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빼놓고 이쁜애들 밥사줬다는 글 보고 내 대학 경험담
아침에 자기 빼놓고 이쁜애들 밥사줬다는 글을 보고 오전에 무료한 시간도 보내거니와 내 경험담도 생각나서 주절거려 본다.
이 글은 믿어도 되고 안믿어도 되지만 나는 최대한 객관적이고 사실만을 기록하려 한다.
벌써 15년도 넘은 대학생 시절, 당시 남들보다 군대를 1년 늦게간 나는 동기들이 다 사라진 캠퍼스에서 학부생 2학년이 되었다. 무릇 공대들이 그렇듯 여자들은 찾기가 어려웠고 게다가 우리과는 공대 중에 공대인 기계과라 성비가 20:1이 넘어가는 학과였다. 나는 인싸도 아싸도 아닌 중간계인 미들어스에서 몇몇 무리들과 조용히 학교를 다니는 사람이었는데, 일은 신입생 OT 때 시작되었다.
내 기억으론 당시 신입생 여학생이 7명정도 들어왔던 걸로 기억한다. 다들 잘 알겠지만 공대에서는 에지간히 이쁘장하면 공대 아름이(?라고 했던걸로 기억)가 되었다. 나 학교 다닐때만 해도 공대에는 여자가 거의 입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평범수준만 되어도 너도나도 들이대서 1학년때 연애를 못하는 애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그 7명중에 한명이 비만에 외모가 처참한 친구가 한명 있었다. 여자앤데 새터에 옷은 무슨 티에 셔츠를 입고 바지통이큰 청바지라니. 솔직히 아직도 그 모습이 기억난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애는 OT 기간내내 자연스럽게 도태되어 갔다. 몇번 인사라던지 말을 거는애들은 보였지만 잠시 예의상이었고 자연스럽게 서로 호감이 가는 친구들끼리 무리를 지어서 재미나게 놀고 있었던 것이다.
OT 저녁 술자리에서 둥글게 둥글게 무리를 지어 앉은 자리에서 거의 무존재감으로 (공대에서 여자가 이러기는 정말 쉽지 않다. 그만큼 외모가 처참했다. 키는 160도 안된거 같았고 아마 체중이 80kg 는 넘었으랴.) 술잔만 바라보고 앉아있는 그녀는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 시발.. 근데 내가 도대체 왜그랬을까. 아직도 후회된다.
말을 건넸다. 너는 이름이 뭐니? 고향이 어디니? 서울에 자리는 잡았니?
대답이 정말 모기소리 마냥 작았다. 자존감은 바닥인거 같았고 자신감이라고는 하나도 못찾아 보겠더라.
맹자가 사단에서 논했던가. 측은지심이 발동해서 OT 기간 내내 잘챙겨줬다. 나는 정말 아무런 사심이 없는 그냥 선후배 사이로 챙겨줬다. 그렇게 OT 는 끝났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학교에서 그녀를 보았다. 2학년 1학기 때 필수 과목 외에는 전공은 군대갔다와서 들으려고 1학년들이랑 교양수업을 많이 들었는데, 거기서 마주친 것이다.
그녀는 내게 인사를 하고 내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마 시발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마땅히 친한 동기가 없었던 그녀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연락을 해와선 과제도 물어보고 비는 시간에 밥도 같이 먹자고 하고 나는 당시 여친도 없고 친한 동기들이 대부분 군대를 갔기 때문에 그녀랑 아무런 사심없이 그냥 대학 동료로써 잘 지냈다. 주변에서도 친한사이다 이렇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6개월즘 흘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얘가 학교생활 외적인걸로 연락을 해오기 시작하더니 화장을 하고 살을 뺄려고 하는거 같더라 밥도 깨작거리고. . .
아 지도 남자 만나고 싶나보다 이생각은 했지만 그 대상이 나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다고 여지를 줬다거나 그런 언행을 일체 하진 않았다. 스킨쉽이 있었다 거나 그런것도 없었거니와 지가 영화보고 싶다고 해서 다른 후배들 몇명 대동해서 같이 보러 가준거 몇번이 다였다.
당시 나는 구혜선을 닮은 이쁜 여친과 썸을 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일은 정말 상상도 못했었다.
2학기가 시작된 어느날 학교 버스정류장에서 미래여친이랑 놀러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하호호 하면서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그녀가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어오더라. 나를 발견하고는 놀라서 흠칫 했던 것 같다. (이부분은 정확하게 기억이 안남, 나중에 생각했던 부분) 인사를 하고 나랑 조금 떨어진 데서 서 있더라.
솔직히 내가 뭐 잘못한것도 아니고 나는 신경도 안썼기 때문에 미래여친이랑 계속 즐겁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3명이서 같은 버스를 타고 그녀는 치과대학앞에서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러 갔다. 우리가 있던 산 꼭디 제1,2 공학관에서 치과대학 입구까진 꽤 거리가 먼데, 미래여친은 신경이 쓰였나 보더라. 아마 사이를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누구냐고 물어보더라. 나는 그냥 학교 후배라고 했었고, 그렇구나 라고 대답하곤 아무 문제 없었다. 그리고 얼마뒤 나는 구혜선 닮은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문제는 그뒤였다. 막 여름방학이 끝나고 잘 기억은 안나는데 무슨 행사가 있어서 과 인원 전체가 회식을 했다. (회식 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는진 모르겟음 졸업한지 오래되서)
내 근처에 앉을 법도 한데, 멀리 앉더라. 그리곤 술을 진탕 마셨나 보더라. 다들 취기가 오를때쯤 그녀가 내이름을 부르며 소리를 쳤다. 그리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오열을 했다.
야 XXX, 니가 어떻게 그럴수 있냐. 나를 사랑하는거 아녔냐
정확히 저렇게 말했다. 15년이 지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도 조금 취한 상태였는데 함마로 정수리를 까인듯 정신이 번쩍 들더라.
얘가 뭔소리지????
백명이 넘어가는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나랑 친한 몇 남은 동기들은 빵터졌다.(구혜선 여친 사귄지 얼마안되서 몇명만 알고 있었음)
식당이 떠나가게 큰소리로 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며 외치며 엉엉 울어댔다. 시불.. 발표할때나 그렇게 크게 말하지. 나는 걔 목소리가 그렇게 큰줄 그때 처음 알았다. 당황해서 어버버 하는사이에 주변에서 눈치들어오는게 느껴지더라. 이 사태를 왜 내가 수습해야 되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나가서 얘기하자고 하고 밖엘 나갔다.
얘가 술이 취해서 나한테 자꾸 울면서 안기려고 하더라. 그래 품에서 울고 싶었겠지. 근데 나는 그 어느때보다 이성 적으로 행동해야 겠다는 생각에 팔을 X 반도 두른것 마냥 나의 양 어깨에 크로스로 올리고 가드를 쳤다.
그 육중(?) 한 몸으로 자꾸 들이대더라. 첨엔 얘가 화가나서 배치기를 하는줄 알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백. 와. 나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게 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냐. 정말 그런 분위기도 하나도 없었고 상상조차 하지 않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게 고백해서 혼내주자 라는 걸 당하는 쪽의 기분이랄까?
나는 여친이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알고 있단다. 이미 내 친구 누군가에게 물어봤겠지. (그땐 카톡이 없어서 프사 같은게 없었음 문자 시절이라) 그랬더니 나에게 그러더라.
날 가지고 논거냐고.
나는 정말 혼란스러웠다. 내가 뭘 했던가? 술이 취해서 손을 잡았었나? 단둘이 영화를 봤나? 데이트를 했나? 꽤 길었던 시간을 단시간에 스캔했다. 단연코. 그런 일은 없었다.
내가 황당 당황 봉황당 하고 있던 새에 그녀는 울면서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다. 여기서 내가 얘를 터치하고 뭘 더 챙겨주면 안되겠단 생각에 그녀의 여자 동기들에게 그녀를 부탁하고 나는 황급히 그 회식을 빠져나왔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지나지 않아 과의 여자애들 사이에서 나는 쓰레기가 되었다. 당연히 다음날 사람들은 그녀에게 그 일에 대해서 물어봤고, 나는 완전 사귀는 것처럼 다 해놓고 딴 여자랑 양다리를 걸친 놈이 된것이다. 단둘이 학교 밖을 벗어 난 적도, 손한번 잡아 본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녀 말로는 이미 암묵적으로 그녀와 나는 사귀고 있었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었다는데, 소설도 그런 소설이 없었다.
그녀는 선동했다. 나를 나쁜놈으로 만들기 위해서. 공부도 잘했던 친구라 굉장히 전략적으로 선동했나보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이 일이 여친과의 관계에 영향이 없을수도 없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여친이 나에게 물어봐왔다. 지금에야 생각하지만 나는 그녀가 분명히 여친이 알게끔 공작을 했으리라.
여친과 그 일 때문에 헤어진건 아니지만 당시에 그거에 해명을 하느라 진을 뺐다. 왜 내가 하지도 않은일에 해명을 해야 되는지 억울했지만 열심히 해명했다. 그리고 과 사람들에게도. 그러나 내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찌나 철저하게 선동했는지 내말은 잘 믿지 않더라.
그녀를 불러서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었다. 외로워서 그랬단다. 나랑 만나고 싶어서. 나는 역정을 냈다. 나는 너따위 싫다고. 그만하라고. 그녀는 욕지기를 내뱉고는 돌아섰다.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는 서로의 욕지기였다.
여자애들은 나를 보고 수근덕 거리는 것 같았고, 정신적으로 힘든 학과 생활을 보내다 나는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갔다.
그녀는 스트레이트로 졸업을 하고 취업을 했다는 소문만 들었다. 한참이 흐른 후 동문 모임에서 그녀의 전화번호를 갖고 있는 동기 핸드폰으로 카톡 프사를 보니 단발머리에 더 육중해진 몸으로 미혼의 삶을 사는것 같았다.
사건 이후로 남자동기들과는 전혀 교류 없이 대학생활을 보냈다고 하니, 내가 잘못한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나는 이제 아무한테나 쉽게 친절을 베풀지 못한다. 내가 베푼 친절이 독이되어 돌아 올 수도 있음을 경험했기 때문에.
밥은 아무한테나 함부로 사주는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