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리는 프리랜서 현실, 인생우산이 되어드립니다
“이게 웃긴 말이에요 사실은. ‘프리랜서 일을 시작하다’. 프리랜서는 누가 일을 줘야지 할 수 있잖아요.” (유튜버 하박국)
“질문을 받고 놀랐는데, 제 첫 직업(방송작가)이 프리랜서였더라고요. 그 사실을 한 번도 인지하지 못했어요.” (작가 송은정)
유튜브 채널 ‘인생우산’의 겉모양은 단출하다. 2명의 프리랜서가 카메라 앞에 나란히 앉아 얘기한다. 유튜버 김우산씨와 그 날의 ‘언프리리(unfreely) 대스타’다. 김우산씨가 공통 질문을 던진다. ‘장황한 자기소개’와 생애 첫 프리랜서 일, 과거와 현재와 미래, 프리랜서의 장단점, 프리랜서에게 성공이란 등이다. ‘대스타’ 프리랜서는 질문을 토대로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짧은 질문은 오히려 콕 집기 어려운 프리랜서 노동의 양면성과 유동성을 짚는다. ‘장황한 자기소개’ 요구는 ‘자기PR’이 중요하지만 좀처럼 기회 없는 프리랜서의 특성을 고려한 질문이다. ‘대스타’의 답변마다 시행착오와 고충이 묻어난다. 다수가 혼자 일하고 싶단 생각으로 프리랜서에 뛰어들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영업해야 하는 직업이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노트북 없이 여행갈 엄두를 내기 어렵다. 프리랜서의 장점은? 자유롭다는 착각을 준다는 것.
간단한 질문에 돌아오는 촌철살인, 기존 언론이 조명 않는 현실 ‘가상체험’
출연자들은 무엇보다 “누구도 프리랜서라는 일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고 입 모은다. 김우산씨가 지난해 3월부터 “비내리는 우리 프리랜서 인생에 작지만 유용한 우산 하나”를 자처하며 유튜브를 운영해온 까닭이기도 하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김우산씨는 “나의 일 이야기를 하고 싶어 새 채널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토익강사이자 유튜버, 영상·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프리랜서다. 그는 “프리랜서 특징은 일단 동료가 없다고 느끼는 점”이라며 “프리랜서가 아닌 직업을 가진 분들보다 더 궁금할 것이 많은 처지인데도, 자발적으로 해답을 찾아나서야 하는 환경”이라고 했다.
“세무 팁, 계약 잘 따기 같은 정보 전달 콘텐츠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겉보기엔 사무적인 환경으로 보이지만 사실 프리랜서 일엔 늘 사람이 붙어 있고 연결돼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 냄새가 나고 인간적인 채널을 지향했습니다.”
기획 의도는 “프리랜서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미래를 미리 체험해보는 가상현실 시간여행 프로젝트”다. 첫 게스트 하박국 출연 이후로 1달에 1명 정도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 밖에 김우산씨가 직접 비대면 수업을 하는 법, 셀프 인터뷰 등 내용을 담은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방송사의 PD·과장·국장인 유튜버… 하나부터 열까지 부딪혀 익히는 프리랜서
그는 “방송사로 치면 내가 국장이자 PD이자 섭외 담당을 맡고 있는 셈”이라며 “따로 섭외 기준을 두진 않고, 내가 좋아하는 창작물을 만들거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인물을 정한다”고 했다. 현재까지 퀴어 페미니스트 댄스공간 운영·강사 루땐, 프리랜서 매거진 ‘프리낫프리’ 편집장 이다혜, 아티스트 이반지하, 웹소설 작가 갈고리달(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유튜버 김겨울, 뮤지션 요조 등이 출연했다.
출연한 프리랜서들이 보이는 공통점은 “아무리 일이 ‘빡세’도 어느 한 곳에 소속해 일하지는 못하겠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김우산씨는 “프리랜서 일 자체에 고통을 느끼면서도, 이것이 아니면 (다른 직종은) 없다고 항상 느낀다”이라며 “자유로운 영혼 또는 주도적 업무 스타일이 프리랜서들의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프리랜서 현실은 제도권 언론이 발 담그지 않는 영역이다. 상위 1%만 화려한 모습으로 연출되고, 다수 프리랜서 노동 환경은 좀체 조명을 받지 못한다. 송은정 작가는 유튜브에서 “당장 프리랜서가 되기엔 겁이 나는 이들이 있다. 밑천도 없고 어디서 시작할지 모르겠고, 주변에 프리랜서 활동하는 이들도 없다. 인생우산 채널이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한 채널”이라고 평했다.
김우산씨는 “기존 미디어나 언론에서는 아무래도 잘 알려진 프리랜서들을 다루다 보니, 이들이 프리랜서로서 이름을 알리기까지 했던 노력들은 잘 다루지 않는 듯하다. 많은 프리랜서들이 이름을 쌓기 위해, 혹은 생계를 유지하려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김우산씨는 “특별한 가이드라인이나 교육 과정이 없는 직종인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서 다 챙겨야하고 그만큼 시행착오도 많이 겪는다. 많은 미디어가 프리랜서의 이 같은 모습도 다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는 “인생우산 채널이 많은 프리랜서에게 작게나마 힘과 용기를 주길 바란다. 나도 그로부터 용기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프리랜서로, 성소수자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시작했다
한편 김우산씨는 유튜브에서 ‘기무상’이란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5년째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유튜브 채널 기무상을 운영 중이다. 구독자 2740여명을 두고 있다.
기무상도 ‘내 이야기’를 하고자 첫발을 뗐다. 팟캐스트로 성소수자로서 일상과 견해를 나누다 지난 2015년 말 플랫폼을 옮겼다. “팟캐스트할 때는 거의 칭찬만 들었어요. ‘재밌다, 이런 얘기를 해 줘서 고맙다, 목소리 좋다.’ 너무나 기분 좋았지만 고민도 됐어요. 아예 성소수자 개념을 모르고 관심이 없는 사람들, 이른바 일반 대중이 내 얘길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할까? 그게 궁금했습니다.”
일본어 초급반 예문에 가장 자주 나오는 ‘기무상’이란 이름을 붙였다. ‘평범하고 흔한 사람이지만 이런 이야기도 한다’는 뜻이다. “좋은 소리 못 들을 것”을 예상하고 시작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의도하기도 했다. 썸네일과 제목엔 볼 이미지를 확대하거나, 키스, 침대 ‘낚시성’ 단어를 쓰고, 콘텐츠를 막상 누르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일상이나 생각을 담은 영상을 올리고, 라이브 방송을 한다.
그렇게 4년 운영한 채널이 유튜브 측에 의해 송두리째 삭제되기도 했다. 김우산씨는 이 사건을 프리랜서 생활 10년 중 가장 안타까운 경험으로 꼽는다. 김우산씨가 지난해 6월 성소수자 관련 주제의 영상을 올리고, 수차례 ‘영상이 광고 친화적이지 않다’는 유튜브 측 메일을 받은 뒤 채널이 예고없이 사라졌다. 540여개 영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는 이유를 듣기 위해 이의 제기했고, 1년이 지난 현재까지 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 유튜브 정책상 이의 제기 기회는 1회, 담당자는 없다.
김우산씨는 같은 이름의 채널을 다시 열었다. 김씨는 유튜브의 현 정책을 두고 “흡사 독재정권을 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소설 ‘멋진 신세계’를 떠올리게도 한다. 웬만한 사건이 없으면 기세가 꺾이지 않을 테지만, (유튜브가) 정신을 바짝차려야 한다”며 웃었다. 그는 “영상 자체의 메시지 전달력을 높이 산다. 유튜브가 이를 공유하는 역할을 해주면서 권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유튜브와 이용자 모두 유튜브란 플랫폼에 과도하게 기대지 말고, 영상 미디어의 근본 기능을 생각하며 이용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