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비판한 장충기 문자 판사, MBC 소송 재판?
언론계가 서울고등법원 민사13부 재판장 교체에 술렁이고 있다.
복수의 언론계·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서울고법 민사13부 재판장이 김용빈 부장판사에서 강민구 부장판사로 교체됐다. 민사13부는 언론 관련 항소심 재판을 총괄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강민구 부장판사는 올해 초 안식년 성격의 연구 기간을 갖는 연구 법관으로 발령받았다가 최근 인사를 통해 재판에 복귀했다. 부산지방법원 법원장 출신으로 당시 인사를 두고 조선일보 등에서 “좌천성”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강민구 부장판사는 ‘장충기 문자’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부산지방법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6년 6월7일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에게 아래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잘 계시지요. 인도 사업장 가 있는 제 막둥이 동생이 김 사장의 억압 분위기를 더 이상 못 견디어 해서 이달 중이나 인수인계 되는대로 사직하라 했습니다. 아직도 벙커식 리더십으로 부하를 통솔하는 김사장이 안타깝습니다. 그동안 진 신세는 가슴에 새깁니다. 강민구 배상.”
이를 두고 친동생의 인사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란다는 취지의 문자라는 비판 보도가 있었다. 강민구 부장판사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형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해서 장충기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동생 일이라 ‘고마운 마음 깊이 새기고 잊지 않겠다’는 과한 표현을 썼다”고 해명한 뒤 “나는 인사청탁을 한 적이 전혀 없고, 향응·접대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앞서 논란의 문자는 MBC ‘스트레이트’에서도 방송됐다.
그런데 현재 MBC ‘스트레이트’와 관련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민사소송이 서울고법 민사13부에 올라가 있다. 2018년 6월3일자 ‘네이버 삼성만 나오면 왜?’라는 방송편이다. MBC에서는 ‘스트레이트’에 좋은 감정을 갖고 있을리 없는 강민구 판사가 재판에 나서는 것이어서 기피신청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판단에 따라 이해당사자가 될 소지도 있어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서다. MBC ‘PD수첩’ 장자연 편을 상대로 한 조선일보 소송 건을 비롯해 뉴스앤조이를 상대로 한 에스더기도운동본부의 소송 등 각종 민감한 언론 소송들이 민사13부의 몫이다.
강민구 부장판사는 SNS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드러내 몇차례 논란의 중심에 선 적도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일본 강제 징용 손해배상 판결과 관련해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양승태 코트에서 선고를 지연하고 있던 것은 박근혜 정부에서 외교적·정책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벌어준 측면이 없지 않다”며 “감정적 민족주의 주장은 듣기에는 달콤하지만, 현실 국제 외교 관계에서는 그런 주장만으로 국익을 지킬 수는 없다”고 지적해 조선일보 등 여러 언론사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8년 10월에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사법 농단 의혹으로 검찰에서 밤샘 조사를 받자 검찰 비판 글을 법원 내부 전산망에 올렸다. 그러자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법 농단 수사에 대한 조직 옹위형 비판”이라는 글과 함께 장충기 문자 사건을 언급했고, 이에 강 판사는 “권한과 지위를 남용해 치사한 방법으로 겁박하지 말라”며 날을 세우기도 했다.
강 부장판사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 부부의 이혼소송 항소심 재판장을 맡기도 했는데, 당시 임우재 전 고문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해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적도 있다. 강 부장판사는 대법관 후보에 올랐으나 제청되지 않자 장충기 사장에게 “모자라고 부족한 제가 언감생심 대법관 예비후보 라인 앞에 잠시 서 있다가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세상사 다 시절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 듯 합니다. 이는 모두 저의 부족함과 부덕의 소치입니다”라는 문자를 보낸 바 있다.
강민구 부장판사는 지난달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는 야만 사회가 되고 있다”며 “언론기관과 권력기관이 합세하여 무슨 덫 같은 것을 설치해서 특정인이 그 함정 속에 빠지기를 기다리다가 여의치 않으니 전파 매체를 통해 사전에 계획한 작전대로 프레임을 국민에게 전파하고, 그런 일을 막아야 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자가 역으로 그 작전에 동조하는 듯한 행동과 말을 여과 없이 내뱉는 것도 염치의 실종”이라고 썼다. 채널A의 ‘검언유착’ 의혹을 보도한 MBC와 검언유착을 주장한 여당을 가리켜 ‘권언유착’이라고 비판한 대목이다.
현재 서울고법 민사13부에 올라가 있는 언론 관련 소송에서 언론사 쪽 변호를 맡은 한 변호사는 “부적절한 인사라고 생각한다.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이 옳았냐 옳지 않았냐를 판단하는 게 언론 관련 재판인데, 강민구 부장판사처럼 사회적 논란에 휘말렸거나 정치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혔던 분이라면 판사가 아무리 재판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을 표방해도 재판부 판단을 받는 이들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검언유착’ 관련 보도나 삼성 관련 보도 등이 항소심으로 갈 경우 언론사 입장에선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