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성노동자에게도 인터넷은 평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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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성노동자에게도 인터넷은 평등한가

온라인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정의로운, 나아가 안전한 공간일까. 소수자들이 온라인에서도 혐오 대상이 되고, 자신의 공간을 빼앗기는 일을 막기 위해 정부당국과 인터넷포털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왔다. 21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에서 ‘인터넷은 모두에게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인가’를 주제로 워크샵이 열렸다.

한국 사회 소수자들은 10명 중 8명, 9명 꼴로 온라인 혐오표현에 노출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성소수자 94.6%, 여성 83.7%, 장애인 79.5%, 이주민 42.1%가 온라인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혐오표현을 접했다고 발표(2017년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한 바 있다. 이들 중 과반은 혐오표현을 겪은 온라인 공간을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성소수자 혐오는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2000년대 초반부터 ‘보수 개신교계’로 일컬어지는 집단이 차별금지법 반대를 위한 실력행사를 하며 성소수자 혐오를 일삼는 일은 대중에도 많이 알려져왔다. 사회적 소수자로 여겨지는 집단에 의해 성소수자의 존재가 배척되는 사례들도 있다. 2018년 불법촬영에 대한 편향된 수사를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에 ‘생물학적 여성’만 참가하도록 한 일, 올해 초 트랜스젠더 여성의 숙명여대 입학을 둘러싸고 불거진 논란 등이다.

▲ 21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에서 ‘인터넷은 모두에게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인가’를 주제로 워크샵이 열렸다.▲ 21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에서 ‘인터넷은 모두에게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인가’를 주제로 워크샵이 열렸다.

성소수자단체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이승현 이사장은 “반동성애 혐오표현에서 트랜스젠더는 부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여성운동 진영에서 공격이 이뤄지면서 ‘생물학적 성별’ 주의로 회귀하는 모습들이 보이게 된다”며 “염색체를 봐야 한다거나 여성이 가진 경험 자체가 삭제된 상태에서 생물학적 염색체만 강조하는 것은 과거 법원이 트랜스젠더를 보던 시각과 비슷하다”고 꼬집었다.

이 이사장은 “온라인에서 ‘나는 고양이라고 생각하면 고양이가 될 수 있으니까 트랜스고양이다’라는 발언도 유행처럼 퍼졌다”며 “근본적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가 전이된, 조롱하는 글들을 인터넷이나 각종 SNS에서볼 수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성노동자 인권단체 ‘주홍빛연대차차’의 왹비 활동가는 과거 본인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2차 가해를 당한 경험을 공유했다. 성노동자라는 이유로 성폭력 피해자가 조롱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반성폭력 반성매매’ 운동을 하는 이들이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피해 사실을 끌어다 썼다는 데 분노했다. 

왹비는 “성노동자는 말할 수 없는 존재로서 여성주의 운동에서 존재해야 한다. 남성사회에서는 ‘문란하게 몸 팔아 쉽게 돈 버는 범죄자’고, 여성운동 안에서는 ‘착취 당하는 피해자’다. 어느 곳에서도 언어를 가진 주체로 구현될 수 없다”며 “‘사이버 불링’을 당하면 떠나는 사람은 제 자신이 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의사소통하고 관계 맺는 소중한 공간을 버려야 할 때가 돌아온다. 디지털공간에서 소수자가 말하는 행위가 안전해지기 위해 어떤 논의를 나눠보고 싶다”고 밝혔다.

왹비는 “저는 여성주의 운동 중에서 ‘더 이상 단 한명도 잃을 수 없다’는 슬로건을 좋아한다. 단 한명도 잃을 수 없다는 건, 단 한명도 배제하고 고립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파이싸움’이 부른 배제주의적 페미니즘을 직시하고 여성주의 진영에서 주변화된 목소리를 더 많이 들어야 한다. 배제를 통해 ‘단일한 여성’의 페미니즘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꺾고 주변화된 존재를 공동체 일원으로 존중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 성노동자 인권단체 ‘주홍빛연대차차’ 왹비 활동가의 발제문 일부. 출처=주홍빛차차 트위터▲ 성노동자 인권단체 ‘주홍빛연대차차’ 왹비 활동가의 발제문 일부. 출처=주홍빛차차 트위터

이를 들은 이승현 이사장은 “가부장적인 규범 안에서 소외되는 여러 주체들 중에서 누가 조금 더 빠르게 안전한 곳으로, 단기적으로라도 일단 먼저 안전한 곳으로 내가 먼저 가겠다고 할 때 쉽게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일단 우리부터 안전한 곳으로 가고 그 외에 다른 소외된 주체들을 향해 ‘나중에 알아서 오든가’라는 식이 되는 현상들이 있다”며 “그런 지점에서 결국 경험을 공유하고 접점을 만들기 쉬운 소수자 연대가 있어야 하고 나아가 모든 시민의 연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소수자에게도 평등하고 안전한 인터넷 환경을 위해서는 정부당국과 더불어 온라인 포털의 사회적 책임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영택 국가인권위원회 혐오차별대응기획단 사무관은 이날 “포털이 혐오표현의 명확한 정의를 바탕으로 규제 기준을 마련하고 커뮤니티 정책에 반영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정부당국이나 온라인포털의 규제는 혐오표현에 역사적으로 차별받은 대상에 대한 편견이 담겼다는 것을 충분히 포함하지 못한다. 미러링 등 혐오표현에 대한 대항 표현도 규제되고 있다”며 “연대 정신을 살려 혐오표현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 차원에서는 조만간 발표될 트랜스젠더 대상 혐오차별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정책적인 제도개선 과제를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오 사무관은 덧붙여 “혐오표현 정의와 규제를 위한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정부가 혐오표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인권위는 정부 대응을 견인하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지난 6월말 인권위가 국회에 시안을 제시한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도 촉구했다. 차별 유형인 ‘괴롭힘’에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 멸시·모욕·위협 등 부정적 관념 표시나 선동 등을 포함하는 내용이다. 오 사무관은 “이 법안이 통과돼 향후 정부가 혐오표현에 대응하는 기준이 되고, 인권위가 혐오표현 조사에 착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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