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왕으로 보는 댓글문화와 문맹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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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학왕으로 보는 댓글문화와 문맹 독자

필사모 0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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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전에 쓴글을 조금 편집해서 올림)

 

 

복학왕이라는 웹툰 자체는 극도의 지질한 현실을 풍자로 엮어내는데 의미가 있다.

 

화재성에서도, 그 몰입감에서도 평균 이상이고 많이 준비한 흔적이 연출의 고민에서 나타난다.

 

전작보다 훨씬 프로답다.

 

하지만 이따금 웹툰을 보면서 느끼는 것인데, 따라오는 묘한 불쾌감이 있다.

 

바로 댓글 시스템이다.

 

보지 않으려 해도 스크롤을 휙휙 감다보면 어느순간 밑으로 내려가 의도치 않게 눈에 걸리곤 한다.

 

그때마다 이 콘텐츠를 향한 짜증이 솟구친다.

 

오늘자 복학왕의 케이스도 그렇다.
 
  나이를 무기로, 학번을 무기로 군림하고 그렇게 쥔 조그만 권력이 무너질까 두려워

 

있지도 않은 선후배 간의 의리를 강조하고

 

단합을 명목으로 폭력을 조장한다.

 

통칭 지방 삼류 대학의 악 폐습이고,

 

뭣도 모르는 20대들이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맞닫는 부조리기에 더욱 통렬하게 가슴을 두드린다.

 

때문에 복학왕은 단순한 개그 물이 아니라 (역량은 다르겠지만)

 

송곳식 고발 물에 가깝다.

 

이어지는 불쾌함 속 과거를 회상하게 한다.

 

보고난 후 찝찝함 때문에라도 혼자 생각을 곱씹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기에 찾아 나서는 온전한 사유는 작가의 의도이기도 하고 독자와 필자 간의 긍정적인 교류가 되는 셈이다.

 

네이버가 제공하는 댓글란은 아마도 이런 의미에서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 교류는 생각보다 처참한 수준이었다.

 

수만 개의 추천을 받고 올라간 상위 댓글들을 조금만 유심히 봤다면 내 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뭔가 의미 있는 피드백을 기대하기에 소화하는 독자층의 나잇대가 너무 어린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를 따져보니 그저 나이 탓만 하기엔 비단 이 웹툰만의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인터넷 기사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으레 벌어지는 동문서답식 댓글의 연장선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어디선가 읽은 기사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맹률은 굉장히 낮은 수준이지만

 

실질적으로 글의 문맥을 추론하고 요약할 수 있는 능력이 심각할 정도로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요는 평생 받아온 주입식 교육으로 문학을 접하면서

 

스스로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을 기르기 이전에 누군가가 핵심 요약과 단어 풀이를 가르쳐주는 것 때문이란다.

 

그러면 글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외워서' 퍼즐 끼워 맞추듯 문제를 풀게 되는데

 

평소에 교과 공부 외에 책을 꾸준히 읽는 습관이 없다면 이는 사람을 '실질적 문맹'으로 만든다.

 

읽을 줄 아는데 읽어도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누군가 정리해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내용을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웹에서 조금만 긴 글을 올리면 너도나도 세 줄 요약을 외치는 한심한 진풍경이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 올라온 웹툰 복학왕이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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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 배달원을 하는 선배가 학회장의 폭력을 막는 가운데 벌어지는 이야기다.

 

표면적으로는 불의에 항거하는 젊은 새내기와 사회 밥 먹고 철든 선배의 정의로운 의기투합을 묘사하고 있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작가 기안84의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실질적으로 나섰던 젊은 새내기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무력하다.

 

불의한 것은 알지만, 원칙대로 하고자 할 용기도 없고 사실 대의에 대한 큰 고민도 없다.

 

단지 여자가 예뻐서 도와준 것뿐이다.

 

학회장의 폭력을 막던 중국집 선배는

 

'너 깡패야?', '애들 때리지 마라니까?'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 그 이유는 '요즘 애들은 우리 때랑 달라서 큰일이 나기 때문'이고

 

학회장의 멱살을 잡으며 분노하는 이유는 해서 안될 짓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 손에 쥔 가소로운 권력을 놓고 싶지 않은 이기심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본인부터가 여전히 학생 시절 악 폐습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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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치뤄내야 하는 비루한 시선을 정면으로 받는 것이 두렵기에

 

아직도 대학 시절 선배로 남고 싶은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말 안 들으면 오토바이로 쳐버리겠다. 졸업했어도 선배는 선배다.'라는 협박으로 이어질 만큼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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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후배들을 이끌어줄 수 없는 자리에 있으면서 본인 역시 헛된 말로 단합을 연출한다.

 

불행하고 찌질한 사람들이다.

 

맞으면서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는 우기명도,

 

때리는 학회장도, 말리는 사회 선배도, 지켜보는 동기들도.

 

그리고 여자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목표가 없는 와중 무엇을 해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보다 당연하게 '재수'를 결심하는데,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이 아닐뿐더러 또 다른 도피일 뿐이다.

 

그렇기에 계속 불행할 수밖에 없다. 

 

정의도 없고, 승자도 없다. 

 

기안84의 타고난 재주가 하나 있다면 심각하게 불쾌하지 않은 가운데

 

정말 심각하고 불쾌한 현실을 덤덤히 나열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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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와중 추천 5만 개 받고 '가장 공감을 많이 받은 댓글'이란 에 올라와 있는 글이 있다.

 

'비록 짜장면 배달해도 인성이 됐네 저 사람'이라고 한다.

 

도대체 똑같은 만화를 봤는데 어떻게 읽어야 저런 후기가 나올 수 있을까 싶다.

 

댓글 창을 그냥 없애버렸으면 좋겠다.

 

좋아질게 하나도 없다.

 

굳이 유지해야겠다면 창을 최소화시켜 놓고 보고 싶은 사람만 클릭해서 보게 했으면 좋겠다.

 

'한국 웹툰의 수준은 한심하다.'는 얘기가 많은데 그것이 딱히 콘텐츠 제공자만의 문제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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