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 재난에도 수어통역 보도는 제로였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농인들에게 손을 활용하는 수어는 곧 모어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5월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차별 진정을 받아들여 지상파 3사에게 저녁종합뉴스의 수어통역 제공을 권고하였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에는 지상파 방송의 수어통역 의무비율을 높일 것도 요구했습니다. 농인들에게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도 지상파 3사는 저녁종합뉴스에서 여전히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7월 말부터 시작된 장마가 지속되며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재난으로 이어지고 있음에도 지상파 3사는 관련 재난방송에서도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상파 3사뿐 아니라 종편, 보도전문채널에서도 수어통역 방송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8개 방송사 저녁종합뉴스 수어통역 ‘제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상당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며 집중호우 관련한 내용이 재난보도로 다뤄지기 시작한 8월1일부터 8월9일까지 지상파 3사, 종편 4사, 보도전문채널 YTN 등 8개 방송사 저녁종합뉴스를 확인한 결과 수어통역을 진행한 방송사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8개 방송사들은 9일간 저녁종합뉴스에서 약 850건에 가까운 보도를 방송했지만, 한 건의 보도에서도 수어통역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농인의 입장에서는 어느 방송사의 저녁종합뉴스를 보더라도 집중호우와 관련된 정보를 수어로 전달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재난보도 수어통역 지적 받고도 지키지 않는 방송사들
재난보도에서 수어통역의 필요성은 올해 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미 지적한 바 있습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당시 정부의 코로나19 공식 브리핑을 중계하는 MBC, SBS, YTN 등 일부 방송사들이 수어통역사를 화면에 담지 않자 문제를 개선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최 위원장은 “수어통역은 단순히 청각장애인에 대한 편의제공이 아니고, 한국어 대신 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법적 의무”라며 “정부가 제공하는 수어통역이 발표자와 동등한 화면에 잡히도록 촬영과 편집 관행을 즉각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지적 이후 방송사들은 정부의 코로나19 공식 브리핑 중계에서 수어통역사를 화면에 포함해 문제를 개선했지만 재난보도 전체로 확대되지는 못했습니다. 이번 집중호우 보도 사례처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재난보도에서조차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송사들은 수어통역이 보편화되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지적을 제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TV조선, 트로트 프로그램 출연자 홍보하면서 ‘집중호우’ 무시
종편 3사의 6개 시사대담 프로그램의 집중호우 관련 대담을 확인한 결과 TV조선의 구성이 눈에 띄었습니다. 8월3일부터 8월6일까지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이것이 정치다>는 집중호우 관련 대담을 1초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기간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등 호우가 재난으로 이어졌지만 TV조선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무시한 것입니다.
특히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은 8월4일 방송에서 배우 김영옥 씨가 자사 트로트 경연프로그램 <미스터트롯> 출연자 임영웅 씨의 팬이라는 사실을 9분간 방송했습니다. 반면 전날 경기도 평택에서 토사와 옹벽이 공장을 덮쳐 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지는 등의 호우로 인한 피해는 전혀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대담 주제만 놓고 본다면 TV조선은 재난으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보다 자사 프로그램 출연자 홍보를 더 중요시한 셈입니다.
채널A‧MBN은 TV조선과 달리 집중 호우 관련 내용을 시사 대담프로그램에서 다뤘습니다. 하지만 채널A <뉴스TOP10>, MBN <뉴스와이드>, <아침&매일경제>는 저녁종합뉴스와 마찬가지로 집중호우 관련 대담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는 6개 시사대담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85분간 관련 대담에서 모두 수어통역을 진행했습니다.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 유일하게 수어통역 진행
2018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지상파 3사에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후보자 토론 등 선거방송에서 수어통역사를 2인 이상 배치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다수 후보가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토론프로그램에서 수어통역사 1명이 진행하는 통역으로는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농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지상파 3사가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가 종편 3사 6개 시사대담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수어통역을 진행한 점은 높게 평가받아 마땅했지만 아쉬움이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수 출연자가 대담을 진행하는 종편 시사대담 프로그램은 선거 후보자 토론보다 더 많은 발언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대담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수어통역사가 1명보다 많아야 합니다. 그러나 채널A는 4일간 대담에서 수어통역사가 1명만 등장했습니다. 농인의 입장에서 시사대담 프로그램의 내용이 원활하게 전달될 환경으로는 부족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늦었지만 KBS의 변화, 다른 방송사들도 동참하길
KBS는 9월3일부터 저녁종합뉴스 <뉴스9>에서 수어통역을 진행하겠다고 8월10일 밝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이후 3개월만에 이행에 나선 것입니다. 다소 늦었지만 이제라도 공영방송 KBS가 농인들의 시청권 보장에 나선 점은 박수 받을 일입니다. 그동안 비장애인의 시청권 침해와 재정적 이유를 들어 수어통역을 하지 않던 태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KBS가 시작한 수어통역이 MBC, SBS를 비롯한 다른 방송사들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모니터 대상 : 2020년 8월1~9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뉴스9>(평일)/<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YTN <뉴스나이트>, 2020년 8월3~6일 TV조선 <보도본부핫라인><이것이정치다>, 채널A <김진의돌직구쇼><뉴스TOP10>, MBN <뉴스와이드><아침&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