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당대표 선거, 박창진이 주목받는 5가지 이유
정의당은 총선 후 오는 2021년 7월인 심상정 대표 임기를 1년 가량 줄이고 혁신위원회를 출범하며 당 혁신에 돌입했다. 혁신의 완성 격인 당대표 선거운동 초반 박창진 후보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10일 후보 등록을 마친 당대표 후보(가나다 순)로는 김종민 부대표, 김종철 선임대변인, 박창진 갑질근절특별위원장, 배진교 원내대표 등 4명이 등록했다.
인지도 높은 후보
박 후보는 존재 자체로 주목을 받는 인물이다. 2014년 ‘땅콩 회항’ 사건의 내부 고발자로 대한항공과 소송전을 벌여 국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고 대한항공직원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재벌가 갑질을 문제 삼았다. 2017년 6월 정의당에 입당했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으로 당선되는 등 노동운동가 길을 걸었다.
지난 총선에서는 남자 후보 중 배진교, 신장식 후보에 이어 3등을 해 당내 지지세도 강한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신 후보가 사퇴하면서 비례대표 6순위까지 올랐지만 5명이 당선되면서 아쉽게 낙선했다. 포스트 심상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나 당 개혁을 위해 새 인물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혁신위 비판 행보
‘혁신없는 혁신위 아니냐’는 논란 속에 정의당 혁신위는 호응을 얻지 못했다. 특히 같은 기간 국민의힘(옛 미래통합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개혁 이미지를 보이며 지지율 성장세를 그렸다. 정의당 혁신위의 소극적 모습과 대비됐다.
이런 상황에서 박 후보는 혁신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조기 당대표 선거 출마를 알리며 “총선에서 당이 커지길 기대했으나 요동치는 선거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혁신위가 구성됐으나 정확한 혁신 목표를 설정하지 못하고, 최종안은 너무 많은 부족함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박 후보가 현재 당 지도부나 혁신위원이 아닌 만큼 총선에 대한 냉정한 평가, 혁신위에 대한 아쉬움을 잘 지적할 수 있다는 건 그의 강점이다. 박 후보는 “수천 명 탈당 사태 원인도, 떨어지는 국민 지지를 회복할 방안도 명쾌하게 제시하지 못했다”고 진단하며 “정의당 혁신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지지 않고 새로운 에너지가 되려면 정의당은 과감한 변화의 신호를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파업 관련 발언 논란
후보 등록 완료 다음날인 지난 11일 박 후보는 TBS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의사들의 집단 진료거부 사건에 “저 역시 어떤 불의에 대해 저항했던 적이 있는데 저는 한 번도 파업이나 회사 점거 같은 걸 통해 제 의지를 관철했던 것이 아니다. 많은 국민 공감과 지지를 얻어서 가능했던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곧장 타 후보들이 해당 발언을 비판했다. 김종철 후보는 페이스북에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이자 노동자가 사용자 등 권력층에 저항할 때 행사하는 마지막 수단”이라며 “본질을 정확히 지적하지 못하고 의사 파업과 노동자의 단체행동을 결부시켜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에 부정적 이미지를 씌웠다”고 비판했다.
김종민 후보 역시 페이스북에 “박 후보 발언은 노동자 파업권을 부정하는 당론 위반 발언”이라며 “당대표 후보자로서 파업권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표출하는 것에 아연실색한다”고 비판했다.
이날 오후 박 후보는 “명분없는 의사들의 집단 행동은 국민들 공감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는데 오해될 수 있는 발언이 있었다”며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후 노동운동에 오랫동안 매진한 하종강 성공회대 교수의 박 후보 지지 영상을 SNS에 올리는 등 선거 운동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박 후보는 자신의 발언이 “당론 위반”이라고 비판한 김종민 후보를 향해 “노동자 파업권을 부정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해명 글을 올렸는데도 ‘당론 위반’까지 운운한 건 도가 지나친 일”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공식 토론회도 있기 전 후보들의 첫 설전이 박 후보 발언 으로 벌어진 것이다.
이번 선거는 정의당 혁신위 때부터 불거진 당내 갈등이 제도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이다. 후보간 갈등이 첨예할 수밖에 없다. 특히 대중성에 있어 박 후보가 강점을 보이기 때문에 타 후보들은 박 후보를 ‘준비가 덜 됐다’는 메시지로 비판할 수 있다.
한겨레에 과한(?) 항의
같은 날 박 후보 측(혁신돌풍 공동선본)은 한겨레 보도에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한겨레는 지난 10일 정의당 당대표 선거 소식을 알리는 기사에서 박 후보를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이라고 썼고,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맡았던 천호선씨를 비롯해 참여계 지원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박 후보 측인 혁신돌풍 공동선본의 한창민 대변인은 “박 후보는 단지 ‘대한항공 전 사무장’이 아니라 ‘정의당 갑질근절특별위원장’”이고 “천호선 선대위원장은 창당을 주도하고 당강령·체계·심볼 등 당 기초를 놓은 정의당 전 대표인데 당내 이력을 빼고 ‘노무현 정부 시절 홍보수석을 맡았던 천호선씨’로 작성했다”고 문제 삼았다.
박 후보 측은 성명에서 “타 후보 측은 모두 당직을 거명하면서 박 후보 직함과 천 선대위원장의 당직 직함은 의도적으로 빼 당의 역할이 없거나 타 정당에 가까운 사람인 것처럼 보이도록 쓴 기사”라며 “박 후보 또한 세 후보와 마찬가지로 당내 특정 정피를 기반으로 선거를 치르고 있는 것처럼 읽히는데 매우 의도적”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박 후보 직함 등은 기사에서 일부 수정됐다.
하지만 해당 성명은 큰 공감을 얻지 못했다. 다른 당의 당대표 선거 관련 기사에서도 후보마다 강조하는 이력이 서로 달라 기자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각 후보 입장에서 불리하게 느끼는 경우가 있다. 민주당의 경우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 등 표현까지 등장하며 거대 정당인데도 전당대회가 주목을 받지 못한 현상도 벌어졌다. 또 일반 정치 기사에선 기자 판단으로 유불리는 전망하는 등 다양한 해석이 따라붙는다.
해당 한겨레 기사에는 기자 해석이 거의 담기지 않았기 때문에 박 후보 측이 한겨레 기자 실명까지 거론해 성명을 낸 것이 과하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왔다. 또 박 후보가 ‘참여계’라는 보도는 이미 다른 매체에 보도됐고, 심지어 당대표 선거가 “계파대결 구도”라고 보도한 곳도 있는데 유독 한겨레만 문제 삼아 불필요한 전선을 친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민주당과 관계 설정에 초점
총선 전후 언론은 정의당을 다루며 주로 ‘민주당과의 관계’에 주목했다. 정의당 입장에서 다소 억울한 면도 있지만 이는 정의당이 자초한 면도 있다. 김종철 후보의 13일 연설에서 보듯 민주당과 관계를 명확히 하는 건 중요하지만 이것이 가장 유일한 쟁점은 아니다. 또 민주당과 관계를 설정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언론에 주목을 못 받는 소수 원내정당이 당내 여론을 알리고 비전을 설득하는 데 불리한 현실도 정의당의 과제다.
박 후보가 문제 삼았던 한겨레 보도 제목은 “정의당 대표 ‘4파전’…진보 정체성·민주당 거리두기 쟁점 부상”으로 민주당과 관계를 주요 쟁점으로 봤다. 12일자 SBS “포스트 심상정은 누구?…‘민주당 2중대 극복’”, 같은 날 뉴스1 “정의당 당권주자들 ‘이제 민주당 2중대는 없다’…‘민주당 신기득권’”, 13일자 노컷뉴스 “4파전 정의당 대표 선거…화두는 ‘민주당 2중대’ 벗어나기” 등 다수 매체가 ‘민주당 2중대론’을 기사 제목으로 정했다.
‘민주당 2중대론’이 부각하면서 역시 박 후보가 눈길을 끌었다. 박 후보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에 관해 ‘박 시장을 애도하면서도 해당 사건을 성찰할 수 있었다’고 발언하는 등 세 후보와 톤을 달리했다. 나머지 세 후보가 ‘민주당 2중대’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면 박 후보는 민주당에 대한 무조건적 반대를 우려하는 입장으로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초반 레이스에서 박 후보가 다양한 이유로 관심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유튜브로 진행하는 두차례 토론회, SBS·MBN에서 중계하는 방송 토론회 등을 치러야 한다. 선거운동 기간이 약 10여일 남았다. 토론회에서 보일 비전과 정책, 후보들의 연대(사퇴) 여부, 향후 나타날 실책이나 불리한 과거 이력 등이 변수일 수 있다.
정의당은 오는 23~27일 온라인·ARS 투표를 거쳐 27일 1차 투표 결과를 발표한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내달 5~9일 결선투표를 치르고 당대표를 선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