 것이다. 남북이 모두 전쟁과 핵의 공포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정치권, 언론, 학계, 시민사회단체 등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지금, 절박한 상황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