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장기화에 차별금지법 필요
코로나19 감염 국면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보편적 차별금지법 필요성이 커진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왔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는 지난 7일 서울 구로구 한국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열린 ‘2020 다가치포럼 토론회’에서 “코로나19 시국에서 정치권과 언론, 일상에서 벌어진 외국인 차별과 폭력이 제도 영역으로 옮기 이르렀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경통제와 경기침체로 상황은 더 안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보편적 차별금지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첫 확진자가 발견된 뒤 국내 정치권과 언론이 질병 발생 책임을 외부에 돌리며 이주민 혐오를 퍼뜨렸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사회적 영향력이 큰 정치인들이 언론에 공개되는 공적 영역에서 ‘우한폐렴’ ‘중국폐렴’ 등 혐오 표현을 반복했고, 이는 코로나19와 아무 관계없는 ‘국내 체류 중인 중국인에 대한 추방’이나 ‘외국인에 대한 국경봉쇄’와 같은 주장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조 변호사는 “코로나19 확산 초기 일부 언론은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서울 대림동을 찾아 다른 지역 전통시장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위생 불량 심각’으로 표현했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마스크 착용률이 낮았다’ 등 추정 보도로 중국인에 부정적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가 4·16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마련한 ‘재난보도준칙’은 급성 감염병이나 인수공통전염병 관련 보도 시 ‘확인되지 않거나 불확실한 정보의 보도는 자제’하고(13조), ‘선정적 보도나 감정적 표현을 자제’하도록(15·16조) 한다.
조 변호사는 “더욱 심각한 것은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편견이 객관적이고 공평해야 할 제도의 영역(사회안전망)으로까지 옮겨갔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감염병 대응을 위한 대다수 사회안전망과 방역정책에서 외국인 차별 문제가 드러났다.
역내 감염 등 필수 정보를 알리는 긴급재난문자는 한국어로만 전달돼 외국인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한국관광공사와 행정안전부가 번역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방역당국의 ‘손 씻기 요령’, ‘사회적 거리두기 행동지침’, ‘공적 마스크 구입안내’ 등 정보도 마찬가지다. 조 변호사는 “사회적으로 주거환경이나 노동환경이 전염병에 취약한 조건인 경우가 많은 외국인 집단에게 정보제공 결핍은 이들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고 했다.
정부공급 ‘공적마스크’도 외국인에게만 신분증 외에 건강보험증을 의무 제시하도록 해 난민 신청자와 미등록 외국인, 직장가입자로 가입하지 못한 이주노동자, 건강보험료 일시 체납 외국인 등 취약 이주민들은 접근하지 못했다. 외국인들은 안산‧부천 등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고는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조 변호사는 “등록 외국인은 내국인과 동일하게 주민세를 비롯한 각종 직·간접세를 낸다. 생활관계도 주거지에 있어 지급대상에서 배제할 근거가 전혀 없다”며 “해외 어느 나라도 국적을 이유로 재난지원금 지급대상을 제한하는 사례는 없고 독일은 사업자 등록이 된 외국인에게도 현금을 직접 지급한다”고 했다.
전망은 더 나쁘다. 코로나 대응 정책으로 국경통제가 강화하고, 국경을 넘나드는 이주가 제한돼 개인 피로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코로나로 인한 사회‧경제 피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내부 희생양 찾기는 더 활발해질 우려가 크다는 것.
조 변호사는 “중요한 것은 부당한 차별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다. 차별이 위축시키는 소수자 집단에 대한 제도적 보호”라며 “코로나19 이후 사회의 새로운 상식으로 올해는 반드시 국회에서 논의 중인 보편적 차별금지법 통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변호사는 “현행 국내 법제도에 외국인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법률이 없다. 피해자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침해 진정 또는 차별시정 제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며 “사회 전 영역에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외국인 주민들도 우리사회 평등한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새로운 시대 규범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