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표 계산에 차별금지법 10년 외면, 책임 알라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을 전국에 알리고자 지난 13일간 26개 도시를 방문한 ‘전국순회 차별금지법제정촉구 평등버스’(이하 평등버스) 활동가들이 순회를 끝내며 “국회는 더이상 침묵 말고 차별금지법을 즉각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활동을 주도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9일 오후 2시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등버스는 지역에서 만난 다양한 시민들의 평등을 향한 열망과 연대의 마음을 실어왔다. 이제 이 마음들을 국회로 보낸다”며 연내 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지난 17일 국회 앞 기자회견으로 평등버스를 시작해 29일까지 청주, 세종, 대구, 부산, 여수 등 26개 도시를 방문했다. 주행거리만 약 2000km다.
제정연대는 “원주에선 성소수자 자녀를 둔 어머니가 차별금지법 필요성을 이야기했고, 전주에서는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처음으로 커밍아웃한 발언자도 있었다”며 “각 지역이 간직한 고유의 차별 경험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지역 비하 표현들을 듣곤 하는 강원과 충청, TK 지역에 대한 반감을 대표적으로 겪는 대구, 5·18 아픔을 겪은 광주, 4·3 아픔과 강정마을 상처를 간직한 제주, 다양한 지역에서 만나는 차별 경험은 다르면서도 닮았음을 확인했다”고도 밝혔다.
제정연대는 특히 “코로나19 재난이 우리 사회 차별 구조를 그대로 보여주고 강화한다”고 설명한 뒤 “대면 접촉이 많은 보건의료서비스업에 대다수 여성이 종사하는 현실, 제대로 된 보호장구 없이 일해야 하고 또 실직 위기에 내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청도대남병원 등 장애인 수용시설에서의 참사, 가족돌봄지원 제도를 이용할 수 없는 동성커플, 재난기본소득에서 배제되는 이주민” 등을 사례로 언급했다.
평등버스에 탔던 다니주누 부산성소수자인권모임QIP 대표도 소수자 당사자로서 법 제정을 역설했다. 다니주누 대표는 “저는 비수도권 지역 출신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이며, 성소수자이고 HIV 감염인 당사자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경멸스러운 존재로 그려지는 저는 오랜 시간동안 차별을 받아왔고 혐오 공격에 노출돼 왔다”며 운을 뗐다.
그는 “왜 그런 말(차별 금지 주장 등)을 해서 굳이 일을 만드냐,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괜찮지 않냐며 제 입을 막고 제가 잘못한 것으로 몰아간다”며 “하지만 저는 목소리를 내고 싶다. 제가 잘못된 존재, 부정 당하는 존재로 살아가기 원치 않기 때문이며 내 존재를 밝히는 건 잘못된 것도, 미움받을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반대자들과 수많은 정치인들은 오늘도 어디선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누구나 처벌할 수 있고,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억압된다’고 말할 것”이라며 “차별금지법은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차별을 차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법, 차별 경험을 더 이상 개인 잘못으로 인한 경험으로 몰지 않고 사회적 문제로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법,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법”이라고 반박했다.
“혐오 세력 방조, 소수자 외면… 집권 세력 책임 커”
21대 정기국회는 내달 1일 개원한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의원 10명이 지난 6월29일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6월30일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 시안을 공개하며 국회 발의를 예정했다.
장혜영 의원은 회견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생존과 평등을 위한 최소한의 마스크와 같은 것”이라며 “곧 정기국회가 시작되고 국감도 있다. 올해 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우리가 정말로 생존과 평등에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공감할 수 있다면 충분히, 올해 안에 차별금지법을 입법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현장에선 집권 여당 책임론이 터져나왔다. 이종걸 ‘친구사이’ 사무국장은 “2007년 ‘차별조장법’을 발의했던 민주당 세력들이 10여년 동안 차별금지법 제정 유예시킨 역사의 주역”이라며 “정권을 잡기 위해 표 계산 하는 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을 회피했던 역사가 차별 구조를 더 공고히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혐오선동 세력으로 인해 고통받는 소수자 현실을 외면한 것은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 책임 가장 크다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차별조장법’은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차별금지법을 칭한다. 정부안엔 인권위 권고안에 담긴 ‘성적 지향’, ‘학력’, ‘고용 형태’ 등이 차별 사유에서 삭제됐다. UN은 2007년부터 2017년까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정부에 9차례 권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출마 당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했으나 2017년 대선 땐 공약에서 제외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발언은 연이어 구설수에 올랐다. 민주당 원내부대표인 김회재 의원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한다며 이달 개신교 단체와 관련 토론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김두관 의원도 지난 7월 경남지역 종교인들을 만나 ‘성적지향’ 개념과 관련해 “법안에 양성애까지 들어있는데, 이성애자 입장에서 이해를 못하는 내용”이라며 처벌 조항을 “해소가 필요한 독소조항”이라고 밝혔다.
평등버스 단장 지오 활동가는 “(순회 중)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는 어느 때보다 강력한 외침이 한 목소리로 울렸다”며 “180석 거대 여당 민주당이 침묵하는 동안 당내 의원이 반대토론회를 개최해 혐오에 힘을 싣는 일이 버젓이 일어난다. 혐오하는 이들이 난립하는 이 시대 책임을 민주당과 국회, 이 정부는 반드시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걸 사무국장은 “제정연대는 지난 7월 이후부터 연내 제정을 목표로 진행한 집중 행동을 하반기에도 계속 이어갈 계획”이라며 “국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본격 논의를 하도록 요구하고 압박할 것”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