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언론은 수달에게 부끄럽지도 않나
난데없이 ‘수달’이다.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4월22일 ‘병들었던 하천에 수달이 돌아왔다…13년간 삼성의 오산천 살리기’란 제목의 기사에서 “삼성전자가 2007년부터 지역 하천인 오산천 살리기에 나선 지 13년 만에 수질이 대폭 개선돼 천연기념물인 수달까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며 “경기 용인의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으로부터 대량의 물이 유입되는 오산천에서 천연기념물 수달이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물론 삼성의 주장일 뿐이다. 곽상욱 오산시장은 지난 2월16일 서울경제와 인터뷰에서 “지난해 오산천에 수달이 돌아왔을 때 오산시민 모두가 기뻐했다”면서 “지난 10년간 모두가 오산천을 살리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고 말했다. 수달은 이미 작년부터 오산천에 등장했다. 당연하게도 수달의 등장은 삼성전자만의 ‘작품’이 아니다. 하지만 언론은 ‘삼성전자 뉴스룸’ 유튜브 영상 캡처 화면을 소개하며 ‘삼성전자 작품’처럼 띄워줬다.
‘삼성전자’와 ‘수달’을 동시 검색했을 때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되는 기사는 16일 현재 150건이다. 한국경제는 “삼성전자는 오산천 수량을 늘리기 위해 하루 평균 4만5000톤을 방류했다. 더러운 물을 쏟아낸 게 아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사용한 물은 국가에서 정한 수질 기준보다 엄격하게 정화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조선일보는 지난 7월29일 ‘삼성에 이어 SK하이닉스 방류천에도 수달 발견’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SK하이닉스가 반도체 공정에 사용했던 방류수를 내보내는 이천 죽당천에 천연기념물 수달이 발견됐다. 그만큼 물이 깨끗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최근 반도체 업체들은 방류수의 수질 개선을 위해 다양한 정화시설을 갖추며 물관리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수달이 반도체공장 주변만 찾아다니나 싶다.
아시아투데이는 지난 7일 기자수첩에서 “반도체 등 화학물질 공장의 경우 주민들 반대가 조금만 거세지면 규제 담당 공무원들이나 지방자치단체들은 기업체에 해결을 떠넘겨버리는 경향이 심하다”며 “대한민국의 명운은 반도체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반도체공장 하나 짓기가 어렵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수달 관련 영상은 재밋거리가 아니다. 산업경쟁의 기로 속에 서 있는 대한민국 기업의 절박한 호소”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보도행태는 ‘삼성에 기운 언론’의 전형을 보여준다.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일했던 반도체 노동자 황유미씨가 젊은 나이에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이후 반도체 노동자들의 희귀암 사례가 쏟아졌지만 삼성은 끝까지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고, 많은 언론이 노동자들의 눈물을 외면했다. “공장 안의 직업병 문제를 공장 밖에 수달로 세탁하려 하다니...” 반도체 노동자와 함께 싸우는 임자운 변호사의 촌평이다.
삼성전자는 자신들의 생산 공정에서 유해물질이 사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입증할 정보를 노동자 측에 제공하지 않았다. 바스쿠트 툰작 유엔 특별보고관은 2016년 33차 유엔인권이사회 ‘유해물질 및 폐기물 처리 관련 인권특별보고관 방한보고서’에서 “노동자들이 독성화학물질의 영향에 대한 효과적인 구제를 받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인과 관계를 충분히 증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며 삼성전자를 비판했다. 당시 한국 언론은 오히려 유엔이 삼성전자의 직업병 문제 해결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왜곡 보도를 쏟아냈다.
지난 4월21일, 황유미씨가 숨진 지 13년 만에 그녀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삼성 쪽으로부터 첫 개별 사과편지를 받았다. 황씨는 한겨레에 “사과한다고 했는데 어떤 유해인자 때문인지 그 성분과 노동자 사망과의 인과 관계가 무엇인지 또 산업안전 관리 소홀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어떤 것인지 등 구체적 언급이 없다”며 사과의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그리고 유미씨가 일했던 기흥공장 주변에서 수달이 발견됐다는 기사는 황씨가 편지를 받은 다음 날인 4월22일 처음 등장했다. 우연이었다고 믿고 싶다.
“과거 반도체공장은 반올림 직업병 사건 등으로 님비(기피)시설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수달이 돌아온 만큼 완전히 깨끗한 이미지를 심을 수 있게 된 것”(파이낸셜뉴스)이라고 보도하는 이유는 알고 있다. 쓰겠다면, 공장 주변의 방사능오염 가능성과 지금도 공장 안에 있을 반도체 노동자들의 피폭 여부도 감시해주길 바란다. 반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 피해 규모는 여전히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기사를 쓰고 있는 당신의 지인도 피해자일 수 있다.
한국수달연구센터에 따르면 수달은 2급수, 3급수 물에서도 산다. 서식에 가장 중요한 조건은 ‘풍부한 먹이’다. 수달의 자기 영역은 10~15km로, 강이나 특정 하천을 끼고 하루에 50km 이상, 때로는 100km를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본류에 있다 도심하천까지도 내려온다. 지난 3월 전북 전주 도심에서, 지난 7월 부산 금정구 이마트 부근 하천 등에서 수달이 목격됐다. 지역사회 노력으로 수달이 돌아왔다면 반가운 소식이지만, 수달의 등장만으로 반도체공장의 직업병 문제가 마치 끝난것처럼 띄워주는 건 비약이 심하다. 물론 수달은 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