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통신자료 855만건 털렸다
지난해 수사기관이 인터넷 서비스 가입자에 대한 통신 자료제공을 요청해 열람한 건수가 전체 인구수의 16.5%에 달하는 855만건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인구수의 17.3%에 해당하는 890만건 이상을 열람했던 2018년보다 소폭 감소했으나 여전히 수사기관이 개인 정보에 손쉽게 접근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상담소 한국인터넷투명성보고서 연구팀은 “여전히 다량의 개인 계정 정보가 수사기관에 손쉽게 제공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통신자료제공은 법원의 허가 없이 수사기관 요청만으로 쉽게 이뤄진다. 이 때문에 통신자료제공이 다량으로 요청 및 제공되고 있다. 통신자료란 이용자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아이디 및 가입일, 전화번호 등 포괄적 이용자 정보를 말한다.
한국인터넷투명성보고서 연구팀은 크게 ‘감시’와 ‘검열’ 부분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통신제한조치와 통신사실확인, 통신자료제공, 압수수색 등은 4대 인터넷 감시 조치다. ‘감시’ 조치는 수사기관이 개인정보 데이터를 가져가 들여보는 것이다. ‘검열’ 조치는 인터넷 콘텐츠 내용을 살피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위원장 강상현)가 심의해 ‘시정요구’(접속차단 및 삭제) 조치하는 것을 말한다.
연구팀은 지난해 한 해에만 수사기관이 네이버와 카카오 양대 포털 사업자에 요청한 압수수색 영장 건수가 300만건이 넘는다고 밝혔다. 압수수색 요청 건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네이버와 카카오에 대한 통신제한조치와 통신사실확인, 통신자료제공 등으로 수사기관에 제공된 계정 수를 다 합해도 1만5050건인데, 압수수색만으로 312만건 이상의 계정 정보가 제공됐다.
눈에 띄는 점은 양대 포털 사업자에 대한 압수수색 건수가 문재인 정부 들어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점이다. 2013년 63만건, 2014년 42만건, 2015년 103만건, 2016년 72만건, 2017년 1079만건, 2018년 829만건, 2019년 312만건이다.
2017년에 압도적으로 압수수색 건수가 높았던 이유는 댓글 조작 ‘드루킹’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7년 압수수색 건수가 늘어난 건 선거 하나의 사건으로 엄청 많이 늘어났다. 2018년이 돼서도 큰 폭으로 줄지 않고 유지된 점은 미스터리다. 2019년에 많이 줄긴 했지만 박근혜 정부 때보다 현재 압수수색 양이 많은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압수수색은 수사기관이 수사대상자의 통신 기록과 신원정보를 모두 들여다 보는 것이다. 통신제한조치는 수사기관이 수사대상자의 우편물을 검열하거나 전기통신을 감청하는 것을 말한다.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은 수사기관이 수사대상자가 건 상대방 전화번호와 통화한 날짜, 시간 등을 확인하고, 인터넷에 접속한 기록과 장소, 휴대전화 발신 위치(기지국)도 확인한다. 수사기관이 법원 허가받아 통신사업자에게 관련 자료제공을 요청한다.
4기 방통심의위는 지난해 총 21만6350건의 정보를 심의했다. 그 가운데 20만6759건(95.5%)이 시정요구(접속차단 및 삭제) 됐고, 9498건(4%)이 해당없음, 각하, 기각, 시정요구 철회, 시정요구 결정 취소 등으로 결정됐다.
연구팀은 “심의정보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9년에도 한 달에 평균 약 1만8000건의 정보를 심의했고 그 중 삭제, 이용해지, 이용정지, 접속차단 등 시정요구된 정보는 약 1만7000건이다. 이렇게 방대한 정보를 방통심의위가 삭제, 차단하는 건 과도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방통심의위 시정요구는 국내 포털서비스 업체 등 국내 소재 서버에 대해서는 삭제 및 이용해지 등의 조치를, 해외 소재 서버에 대해서는 KT, SKT, LG U+ 등 망사업자를 통해 해당 정보의 접속차단을 결정을 이행한다. 그런데 이런 시정요구에 대한 사업자 이행률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모두 100%에 수렴한다. 방통심의위의 ‘시정요구’가 ‘요구’지만 행정 조치가 아닌 사실상 강제성 있는 처분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방통심의위 시정요구 대상 정보 중 불법정보는 총 17만8512건(86.4%)으로 음란·성매매 정보가 5만2493건(25.4%), 사행성 정보는 5만22건(24.2%), 불법 식·의약품 정보가 4만3066건(20.8%)로 세 개 유형을 합하면 전체의 약 81.6%를 차지한다. 이어 권리침해정보는 2만6900건(12.5%), 유해정보는 2207건(1.1%), 국가보안법위반은 0.9%를 차지했다.
권리침해정보에 대한 시정요구는 4기 방통심의위가 디지털 성범죄를 심의 대상 정보로 다루면서 매년 수치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 2017년 3.7%, 2018년 7.3%, 2019년 12.5% 순으로 상승했다. 오경미 오픈넷 연구원은 “권리침해 정보에 대한 시정요구 건수는 2018년도 이후 디지털 성범죄가 심의 대상 정보로 추가되면서 수치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방통심의위 통신심의소위 위원들이 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심의위원이 비전문적 행동을 한 사례로 이상로 위원의 심의정보 유출 건을 꼽았다. 이상로 위원은 지난해 3월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등 혐오 발언을 일삼은 극우 논객 지만원씨를 비롯한 심의 대상자에게 심의 건명과 심의 신청자 등에 관한 정보를 카카오톡으로 3차례 걸쳐 전달해 방통위 설치법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방통위 설치법을 보면 심의위원은 직무상 알게 된 정보를 타인에게 누설하거나 직무상 목적 외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심의위원들은 이상로 위원에게 자진사퇴할 것을 권고했지만, 이를 거부한 이상로 위원은 통신소위가 재구성되기 전까지 통신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연구팀은 “더 심각한 문제는 배제 4개월 뒤인 지난해 8월29일 이상로 위원을 통신심의 위원으로 복귀시킨 방통심의위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이어 연구팀은 올해도 방통심의위 통신심의 문제점으로 회의자료 미공개와 무편집 녹화물·녹음물 미공개가 여전히 문제이고, 심의 전 의견진술 기회를 선택적으로 부여하는 점도 문제라 지적했다. 오경미 연구원은 “방통심의위가 방송과 달리 통신 안건으로는 어떤 안건을 상정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미리 알려줄 수 없다면 회의 직전 잠깐이라도 안건 내용을 정확히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