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수사 CCTV 제보자 고소 논란 일파만파
경찰의 강압수사 정황을 공익제보한 변호사를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해 보복 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해당 변호사가 언론사에 경찰관 신원을 가리지 않고 제보한 점을 문제 삼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을 적용했다. 40여개 시민사회·법조단체는 16일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익제보를 위축시키는 보복행위”라고 비판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 2일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에게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했다. 고양경찰서 수사관 박아무개씨는 앞서 최 변호사가 KBS 제보 과정에서 자신의 얼굴과 음성 등 신원을 가리지 않았다며 그를 형사 고소했다.
최 변호사는 고양경찰서가 2018년 10~11월 이주노동자 D씨를 고양 저유소 풍등 화재 사건 피의자로 조사하면서 강압수사한 정황이 담긴 CCTV 영상을 정보공개 청구로 확보한 뒤 KBS에 제보했다. KBS는 관련 기사를 지난 5월 보도했다. 수사관 얼굴은 흐림처리됐고 목소리는 그대로 나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같은 달 경찰이 D씨에게 4차례 조사에서 자백을 강요하고 언론에 이름과 국적, 나이 등 신원을 공개해 인권 침해했다고 결정문을 냈다.
제보가 공익 목적인 데다 CCTV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이고, 제보자가 언론사에 관련 정보를 밝히는 절차는 일반적인 수순인데도 경찰이 이례적으로 법 위반으로 판단해 언론자유 위축 우려가 인다. 한편 경찰은 박씨가 고소했던 KBS 기자에 대해선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해 보복 수사 비판도 나온다.
장동혁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선임간사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을 보면 공직자의 책임성을 담보하기 위해 직무를 수행한 공직자의 성명과 직위는 개인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고 지적했다.
장 간사는 “경찰의 수사 대상은 오히려 강압수사한 수사관이지, 어떻게 문제 제기한 변호사를 수사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는지 알 수 없다”며 “경찰 스스로 KBS 기자를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면서 최 변호사만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것을 봐도 명백한 보복 의도”라고 했다.
아시아의친구들 김대권 대표는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 초기 경찰이 무리하게 사건과 직접 관계없는 D씨의 국적, 나이, 성별, 근무지를 언론에 유출해 D씨를 포함한 이주민이 겪은 고통을 기억한다. 당시 ‘외국인 노동자가 테러했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취재진이 D씨의 거주지와 근무지에 포진해 감금되듯 생활했다. 그런 경찰이 개인정보 유출을 문제 삼아 최 변호사를 고소했다는 데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조수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총장은 “경찰청장에게 묻고 싶다. 변호사법 1조에 의하면 변호사는 인권 옹호를 사명으로 한다. 강압수사 현장을 목격한 변호사가, 이를 두고 불법행위 자행은 맞지만 경찰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하니 언론에 제보하지 말고 덮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조 사무총장은 “경찰의 기소 의견 송치는 풍등 화재조사 사건에 대한 보복 행위로, 명백한 경찰권 남용”이라며 “최 변호사 제보는 가혹행위를 막기 위한 공익 목적이기에 위법성 없는 정당행위로 무혐의, 무죄라 확신한다.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9일 경찰의 수사 결과에 성명을 내고 “수사 절차상의 문제점을 정당하게 지적한 변호인에 대한 보복성 수사”라며 “피의자에 대한 강압수사를 자행하고, 이를 지적하는 변호인까지 억압하는 경찰이 인권경찰에 해당하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수사관 A씨는 지난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고소인(A씨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 개인정보가 저장된 진술녹화 영상 파일을 KBS에 제공함으로써 개인정보를 누설해 최 변호사를 고소한 것”이라며 “변호사법과 형법에 따라 소송대리인인 변호사는 사건에 대해 비밀을 누설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최 변호사를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면서 변호사법이나 형법 관련 조항을 적용하지는 않았다.
서울지방경찰청 측은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영등포서에서 사실관계와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법리검토를 거쳐 판단한 사안”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