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의료협력 법안이 의사 강제 북송법으로 둔갑
의사 출신의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북한에 재난이 발생했을 때 보건의료인력과 의료장비, 의약품 등의 긴급 지원을 가능케 하는 ‘남북 보건의료의 교류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평소였다면 논란이 될 이유가 없는 법안이었지만 의사 파업 국면에서 언론이 맥락을 악의적으로 왜곡해 정부 비판여론을 키우려 했다는 비판이 가능한 상황이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31일 ‘“유사시 北에 남한 의사 파견한다” 발칵 뒤집은 민주당 법안’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여당이 유사시 의료인들을 북한에 차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추진한다’는 주장이 30일 입시정보사이트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기돼 논란을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 의사들이 의사증원에 반대하며 파업에 나서자 마치 여당이 보복성으로 법을 추진하고 있다는 뉘앙스다.
실제로 해당 중앙일보 기사에는 “의사들이 봉이냐. 국민도 공공의대 설립 반대한다”, “현정부 반대하는 기존 의사들은 북송시키나”, “파업할 만 하다니까” “의대생 정원 늘리려는 이유가 있었네”와 같은 댓글이 달렸다. 입시정보사이트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기된 논란을 검증하지 않고 ‘중계’한 결과다. 하지만 신 의원은 해당 법안을 지난 7월2일 대표 발의했다. 정부여당이 공공 의대 설립방안을 내놓으며 의사들이 파업에 돌입한 시기와 비교하면 한참 전이다.
신 의원의 법안은 최근의 정부와 의료계 갈등과 아무 관련이 없다. 신 의원은 해당 법안에서 “열악한 북한의 보건의료체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인도주의적 협력체계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며 “정부는 남한 또는 북한에 보건의료 분야 지원이 필요한 재난이 발생할 경우 남한과 북한의 공동 대응 및 보건의료인력·의료장비·의약품 등의 긴급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북한에 재난이 발생한 경우 재난 구조·구호 활동을 하는 단체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지원 또는 지도·감독을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 같은 조항은 17대 국회에서 안명옥 의원(한나라당), 19대 국회에서 정의화 의원(미래통합당), 20대 국회에서 윤종필 의원(미래통합당)이 각각 발의했던 ‘남북 보건의료의 교류협력 증진법안’에도 똑같이 들어있는 조항이다. 당연하게도 당시에는 의사를 북한에 강제로 보낸다는 식의 허무맹랑한 논란은 없었다. 신 의원 법안 어디에도 의사를 북한에 강제 차출한다는 규정은 없다. 그런데 해당 법안이 발의되고 두 달여가 지나서 갑자기 언론의 프레임에 의해 논란으로 규정됐다.
중앙일보는 황운하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을 끌어와 황 의원 개정안에 따르면 재난 상황에 의사를 필요인력으로 지정해 운용할 수 있다며 “현재 논란이 되는 부분은 두 법을 활용해 의료인을 강제로 북한에 보낼 수 있다는 주장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어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 근무하면 개인 의견 없이 파견되는 것 아니냐” “적국에 의사 보내주는 나라도 있냐”는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후 매일경제는 ‘北 유사시 정부가 한국 의사 징발한다? 與 신현영 법안 논란’, 국민일보는 ‘남한 의사를 北강제파견? 민주당 남북교류법에 술렁’, 한국경제는 ‘北재난 발생하면 한국 의사 투입? 與 법안에 의료계 반발’, 조선비즈는 ‘“아오지 탄광 보낼 건가”…與, 유사시 北에 의사 동원 법안 추진 논란’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냈다. 뉴데일리는 ‘의사들 분노에 기름 부은…민주당 신현영의 의료인 강제 북송법’이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중앙일보 등이 문제 삼은 황운하 의원의 개정안은 지난달 24일 등장했다. “재난관리자원이 물적 자원으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구제역, 메르스, 코로나19와 같이 의료인력 등 인적자원이 절실히 필요해도 이러한 인적자원을 재난 발생 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며 재난 시 효율적 대응을 위해 개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해당 법안은 의사 파업에 따른 대응 법안으로 볼 수 있다. 바꿔 말해 해당 개정안은 의사들이 파업에 나서도 재난 상황을 대처하기 위한 의사를 병원에 붙잡아두기 위한 법안이지, 북한에 재난이 발생했을 때 북한에 의사를 보내기 위해 만든 법안이 아니란 의미다.
신현영 의원은 1일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자신의 법안과 관련, “강제성을 가지고 의료인력을 북한에 파견하기 위한 법안이 아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나갈 뜻이 있는 의료진이 있다면, 자발적인 참여를 정부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가 법안에 담겼다”면서 “더이상 법안이 왜곡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같은 법안을 미래통합당 의원이 발의했다면 기사화될 수 있었을까. 언론은 의사 파업 국면에서 의사-정부 간 첨예한 갈등에 기름을 붓기 위해 ‘없는 논란’도 제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